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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니스의 미술관들-마티스 미술관, 샤갈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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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화

17. 니스의 미술관 들


1. 마티스 미술관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오전 10시에 개관하는 마티스 미술관으로 갔다. 미술관은 복잡한 시가지와 떨어진 로마시대 유적지가 남아있는 사미에 지구에 있었다. 미술관과 거리가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한 후 일행은 한가로운 주택가를 여유롭게 걸어갔다. 미술관 근처에는 프란시스코 수도원이 있었다. 나무가 우거진 곳에 있는 성인의 흉상의 머리 위에 비둘기가 앉아 쉬고 있었다.


조용한 정원 옆에 붉은 색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17세기 말 저택을 개조해 1964년 개관한 미술관은 증축과정을 거쳐 1993년 재개관했다. 입구는 지하로 내려가야 했다. 매표소 주변 벽에는 마티스의 대표적 종이작품인 ‘꽃과 과일’, 사람의 몸을 표현한 브론즈 작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니스동상비둘기.jpg 성인의 흉상과 비둘기


야수파의 거장 앙리 마티스 (1869~1954)는 원래 법률을 공부했지만 21세에 화가로 전향했다. 맹장수술로 입원했을 때 어머니가 사 오신 미술도구를 사용하며 재능과 열정을 발견했다고 한다. 27세에 살롱전에서 인정받은 그는 이후 강렬한 색을 대비시켜 입체감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렸다. 마티스는 니스를 무척이나 사랑한 화가다. 1917년에서 1954년 까지 이곳에서 살다가 사후에 작품들을 니스에 기증했다.


실내를 이동하며 ‘폴리네시아 바다’라는 작품에 눈길이 갔다. 파란색과 하늘색 커다란 격자무늬를 바탕으로 흰색의 갈매기와 해초, 물고기 등이 도형처럼 형상화된 작품이다. 이미지를 단순화시켰지만 메시지는 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회화가 전시된 공간에는 드로잉과 초기 작품들도 있었다. 마티스 특유의 색감이 두르러진 작품들은 눈길을 사로잡았다. ‘마티스 부인의 초상’,‘ 붉은 상자와 오달리스크’, ‘황색 테이블에서의 독서’, ‘석류가 있는 정물’ ‘파라솔을 쓴 인물상’, ‘타히티 1’, ‘숲속의 요정’ 등 많은 작품들이 있었다. ‘흰색과 붉은 배경의 젊은 여인’은 한참을 바라봤다. 빨간색과 파란색, 초록색과 흰색의 조화가 강렬했다.



마티스새.jpg 마티스-폴로네시아 바다
마티스여인.jpg 마티스-흰색과 붉은 배경의 젊은 여인


전시장에는 회화뿐 아니라 판화와 조각 작품들도 있었다. 한 코너에는 타히티에서 찍은 마티스의 흑백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는 남태평양 원주민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기도 했다. 912년 모로코로 긴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동양의 분위기가 담긴 문양을 배경으로 한 ‘오달리스크’ 연작을 그렸다. 72세에 암에 걸려 수술 받은 후 종이 오리기 기법을 사용해 ‘재즈’라는 책에 삽화로 사용했다. 다양한 방면에 관심을 보이며 노력한 화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티스의 일대기를 표현하는 패널과 작가의 화실을 재현한 공간 등도 조성되어 명실상부하게 그를 기념하는 미술관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마티스타히티.jpg 마티스와 타히티


마티스얼굴.jpg 마티스 일대기


2. 샤갈 미술관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그림이 있나 보다 싶었다. 그런 카페 이름이 있어서였는데 알고 보니 김춘수 시인의 시 제목이었다. 샤갈이 고향 러시아를 그리워하며 제작한 '나와 마을'의 이미지를 빌려서 쓴 시라고 한다.

샤갈 의 그림은 막연하게 환상적인 이미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늘을 나는 듯한 사람 형상이나 화려한 색상이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던 것 같다.


러시아 빈민층 유대인이었던 마크 샤갈은 1909년에 상류 부르주아 계급 출신 여인 벨라를 만났다. 샤갈은 벨라와 약혼을 한 채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를 했다. 4년 후 고향으로 돌아가 벨라와 결혼했다. 1차 대전으로 인해 고향에 머무르게 되고 행복한 결혼생활로 그의 작품은 목가적인 풍경, 연인들, 꽃 등이 등장하며 밝아졌다. 샤갈 부부는 프랑스로 망명했지만 2차 대전 때 독일의 압박을 받아 뉴욕으로 두 번째 망명을 했다. 종전 후 프랑스로 돌아오기 전 벨라는 병을 얻어 사망했다. 상심한 샤갈은 1년 동안 전혀 붓을 들지 못했다고 한다. 벨라는 샤갈의 작품에 영원한 불멸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뮤즈였다.


미술관에서 꿈과 그리움, 사랑과 낭만을 표현한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거라 막연히 기대를 했다. 하지만 샤갈 미술관은 그의 작품 중 종교에 관한 작품만을 전시해 놓은 미술관이었다. 샤갈 미술관은 1969년 프랑스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가 주관하여 1973년 건립한 국립 미술관이다. 샤갈이 프랑스 정부에 기증한 450여점은 대부분 샤갈의 후기 작품으로 스케치, 회화, 파스텔화 등이다.


넓은 잔디밭과 커다란 나무들로 조성된 정원을 지나면 나지막한 건물에 매표소가 있었다. 10유로 내고 발권을 한 후 좀 더 걸어서 메인 건물로 입장을 했다. 첫 번째 들어간 넓은 전시장에는 성서의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테마로 작업한 대형 작품 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인간의 창조’, ‘노아의 방주’, ‘십계명을 받는 모세’, ‘야곱의 꿈’, ‘아브라함과 세 천사’ 등 12작품의 연작 유화이었다. 성서의 내용을 배경으로 모여 있는 사람들과 마을의 모습, 천사와 동물들이 보였다. 중력을 거스르고 공중에 떠있는 생명체들과 몽환적인 색상이 신비로웠다. 두 번째 전시장에는 아가서를 주제로 한 5작품들이 걸려있었다. 샤갈은 생전에 모든 작품이 전시될 위치를 직접 선정했고 해마다 세계의 종교적, 정신적인 역사에 관련된 주제로 특별전을 열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샤갈붉은색.jpg 샤갈 미술관의 작품


샤갈푸른색.jpg 샤갈 미술관의 작품
샤갈그림.jpg 샤갈 미술관의 작품


샤갈이 직접 제작한 스테인드 글라스도 있었다. ‘푸른 장미’라는 작은 작품과 샤갈 관련 영상을 보여주는 방의 벽을 장식한 ‘천지창조’라는 작품이었다. 푸른 색을 많이 쓴 스테인드 글라스는 샤갈의 그림처럼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전시실 한편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조용히 밖을 내다보는 공간이 있었다. 다가서보니 유리 창 너머 마당 벽면에는 모자이크가 그려져 있었다. 선지자 엘리야의 형상이라고 한다. 샤갈이 관여하여 만든 정원은 사람들이 생각에 잠길 수 있게 하는 공간이었다. 투명창 너머로 잔잔한 물이 담긴 수조를 앞에 두고 파스텔 톤의 벽화를 바라보면 마음이 차분해질 것 같았다. 사람들은 많았지만 모두 침묵을 지키며 경건한 분위기 였다.

샤갈미술관.jpg 샤갈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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