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
어릴 때 학교에서 꽤 많이 듣던 이야기입니다. 물을 구하려고 땅을 여기저기 파다 보면 우물 하나도 제대로 팔 수 없다는 말인데요. 이것저것 여러 일을 하는 것보다 한 가지를 꾸준히 하는 게 낫다는 뜻이죠.
사실 예전엔 이런 말이 꽤 맞는 이야기였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 후, 적당한 회사에 취직을 하며 돈을 벌다가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삶이 꽤 전형적이고 안정적인 대세의 흐름이었으니까요. 누구나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한 적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한 분야를 꾸준히 파다 보면 시간이 쌓이면서 전문성이 생기고 사회적 역량도 커져갑니다. 하지만 그렇게 평생을, 한 분야에서만 일을 하다보면 권태기가 찾아올 때가 있는데요. 천직이라고 보이는 사람들조차도 살면서 한 번쯤은 ‘이게 내 길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 마련입니다.
모두 내려놓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번아웃도 찾아오죠. 이럴 땐 이미 한 우물만 판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다른 우물을 파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 됩니다. 그래서 우린 잠시 쉬었다가, 다시 또 이미 판 우물을 계속해서 파기 위해 돌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직업’에 대한 인식 또한 다양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보다는 여러 분야를 오가며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남다른 접근법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좀 더 주목받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 또한 높죠. 저만 해도 게임기획자로 일하지만 캘리그라피나 드로잉, 에세이 쓰기 등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분야의 우물도 함께 파고 있습니다. 본업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삶의 에너지가 다른 분야에서 채워지는 것을 실제로 경험했고, 그 경험이 오히려 본업의 역량을 강화하는 동기가 되곤 합니다.
여러 우물을 파는 기준은 뭘까?
물론, 아무 생각 없이 닥치는 대로 많은 우물을 파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 우물을 팔 때도 나름의 기준이 반드시 필요한데요. 그렇지 않으면 말 그대로 ‘중구난방’, ‘죽도 밥도 안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기 때문이죠. 이거 찔끔, 저거 찔끔 하고 그만두는 끈기 없는 사람과 여러 우물을 진지하게 파는 사람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중심이 되는 우물을 먼저 깊게 파야 한다는 겁니다.
이 우물을 깊게 파나가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호기심을 넓혀 나가는 것이죠. 이렇게 넓힌 관심과 지식을 다차원적인 사고로 연결하는 능력 또한 키워나가야 합니다.
인생에는 예상하지 않았거나 예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곧잘 일어나곤 하는데요. 어떤 기회가 우리 앞에 나타날지 알 수 없기에 미리 몇 가지 선택지를 만들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 사회에 융통성있게 대처하려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삶을 끌어가기보다, 내 삶을 어떤 방식으로 펼쳐나가겠다는 ‘리딩의 능력’이 필요한 것이죠.
누구나 뻔히 아는 마지막 골대를 향해 달려가는 경주마보단, 이리 저리 가지를 뻗쳐나가며 폭을 넓혀가다 보면 인생의 양감이 더욱 두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하나의 우물에만 매몰되어 있기보다, 다른 우물을 모색하기도 하고 가끔은 일탈도 해보며 스스로의 능력과 한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파고 있던 한 우물도 계속해서 파되, 고개를 들어 다른 우물 자리도 한번 찾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