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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화 Jul 21. 2022

마당 있는 집으로의 여행

천리포수목원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

  수없이 반복해 왔던 생각이다. 남편도 가끔 전원생활을 해보고 싶은 눈치였다.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 매화묘목을 심다가, 마당에 심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다 전원주택에 살면 벌레도 많고 힘들 거라 했다.

  “가끔 펜션이나 통나무집에 가자.”

  결론은 항상 그렇게 났다. 하지만 여행에서는 ’마당 있는 집‘의 기분은 안 났다.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집으로의 여행을 궁리하다 천리포 수목원이 떠올랐다. 몇 년 전, 보랏빛과 푸른빛 수국이 탐스럽게 피었을 때 방문한 그곳은 마음이 편해지는 장소였다. 나무를 사랑했던 미국인 민병갈 박사가 일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가꾸었고 우리나라에 조건 없이 기증한 수목원이다. 다양한 목련나무가 있다고 해서 봄에 꼭 다시 오고 싶었다. 여유롭게 1박을 하면 좋을 것 같아 숙소를 알아봤다. 밀러가든 내의 가든하우스는 기와집, 초가집, 양옥 형태의 독채 타입이다. 다정큼나무 집, 배롱나무집, 벚나무집, 호랑가시나무집, 사철나무집, 해송집 등 다양했다. 안내 글을 읽어봐도 위치나 형태 등에 대한 상상이 잘 안됐다. 그저 느낌을 따라 ’벚나무집‘을 선택했다. 방이 3개인 독립된 한 채의 건물이어서 숙박비가 비싼 편이었지만 이번에는 ’마당 있는 집‘의 분위기를 느끼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토요일에 1박2일을 예약하려했더니 후원자들이 우선권이 있어서 마감됐다고 한다. 금요일에 1박을 예약했다. 두 딸과 아들에게 말하니까 모두 회사에서 휴가를 내기 어렵다고 했다. 누구와 함께 갈까하다가 언니부부가 떠올라서 동행했다.     

 

  옆으로 난 나지막한 나무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벚나무집은 하얀색 벽의 양옥 형태지만 지붕은 기와로 지어졌다. 마당 장독대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줄을 맞추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 마리 들새가 날아와 항아리 위에 앉았다. 사람들이 있어도 의식을 하지 않고 한참을 앉아있다 날라 갔다. 집의 정면 앞은 탁트여있었다. 화단 뒤로 담장대신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앞은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다. 내부도 널찍했다. 일행은 일단 거실에다 이불을 깔고 쉬었다. 창밖으로 하늘과 나무들이 보여서 편안했다. 마음이 넉넉해지니 이런 저런 옛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언니는 나보다 네 살 많다. 두 부부가 다 동갑이니 같은 시대를 살아오면서 정서가 비슷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연탄불에 꽁치 구워 주신 게 맛있었어.”

  형부의 말에 양미리 조림, 기름 바르고 소금 뿌려 구운 김, 동태찌개 등 음식 이야기가 이어졌다. 언니와 나는 어렸을 때 살았던 부암동 집 이야기를 했다. 내가 중학생이고 언니가 고등학생일 때 살던 집이다. 나는 마당 있는 그 집이 소나무, 감나무, 복숭아나무, 앵두나무, 개나리, 라일락, 찔레꽃이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언니는 송충이나 복숭아 열매 안의 벌레 같은 것들이 싫었다고 했다. 나는 그 집에서 살았을 때가 기억에 남아 전원주택에서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언니는 도시에서 사는 게 좋다고 했다. 형부 고향에 땅이 있어서 마음먹으면 내려 갈 수 있는데 그럴 마음이 없다고 했다. 같은 환경에서 자랐어도 취향과 기억하는 시각이 다른 것이 신기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방의 창문을 열었을 때, 멀리 산 넘어 연한 푸른색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흰 구름의 일부는 햇빛을 머금어 연한 붉은 빛을 띄고 있었다. 신선한 공기가 온 몸으로 느껴졌다. 공중에 떠있는 아파트는 보안이나 청결 상의 장점이 있지만 뭔가 아쉬운 구석들이 있다. 창을 열면 흙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집에서 자연으로부터 채워지는 느낌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다 함께 아침 산책을 나섰다. 9시 개장 전 시간이니 사람들이 거의 없어 한가롭게 걸을 수 있었다. 밤사이에 꽃들이 조금 더 핀 것 같았다. 백목련과 자목련의 교접으로 태어났다는 스트로베리크림목련은 연분홍 빛으로 환하게 빛났다. 큰 나무 가득 희고 여린 여러 겹의 꽃잎이 하늘하늘한 큰별목련은 풍성한 느낌을 주었다.  전날 1시간여 동안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둘러 봤던 길을 다시 걸으며 복습하듯 이름들을 되새겨봤다. 버들목련,  히어리, 은방울 수선화, 마취목, 서양호랑가시나무, 복수초, 하얀별목련, 사순절 장미, 삼지닥나무 등.    

  

  수목원을 가꾸는 사람들이 누굴까 궁금했는데 원예과 학생들이  일정기간 기숙을 하면서 돌보기도 한단다. 설립자의 뜻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수목원을 소중하게 유지하고 있다. 철마다 꽃과 나무들이 바뀔테니 자주 와도 좋겠다 싶었다.  매달 후원금을 내고 후원자가 되기로 했다. 퇴실하면서 후원서를 작성했다. 마음 한편 ’마당 있는 집‘을 꿈꾸며 나무와 흙냄새가 그리워질 때면 천리포수목원을 찾아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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