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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화 Aug 27. 2022

그 곳에 있다는 것이 축복같은 봄날

남산의 봄곷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

   그대 떠난 길목에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에 하얀 목련이 진다.’    

 

  양희은의 노래 ‘하얀 목련’을 들으면 쓸쓸함이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갔던 봄, 다시 피어나는 꽃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이별이라는 사연이 없어도 봄이라는 계절에는 슬픔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화려한 계절에 기쁨으로만 충만하지 않는 것은 완벽한 아름다움이 곧 사라질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일 거다. 특히 목련은 개화시기가 너무 짧다. 1년을 준비해서 하루 이틀 절정의 美를 보여준다. 봄에 목련을 보기 위해서는 더욱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2019년 3월29일, 용산도서관에서 글쓰기 수업을 받고 길을 건넜다. 남산도서관 옆의 목련이 활짝  피었다. 일주일전에는 봉오리였는데. 한 아저씨가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매년 그 앞에서 찍는다며  내일이면 떨어진다고 하셨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남녀 모두 꽃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남산도서관 옆의 공간은  탁자와 의자들이 설치되어 쉬거나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야외에 작은 문고도 설치되어 있다. 벤치에 잠시 앉았다. 거리를 두고 하얀 꽃송이들로 가득한 목련나무를 바라봤다. 나무 아래 의자에 백발의 한 남자 노인이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탁자위에 작은 책을 펴놓고 열심히 메모까지 하며 몰두하고 있었다. 그 분의 완전히 흰 머리가 하얀 목련과 같은 색깔이었다. 단정한 옷차림으로 목련나무 그늘아래 앉아 책에 빠져 든 모습에 자꾸 눈길이 갔다. 무슨 책을 보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시쓰기 수업을 하고 나와서 글 쓰는 것이 막막하다고 느끼고 있는 터였다. 나이 들어서도 집중해서 책을 보고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것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주일 만에  남산도서관 옆을 다시 찾았다. 완벽하게 예뻤던 목련은 지고 있었다. 떨어진 꽃잎들은 지저분하고 처절했다. 다 받아들여야 한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에 여러 뜻이 있겠지만 지는 꽃잎을 보는 심정도 한 부분 차지 할 것 같다. 시기는 목련의 때가 지나가고 벚꽃세상이 되어있었다. 점심시간에 직장인들이 탁자에 간단한 먹거리를 펴고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벚꽃나무 아래는 여러 사람들이 앉아서 쉬다 떠났다. 한 아가씨가 테이크아웃한 음료를 마시면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화사하고 완벽하게 핀 벚꽃과 잘 어울렸다.      


  안중근 기념관으로 올라가는 길에 벚꽃 나무가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다. 수령이 오래돼서인지  벚꽃도 더 풍성한 느낌이 들었다. 벚꽃은 화사하게 피어나 한창이고 사람들은 꽃을 찾아 몰려들었다. 혼자 걷거나 여럿이 걷거나 그 길에 있다는 것만으로 축복같은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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