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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철 Oct 15. 2024

7) 오무라 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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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오무라 수용소     


택시로 여관과 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일하다가 3일 만에 배에서 밥 먹고 잠잘 수 있게 되었다. 선장의 강력한 추진력 때문에 된 것 같았다. 매일 아침 8시에 일어나 청소하고 데끼 이다 뜯어내는 작업을 했다. 못 쓰는 이다가 한 트럭 정도는 나왔던 것 같다. 대리인도 나름대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일은 하는 것 같은데 공구는 완벽하게 공급되지 않고 있었다. 주식(주로 쌀)과 부식(반찬) 그리고 갑판 선용품은 체항용(항구에서 머무름)으로 하꼬다데에서 따로 구입했지만 기관실에서 사용할 공구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았다. 그래서 기관부원 일부는 갑판부원들과 함께 데끼 이다 뜯는 일을 돕기도 했다. 하지만 배에서 먹고 자고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진척이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날 기관장이 웃는 얼굴로 식당으로 들어섰다. 그리곤 묻지도 않았는데 컨베이어 모터 2개를 분까이(분해) 했다고 말했다. 선장이 놀라면서

“공구도 제대로 없다면서 어떻게?”

“옆 배에서 잠시 빌려 왔지예”

“엉, 옆 배에 사람이 있어?”

“아니예, 들어가서 기양 갖고 왔심더”

“....”

선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라고 논평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알고 보니 기관장이 직접 기관부원들을 데리고 옆 배로 가서 필요한 공구 일부를 챙겨 온 모양이다. 도둑질이었다. 하지만 사건은 그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다.     


갑판장 이석태 영감도 지난밤에 옆 배에 들어갔던 모양이다. 사실 K808호 옆에는 K808호와 쌍둥이 배라고 불러도 될 만한 배가 2척이나 계류(항구 안벽에 접안)되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옆 배엔 당직 선원이 아예 없었고 그 건너 배에는 당직 선원이 있었지만 낮에만 한 명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리고 당직도 철저하게 서는 것 같지도 않았다. 우리 선원들이 들어가기 시작한 배는 바로 옆에 있는 배였다. 일본 어선들은 우리와 달리 입항하면 거의 모든 선원들은 집에서 쉬다가 출항하기 하루 이틀 전에 귀선으로 하여 출항 준비를 하였고, 배가 항구에 있을 동안의 배 관리는 회사에서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나중에 보니까 기관부가 주로 기관실 공구를 홈쳐 온 반면, 갑판부는 갑판과 처리실에서 필요한 용품 그러니까 데끼 칼(갑판에서 사용하는 칼)이나 숫돌, 빗자루, 깡깡망치(금속 표면을 때려 녹을 제거 하는), 스크래퍼(scraper,금속의 녹을 긁어내는 것) 등을 훔쳐왔었다. 문제는 사건의 크기가 그쯤해서 멈추지 않고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식칼로 침실 문을 따고 들어가 그쪽 배 선원들의 생활용품도 훔쳐오기 시작했다. 겉모습만 본다면 완전 무장 강도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술, 담배, 과자, 라면, 통조림, 포르노잡지, 옷, 장갑, 신발, 양말, 약 그리고 심지어 갑판장은 지금의 노트북 크기만 한 소형 TV를 훔쳐오기도 했다. 갑판장은 훔쳐온 걸 30개월 후엔 집에 가져 갈 ‘시꼬미(준비물)’라면서 침실 선반 위에 모셔 두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훔쳐온 것들 중 약, 과자 같은 유효기간이 있는 것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유효기간이 이미 많이 지나버린 물건들이라는 것이다. 그걸로 미루어 보건데 배가 방치 된지 아주 오래 되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런 의심을 더 강하게 한 것으론 일부의 물건들이 방이 아니라 주거 공간 입구에 마치 버려진 것처럼 쌓여 있기도 했다는 것이다. 포르노잡지 같은 것은 은밀한 사생활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 침심의 깊은 곳에 있어야 함에도 식당 입구에 여러 권이 쌓여져 있는 것도 그랬다. 그러고 보니 옆 배 선원들의 침실엔 옷 등을 비롯해서 생활용품이 제대로 안 갖추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 말미암아 현재 옆 배는 버려진 배라는 주장이 있을 정도였다. 아무리 중고라도 몇 억은 나갈 트롤어선이 버려질 까닭은 없지만 그것은 버려진 배에 어울리는 빈 배가 아닌가 하는 상상을 가능하게 했다. 버려진 혹은 텅 빈이라는 말이 주는 가벼움이 우리의 도둑질에 대한 무거운 느낌을 상쇄시켜 주고 있었다.    

