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일차 - 주변답사와 일용할 양식
2일 차 오전을 "델문도"에서 쏟아붓고, 점차 밀려드는 인파에 피난 가듯이 흘러나왔다.
유명하고 이쁜 곳도 좋지만, 그래도 1달 동안 살 곳인데 숙소 근처를 답사해봐야겠다는 생각dp 네비를 끄고 그냥 도로를 따라 이리저리 굴러보았다. 그렇지만 제주도에서 차를 몰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제주도에서 네비가 아닌 주위 풍경을 보면서 운전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고된 일이다. 몇미터 단위로 달라지는 바다 색깔을 보고 있노라면 전방주시 따위는 머릿속에서 잊혀진지 오래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금 가다가 멈추기를 몇 번, 이 아득한 풍경에도 계속 폰과 카톡을 확인하는 스스로를 보며 아무도 갑갑하게 안하는데 스스로 갑갑함을 느끼는 자신이 답답했다. 파도가 오가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 펼쳐놓은 상태 그대로 있는 캐리어와 텅빈 냉장고를 보니 나 뿐 아니라 이 집도 아직 한 달을 보낼 준비가 안된 것 같았다. 대학 진학 후 7년 자취 경력이 빛날만큼 라면과 볶음밥은 자신있었지만, 제주도에는 "배달의 **"이 얼마나 걸릴지, 있어도 배달비가 음식비보다 더 나올 것 같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자급자족은 피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오늘 밤에는 3박 4일동안 여자친구가 귀한 시간을 내서 오시기 때문에, 무언가라도 잘 해먹여야 하는 사명이 있었다. 그렇게 어떻게 보면 생애 처음으로 오롯이 나를 위한 제대로 된 장을 보러갔다. 운전하기 좋다는 제주이지만 제주시는 서울과 버금갈 정도로 교통이 많기 때문에, *마트 등의 대형마트를 피해 함덕에 있는 어느 동네나 있을 법한 적당한 크기의 지역마트를 방문했다.
가장 오래 걸린 것은 이 된장찌개와 김치찌개의 맛을 정말 순수 된장과 김치로 낼 것인지, 아니면 조미료의 힘을 빌린 뒤 감자, 무, 두부, 고기 등으로 얄팍하게나마 몸을 속일 것인지 하는 것이었다. 물론 라면만 끓이던 자취생이 할 수 있는 선택은 후자였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는 그 선택이 매우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흑돼지의 고장 답게 정육코너에는 정말 수많은 고기가 있었고, 2일차의 패기로 모든 부위별로 2인분씩 바로 구매를 했다. 어차피 1달 있을 것인데, 냉동시켜두면 언젠가는 먹겠지. 고맙게도 고기를 사고나니 또 무엇을 사야할지 명확해졌고, 한라산 소주 1묶음과 맥주 등등을 자연스럽게 집어넣었다. 계산할때쯤 카트 안을 보니 너무나 계획없이 막 담아 넣은 것이 조금 민망했지만, 계산대 아주머니께서 딱 보자마자
"한달 살이하러 오셨나봐요?"
라고 하시는 것을 보면 이와 같은 선택은 전형적인 제주 한달 살러들의 선택이었나 보다.
이 상의 후기를 말하자면,
1. 고기는 역시나 고깃집에서 먹어야 한다.
2. 안주는 언제나 국물 있는 따뜻한 것이 최고다.
3. 한라토닉은 진리다. (토닉워터를 위해 결국 제주시까지 나왔다.)
4. 술은 섞어 마시면 안된다.
이렇게 오늘의 성과는, 된장찌개를 그래도 양념만 있으면 양껏 푸짐하게 고퀄처럼 만들 수는 있다.
아직은 퇴직 인사명령도 안나서인지, 제주도에서 외로울 틈이 없어서인지, 작년에 떠났던 여름 휴가? 정도의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