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볼거리가 얼마나 많은가.
상세일정을 보니 바티칸, 시스타나 예배당, 성베드로 대성당, 판테온, 트레비분수, 진실의 입, 콜로세움을 다 보고 저녁에는 토스카나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다 할 수 있나 했지만 케이 투어는 다 했다.
대신 일정에 맞추려면 일찍 일어나는 새가 되어야겠지?
아침 일찍 일어나 풀지도 못한 짐을 다시 싸서 대형버스 짐칸에 모두 넣고 출발했다.
바티칸은 언제나 사람이 많다. 아침 8시 30분부터 줄을 섰다. 가이드님의 오늘은 조금 일찍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라는 응원을 들으며 기다린다.
서서 기다리는 게 세상에서 젤 시른 아이들은 10분마다 언제까지 서 있어야 하느냐고 물어본다. 로마는 이미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는지 아무리 아침이라도 조금만 서있어도 얼굴에 닿는 해가 따갑기만 하다. 어느새 엄마가 양산을 펼쳐 들고 손자들 얼굴에 햇볕을 가려준다.
가이드가 나눠주는 종이에 천지창조 그림을 보며 기다리는 동안 설명을 들었다. 아이들에게 아무리 이거 봐봐 들이밀어도 관심이 없다. 하지만 뒤 돌아보니 아이들과 달리 아빠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천주교 신자인 엄마는 그 누구보다 진지했다. 교황님이 사시는 곳이어서 그런가 보다. 두 손을 모으고 여차하면 기도할 자세다.
두 시간은 기다리고 드디어 입장. 바티칸은 언제나 사람이 많다. 사람에 휩쓸려 걸어 걸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지나갔다.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성 베드로 성당을 나와 광장에서 가이드님이 설명하신다.
저기 저 창문 보이시죠? 저기가 바로 매년 교황님이 새해에 나와서 손을 흔들어 주시는 곳입니다.
엄마의 눈이 반짝거린다. 말하지 않아도 눈빛에서 느껴졌다.
'내가 여기 와있다니!!'
두 시간을 걷고 나와 10분만 걸어가면 식당이라는 말에 단체 투어 40명이 로마 길을 행군한다.
스웨덴의 전혀 덥지 않은 날씨에 우린 이미 길들여진 걸까. 40명 중에 유일한 어린이인 우리 둘째는 네 시간쯤 쉬지 못하자 매우 힘들어했다. 오래간만에 더위에 볼도 빨갛게 되었네. 오랜만에 느끼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내리쬐는 햇볕에 젤리 슈즈를 신은 나도 발바닥이 따끔거렸다. 로마에선 젤리 슈즈를 못 신겠네.
팔뚝에 땀을 바로 소금으로 바꿔 버린다는 말로만 듣던 로마의 여름이구나.
식당까지 겨우 달래서 왔더니 둘째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나는 이게 울일인가 싶어 깜짝 놀랐다.
"왜 왜?? 왜 울어?"
"아니, 겨우 걸어왔는데 식당에 자리가 없는 줄 알았어."
"아냐 아냐 무슨 소리야~ 자리가 왜 없어.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지. 자자, 콜라 시켜줄게 울지 마~~"
"더워도 좀 참아야지. 너,, 잊었나 본데,, 서울도 이렇게 더웠어."
"응?? 그래??"
"어,, 너 이 정도 더위로 울면 한국 못가~~"
"아냐 아냐. 그럼 참아볼게."
한국 가서 못 산다는 말에 깜짝 놀란 둘째는 눈물을 뚝 그쳤다.
추운 곳에 산 결과다. 우리는 일 년 반 만에 더위에 약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반나절만에 더위에 지쳐 입맛도 잃어버린 우리와 달리
대프리카라 불리는 대구에서 오신 엄빠는 점심도 맛나게 드신다.
아빠는 어느새 와인도 한잔 시키셨다.
그래, 엄빠라도 즐거우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