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 회사를 잃고 다른 일상을 얻었다

평일의 카페와 평일의 약속들

by 기억

평소와 같이 신나게 주말을 보내고, 본격적인 백수 라이프가 시작됐다. 모든 직장인이 월요병을 앓는 끔찍한 월요일이다. 출근을 안 하는 나는 월요병 완치! 알람 없이 7시 반에 눈을 뜨고, 다시 잠이 들어 9시 반이 되어서야 침대에서 나왔다. 어제저녁에 새로 정리해놓은 노션 데일리루틴 페이지를 켠다. 스트레칭 체크박스에 체크를 하고는 매트로 내려가 폼롤러를 굴렸다. 이렇게 여유로운 아침 스트레칭이라니. 기분이 나쁘지 않다. 스트레칭 다음 순서인 뉴스레터 보기와 독서까지 끝내고 늦은 아침을 먹으러 방 밖으로 나갔다.


아침 메뉴는 요거트와 그래놀라, 그리고 커피. 조용한 집에 나 혼자 늦은 아침 식사. 이 얼마나 행복한 조합인지. 정해 놓은 몇 가지 스케줄이 있지만 시간은 아주 충분했다. 오늘은 8월에 신청해놓은 운전면허증을 드디어 찾으러 갈 예정이다. 8월 말에 찾으러 갔어야 하지만, 매일 정신없이 퇴근하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 일상에는 출근 말고도 다양한 것들이 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는 평일 대부분의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8시 출근 5시 퇴근이긴 했지만 야근을 하다 보면 또 6~7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보낸 시간들이었다. 그러면서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다' 생각했었지.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 생활에 적응을 한 게 아니라, 그냥 다른 것들을 미루고 지냈던 것 같다. 내 평일의 에너지를 온전히 한 곳에 쏟은 채.


경찰서에 가서 새로 운전면허증을 받는 건 2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간단한 일을 한 달 넘게 미루고 있었네. 다시 동네에 돌아온 후에는 카페에 갔다. 나처럼 아이패드 혹은 노트북을 들고 혼자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무언가를 열심히 준비하는 대학생 혹은 취준생이겠지. 시간이 어느새 3시가 되어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를 먹으면서 카톡을 켰는데, 문득 전전 직장 동료에게 연락을 해볼까 싶은 생각이 든다. 카톡을 보내자마자 1초 만에 답장이 왔다. 우리는 1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수다를 떨고, 10월 중에 약속을 잡았다. 강남에 위치한 동료의 현 직장 근처에서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내가 출근을 한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휴가를 내고 만날 수는 있겠지만, 중요한 건 거기에 쓸 에너지는 없다는 거다.


내친김에 미루고 미뤘던 남은 청첩장 약속도 잡았다. 지난주만 해도 이제 도저히 약속을 잡을 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잘 끼워 맞추니 주말 일정 안에 모두 차곡차곡 들어갔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사이에 주말이 한 주 더 늘어난 것도 아닌데.


회사를 다니면서 결혼 준비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인지, 결혼식 날짜가 더 가까워져서 인지 그동안 말도 안 되는 피 터지는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아, 그래서 다들 결혼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예민해지는 거였구나. 나는 스트레스가 없길래 간단하게 준비해서 괜찮은가 보다 했는데. 또 미루고 있던 거였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PT 수업을 받았다. 열 번의 수업을 받는 동안 분명 변화는 있었다. 그런데 슬프게도 나만 아는 변화라는 것... 아 멀고도 험한 다이어트의 길이여. 아까 카페에서 샌드위치 왜 먹었을까. 샐러드나 먹을 걸. 그래도 이제 맘껏 운동할 시간이 생겼으니 다시 시작하면 된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매일 오전 헬스장에 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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