 

그래서 훔쳐 온 ‘쓰리 세븐’ 담배 맛도 우리의 저급 담배보다 훨씬 더 쓴 맛이 났던 이유도 조금을 알 것 같았다. 그렇다, 옆 배의 온갖 물건들은 선원들이 버리고 간 것이라는 생각이 확산되다 보니 이제 옆 배가 ‘무주공산(無主空山)’처럼 여겨졌고 거의 모든 선원들은 밤이 되면 마실 나가듯 그 배로 들어갔었고 가져 온 것 물건들도 마치 수렵의 전리품처럼 경쟁적으로 비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결국 경찰이 뜨고 말았다. 경찰은 옆 배로 들어가서 무언가를 조사하는 것 같더니 우리 배 주위에서 우리를 계속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배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경찰이 뜬 이후부턴 그 배에도 낮 당직을 서는 사람이 보였다. 하지만 삼엄한 경계가 아니었음은 분명했다. 왜냐하면 당직은 밤 시간엔 집으로 돌아가는 게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형식적으로 우리를 관찰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 배로 들어가려는 선원들이 몇몇 있었다. 처음에 들어가지 못해 자신은 별로 챙긴 게 없다고 생각하는 선원들이 그들이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선장은 하지 말라고 지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누가 그 배에 들어가서 도둑질을 했느냐 와는 상관없이 모두가 공범인 것은 분명했다. 훔쳐 온 담배를 모두가 나누어 피고 술도 나누어 마셨으니 말이다. 거의 매일 밤 훔쳐 온 ‘사케(일본소주)’를 선원들은 어두운 갤로우스(선미 마스트) 밑에 모여서  마셨다. 우리에게 항구의 밤은 그렇게 어둠 속에서도 더 좁은 어둠이었다.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작은 유리컵에 든 사케를 마시면서 갑판원 이상정이 나가사키에 있다는 ‘오무라 수용소’ 이야기를 꺼냈다. 

“그 쭈게 잡히가몬 좆 됩니다”

3항사가 놀라면서 물었다.

“잽히 가밨어?”

“오무라 수용소는 그래도 견딜만한데 한국 가몬 나라 망신시킸다고 좆 나게 맞십니더”

내가 물었다.

“몇 번 가봤는데?”

“국내선 탈찌게 두 번”

“이거는 우찌되노?”

“이거는 완전 좆 되는 기지”

이상정의 말이 짧았다. 3항사는 그런 것에 예민했었다. 갑판원 김기운이 느려터진 목소리로.

“이거 씨바 우리 다 자피가는 거 아이가?”

“아무리 빈 배라케도 걸먼 걸리는거 아이겠습니꺼”

그때 눈이 작은 헷또가 눈을 깜박거리며 이상정의 어깨를 툭 친다.

“좆같은 소리하지 말고 술이나 처 무라 새끼야!”

“니는 시발 놈아 안 자피가서 모린다.”

“야 시발 놈아 나는 월남에도 갔다 왔다!”

“이기 월남하고 같나?”

“그라몬 지금 총알이 대가리 위로 핑핑 날라오나”

3항사 강철이 끼어들었다.

“헷또는 월남에 진짜 있었어?”

“앗따 3항사 와이캅미까 월남에서 사람도 지기 봤다 아인교”

나는 놀랐다.

“진짜로?”

헷또는 사케 한 잔을 거의 원샷하며

“아 진짜 사람 말을 못 믿네”

이상정이 손가락으로 헷또를 가리키며 거들었다.

“야는 진짜 월남 갔다왔십니더”

갑판원 김억준이 끼어들었다. 그는 약간 말더듬이었다.

