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에서 가까운 중세도시 에즈로 갔다. 언덕 도로에서 잠시 차를 멈춰 바다를 바라봤다. 선명한 푸른색의 넓은 지중해가 멀리 발아래로 펼쳐졌다. 바다 위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떠있고 거대한 크루즈도 보였다.
로마시대의 도시였고 중세에는 모나코지배를 받다 이탈리아 왕국의 속국을 거쳐 1861년 프랑스령이 된 에즈. 옛 골목길을 오르며 에즈 열대식물원으로 갔다. 12세기 에즈의 시장이었던 르제 지앙통이 모나코 식물원을 설립한 장 가스타드의 도움으로 조성한 식물원은 해발고도 429m에 위치해 있다. 언덕을 따라 조성된 식물원은 키 큰 선인장들과 알로에 등 열대식물들 사이로 여신 조각상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도로를 오르며 보았던 바다가 식물원 아래로 펼쳐져 있었다. 녹색 식물 뒤로 붉은 지붕이 있는 마을 너머 푸른 지중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선명한 색들의 조화로 인해 현실세계와는 다른 공간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에즈 식물원
에즈는 골목길이 예뻤다. 생 폴 드방스와 비슷하면서도 느낌이 좀 달랐다. 선배 선생님이 몇 년 전에 딸과 남프랑스 여행을 다녀와서 골목길을 유화로 그리셨다. 그 곳이 생 폴 드방스였을지 에즈였을지. 그 그림과 비슷한 분위기의 장소를 찾아 이 골목 저 골목을 걸었다. 돌로 지은 옛집위로 넝쿨을 이루며 올라간 나무들과 다양한 꽃들은 마을을 환하게 해주었다. 건물에 내려앉은 빛은 또 다른 건물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 어우러진 무늬를 바라보다 곳곳에서 발을 멈추게 되었다. 악세사리와 의류들, 그림과 기념품 등을 파는 상점들도 건물과 멋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분홍꽃이 인상적인 에즈골목길
에즈 골목길-건물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건물
돌건물과 붉은 꽃이 어우러진 에즈 골목
건물색이 아름다운 에즈골목
상점들도 멋스러운 에즈골목
햇살로 무늬가 드리워진 노란 건물
에즈골목의 상점
여유를 갖고 여행을 하고자 했지만 시간이 마냥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 에즈에 도착해서 남편 친구 부부와 각자 다니다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 안에 되도록 많은 것을 보고 점심 식사도 해야 했다. 식당마다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일단 눈에 띄는 곳의 야외에 자리를 잡았다. 앉은 곳이 햇빛이 강해서 그늘로 옮겨서 의자가 세 개가 있는 파라솔 아래 앉았다. 여종업원이 오더니 두 명이 앉는 먼저 자리로 가야 한다고 했다. 관광객들이 많다보니 의자 하나라도 여유 있게 할애를 하지 않았다. 다른 음식점으로 갔는데 그 곳도 자리가 없었다. 결국 먼저 식당으로 다시 와서 빈자리를 찾아 주문을 했는데 나오기 까지 한 시간을 기다렸다. 정해진 시간 안에 둘러볼 기회가 줄어드니 여유를 즐기자면서도 조급해지는 습관은 어쩔 수 없었다. 맛을 즐길 틈도 없이 서둘러 식사를 하고 나왔다. 남프랑스 사람들은 대부분 잘 웃고 친절했지만 이 식당에서는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에즈 성당은 겉에서만 보았다. 12세기에 지어졌고 18세기에 재건축된 성당은 노란색의 자그마한 건물로 시계탑이 인상적이었다.
에즈성당
에즈에는 니체의 산책길이 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1883년 4개월 간 에즈에서 지내며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집필했다. ‘짜라투스트라’는 고대 페르시아의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의 창시자‘조로아스터’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신은 죽었다’고 한 니체.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목사였으며 집안 전체가 기독교인이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한 것은 ‘겁이 많고 도전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이 신을 만들어내고 그 후에는 추악하게도 자신들이 만들어 낸 신을 죽여 버렸다’는 의미에서 였다. 니체는 ‘존재는 변화하는 것’이며 ‘힘에의 의지들 간의 끝없는 경쟁과 싸움’이 우리의 삶이며 삶은 고통이 아니라 긍정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찰나의 삶에서 ‘그러한 순간이 끝없이 반복되기(영원회기)'를 원할 만큼 삶의 매순간을 사랑하라고 했다. 니체는 자신의 삶의 모든 순간을 긍정하고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창조하는 사람을 ‘위버멘쉬(초인)’라고 불렀다. 그는 ‘가벼워지기를 바라고 새가 되기를 바라는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비행술의 비밀은 춤과 웃음이라고 말했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를 통해 자기안의 부정적인 부분을 끊임없이 극복해 나가며 삶의 주인으로서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다. 두려움과 공포에 주저앉고 현실에 타협하기 쉬운 삶에서, 매순간을 사랑하며 자기 자신을 극복하도록 노력하라는 니체의 외침이 들려오는 듯했다. 이 독수리 둥지와 같은 요새 마을에서 니체는 현실의 얽매임과 거리를 두고 자기만의 이론을 정립했던 것 같다.
마을에서 1시간 정도 걸려 해변으로 이어지는 니체의 산책길을 걸어보고도 싶었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바라보기만 했고 혹시나 있을 다음을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