ㅌㅅ후 제주도의 한달 #1

2.20 ~ 2.21 (1~2일차)

by 꿀잠

2018.1 ~ 2019.2

인생 처음의 회사 생활을 1년 1개월로 짧게 마무리하고 제주도를 찾았다.

퇴사를 해서 제주도를 찾은건지, 제주도를 오기 위해 퇴사를 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작년 말부터 수 없이 되뇌이던 것처럼 퇴사가 결정되는 순간부터 나는 제주도 한 달 살이를 계획했다. 아니 계획이라기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제주도에서 1달을 보내기 위해 집을 구하고, 표를 사고, 주변에 알렸다.


작년 말부터 퇴사하겠다고 동네방네 알리고 다녔지만 막상 정말 퇴사를 하자 사람들은 생각보다 놀란 듯 했다. 하긴, 내 주위에도 퇴사 하고 싶다고 안하는 직장인은 없지만 정말 퇴사하는 직장인이 그 중 몇이나 될까. 나의 퇴사에 그들이 놀란 이유는 크게 두가지 인 듯 했다.

첫째, 일도 재밌어 보이고 (영화 배급업을 했다.), 직장도 안정적인데 (대기업이었다.) 뭐가 불만이 있어서 나가?

둘째, 알아둔 데도 없으면서 그냥 제주도에 한달을 간다고?

어느 하나에도 제대로 된 답변을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그들과 같은 불안함을 애써 숨기고 설렘만 가득한 척 제주도로 얼른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팀장님한테도, 친구들한테도, 부모님한테도 속시원히 납득 시키지 못한 내 퇴사 사유는 이번 제주 1달 살이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다.


21일(2일차) 오전을 모두 보낸 함덕해변의 '델문도'

그렇게 2월 7일, 회사에 퇴사를 통보하고 2월 20일부터 제주도 1달 살이를 시작했다.


먼저 크게 잡아본 제주 1달 살이의 기본적인 정보는 다음과 같다.

기간: 2월 20일 ~ 3월 20일

장소: 조천읍 일주동로 (에이비앤비)

주요계획: 평일에는 독서, 운동 및 주변 답사, 주말에는 서울에서 오는 친구들과 파티, 눈이 온다면 한라산 등반

준비물: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쇼코의 일기, 바깥은 여름 등 한국문학 8편

예산: 집 한달 70만원, 차 한달렌트 40만원, 기타 생활비 100 ~ 150만원


아무 계획이 없어보이는 이 한달 살이 때문에, 앞으로 써내려 갈 글들은 대부분 무엇을 했고 먹었다 보다는 무엇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다로 채워질 예정이다. 나조차 내 결정에 확신이, 내 미래에 대한 긍정이 부족하기 때문에 걱정말고 퇴사하고 떠나세요! 라고는 절대 말 못하겠지만, 혹시나 비슷한 상황과 비슷한 걱정들에 도움이 될까 하여 써내려 간다. 또한, 훗날 이 한달 살이에 대한 답습을 위한 기록이다.


먼저 나는 지극히 평범한 성장과정에 약간의 낭만을 버리지 못한 28세 청년임을 밝힌다.

대학정도까지는 뒷바라지 해줄 수 있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남들 공부할 때 열심히 공부해서 운 좋게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고, 거기서 영상을 조금 접했었다. 영상에서 가장 큰 매력을 느낀 것은 이야기였고, 그 때부터 허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무언가 삭막한 세상에 지고 싶지 않은 약간의 낭만을 길렀던 것 같다. 그렇게 들어간 회사는 나의 모든 낭만을 철저히 박살냈다. 막중한 책임감, 끝나지 않는 업무, 험난한 인간관계 뭣하나 쉽지 않았던 회사생활은 빠르게 내 삶을 점령해 갔고, 나도 모르게 그런 삶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그러다 1여년 만에 오랜 친구를 만났다. 2~3시간의 짧은 만남 뒤 그 친구는 나에게 그동안 알던 내가 아니라고 했다. 그 짧은 한마디에 나는 오랫동안 무엇을 잃었나 고민을 했고, 그 고민은 점점 커져서 이 순간에 이르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내가 회사에 말한 퇴사 사유이자 고민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없이 이뤄진 성급한 취업"이었다.


그래서, 위의 제주 한달 살이 개요에 하나를 추가해보자면

목표: 어떻게 살지 남은 인생의 큰 그림 그려보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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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델 문도"의 '치아바타'와 '히비스커스 차'

한 달 동안 제주도를 돌아다니면서, 남은 몇십년 동안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면 엄청난 이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