“그그 그라먼 도도돈 많이 버벌었겠네요”

“그때가 봄 날이였제”


헷또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오무라 수용소 끌려갔다가 한국으로 송환되어 좆 나게 맞는다는 얘기를 듣자 모두는 마셨던 사케를 지금이라도 당장 뱉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물이었다. 우리 배 옆에 묶여 있으면서 우리에게 탈탈 털리고 있던 그 배는 나중에 결국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관리할 사람도 없고 이미 한국선원들의 손을 탔으니 그곳에 계속 묶어 둘 수도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하지만 경찰이 우리를 잡으러 오진 않았고 그 이후론 아주 가끔씩 경찰이 우리 배 주변으로 오긴 왔지만 우리를 감시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평소에 하는 정기적인 순찰일정인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 것은 사실이었다. 결국 경찰이 우리를 살피는 게 아니라 우리가 경찰들의 동태를 살피는 형국이 된 것이다. 사실은 같은 것이지만.   

  

대리인의 말대로 5일 후 모든 공구가 제대로 공급되어 본격적으로 정비 작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둑이 발 저리는 현상이라고 할까, 우리는 작업 중에도 배 바깥에 경찰이 보이면 약간의 긴장감을 갖게 되었다. 배 분위기가 그렇다보니 선장은 최대한 빨리 출항하고 싶어 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K808호는 물론 그 배도 매물로 내 놓은 배라고 했다. 하지만 아직은 K808호처럼 누가 살 것인지는 확정이 되지 않는 배라고 했다. 그런데 일본 선주가 어떤 마음에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K808호가 팔리자 K808호에 있는 주요 공구들을 그 배로 옮겨 놓았다고 했다. 팔린 집을 비워주는 심리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게 이미 오래전 일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 배가 우리 배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배에 있는 잡다한 물건들은 모두 선원들이 버리고 간 게 맞았다. 그 배의 선원들이 아니라 예전에 우리 배에 있던 선원들이.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배의 물건들을 찾아온 셈이다.     


사건의 뿌리는 일본선주였다. 그래서 일본선주는 우리가 그 배에서 물건을 가져가고 있는 줄 알면서도 ‘그래도 잃을 건 별로 없다’는 심정으로 경찰에게 그 배를 보호해 달라는 신고만 했지 우리 배를 수사해 달라는 요청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하꼬다데 체항 중엔 선장만 본사를 통해 알고 있었고, 출항 이후엔 선장에게 그 말을 전해들은 기관장에 의해 온 배에 퍼졌었다. 그 얘길 들은 3항사는 약간 흥분해서.

“시불 놈으 쪽바리 새끼들, 팔아 처 묵었는디 공구는 왜 갖고 가 가긴”     


만약 우리가 입건 될 경우 K808호 매매계약이 취소되는 것은 물론 후속 사건이 복잡해질까 싶어 그 정도 선에서 처리했다는 게 본사의 추측이었다. 그렇다면 일본인 대리인도 그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아니 오히려 대리인이 우리 배 선원들이 가져온 것들을 은근히 확인하면서 일본선주와 사안의 심각성에 대한 정보를 주고 해결 방법도 조율했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보통 원양어선의 매매 금액은 만만치 않아 대금을 한꺼번에 다 주는 게 아니라 미수금을 안고 매매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대금이 완납되기 전에는 한국에 팔더라도 배의 국적을 한국(가령 부산항)으로 해 주지 않고 파나마 같은 곳으로 해 놓았다가, 완납되면 국적을 한국으로 돌려주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선박 대금도 다 받지 못한 상태에서 그런 사건이 터지게 되면 문제가 엄청 복잡해질 수 있다는 판단을 일본선주가 한 것 같다. 게다가 앞으로도 계속 중고선을 우리 회사 즉 ‘해외어업’에 팔아먹어야 할 것인데, 이번 사건처럼 복잡한 사정이 알려지면 자신들에도 결코 유리하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3항사의 말이 일정부분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시러불 새끼들이 팔아먹었으면 더 좋은 공구를 갖다 놓아도 시원찮을 판에 왜 공구를 빼돌려’ 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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