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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헌 Oct 11. 2023

6. 오, 마이 몰레!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첫 번째 외식은 멕시코 식당 레드 이구아나. 근방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곳답게 정말 사람이 많았고 테이블에 앉으려면 대기를 해야 했다. 나와 솔뫼는 바에 앉겠다고 하여 바로 착석. 구글맵 리뷰에 오래 기다렸다는 평이 많아 걱정했는데 과연 식사를 마치고 나올 무렵에는 대기 줄이 길었다. 타이밍이 좋았어, 럭키! 


앉자마자 나초칩이 나왔다. 이것은 거의 빛의 속도, 라고 생각했는데 주방 안쪽을 보니 나초칩이 담겨진 바구니가 어른 키만큼 쌓여 있었다. 나초칩만 내주고 메뉴판은 안 가져다주길래 점원을 부르려니 솔뫼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는 식당에 들어가서는 안내하는 점원이 올 때까지 서 있어야 하고, 자리에 앉아서도 점원이 주문을 받으러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관습이라고 했다. 메뉴판 받는 것도, 메뉴를 결정하고 주문하는 것도 내 마음이 아니고 점원이 알아서 와주길 기다려야 하는 것. 이 동네 룰이라고 하니 따르긴 하는데 흠, 확실히 어색했다. 점원들이 바쁘면 또 몰라, 그냥 서 있거나 자기들끼리 수다 떨고 있는데도 무조건 기다리라고? 메뉴판을 충분히 훑어보고 여유롭게 메뉴를 고를 수 있게 하는 배려라고 솔뫼가 부연해 주었고 메뉴 고르는 데만 한세월인 느림보로서는 재촉하는 편보다 나았지만 나는 배가 고팠고 지나치게 한국인이었다.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기도 전에 뭘로 드려? 라고 묻는 점원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치찌개 둘이요, 하며 주문하는 손님, 팔팔 끓는 김치찌개 김이 가시기도 전에 뚝배기째 삭 비우고 이쑤시개로 이 쑤시며 여기 계산이요, 카드를 내미는 동시에 카드 긁고 사인까지 알아서 대신 해주는 손님과 사장님의 화려한 콤비 플레이 같은 것들에…… 영원히 익숙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매번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의 속도와 나는 너무 맞지 않다고도. 그런데 모두가 느긋한 그곳에서 나는 홀로 성질 급해 외로운 한국인이었다. 


다행히 허기로 폭발하기 전에 점원 선생님이 와 주셨고 우리는 몰레와 타코를 주문했다. 몰레는 구글맵 리뷰에서 추천이 많았고 메뉴판에도 대표 메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럼 먹어봐야지! 메뉴판에는 몰레에 관한 간단한 설명도 있었는데 말리거나 신선한 고추, 견과류, 양념, 허브, 과일과 야채 등으로 만든 멕시코 소스라고 했다. 나중에 좀 더 찾아보니 우리로 치면 고추장쯤 되는 대표 소스라고. 


종류도 여러 가지였다. 까만 파시야 고추가 들어간 몰레 네그로Mole Negro(몰레의 왕이라고 적혀 있었다!),  황금 건포도와 노란 토마토, 노란 주키니가 들어가는 몰레 아마릴로Mole Amarillo(amarillo가 스페인어로 노란색을 뜻한다고), 고추의 일종인 과히요와 말린 앤초 칠리로 만든 몰레 포블라노Mole Poblano, 말린 과히요와 땅콩, 호박씨 등이 들어가는 레드 피피안Red Pipian 등등. 


내가 고른 것은 몰레 포블라노. 땅콩, 참깨, 호두, 건포도, 바나나와 멕시칸 초콜릿 등 좋아하는 재료들만 나열되어 있었기 때문에(대표 재료인 과히요와 말린 앤초 칠리는 대충 고추나 향신료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맛있는 것에 맛있는 걸 더하면 무조건 맛있을 수밖에 없잖아?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몰레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요리가 나왔다. 오, 몰레! 두 번째 폭발 위기를 겪고 있던 나는 두 손을 모으고 경건하게 몰레를 맞이했다. 보자마자 침이 꿀떡 넘어갔다. 커다란 접시 위 닭고기가 안 보일 만큼 풍성하게 끼얹어진 갈색 소스, 거기에 볶음밥과 핀토빈이 또 한 접시. 비주얼만으로도 이미 배가 부른 것 같았다. 잘 먹겠습니다! 기록용 사진을 후다닥 찍은 나는 얼른 몰레부터 떠먹었다. 



…… 으응?

한 숟갈 더 떠먹었다. 

…… 음?

고기랑 같이 먹으면 좀 다르려나? 다시 한 숟갈. 

…… 흐음. 

나는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경건해졌다.

솔뫼가 맛있냐고 물었다. 나는 누가 들을세라 짧게 속삭였다. 아니. 


솔뫼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의외였다. 웬만한 건 다 맛있게 먹어서 당신은 미각이 없느냐는 말까지 들어봤는데, 멕시코 음식은 당연히 좋아하는 내가, 멕시코 대표 음식이라는 몰레를 먹고 이런 평을 하게 될 줄이야. 

단순히 맛이 없다고 하는 건 몰레의 맛을 표현하기에 부족하다. 그 이상이다. 그 이상이란 게 뭘까 한다면 마치…… 내가 만든 음식 같다고나 할까?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요알못이다. 요리를 얼마나 못하는가를 이야기할 때 나는 김치찌개를 만들려다 냄비째로 버렸던 일화를 들려주는데 그러면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탄식을 내뱉는다. 김치찌개는 망하기가 더 어려운데……. 대체 어떻게 하면 김치찌개를 망할 수 있는지 궁금해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확한 답을 해줄 수가 없다. 뭐가 잘못되었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에. 그걸 알았다면 김치찌개를 망칠 일도 없지 않았을까.  


다음에 이어지는 말도 똑같다. 괜찮아, 요리 별로 안 어려워. 하다 보면 늘어. 그래, 하다 보면 늘겠지. 나도 할 수 있어! 해서 요리라는 걸 해보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노력한 적이 있다, 라는 과거형이다. 더 이상은 하지 않는다. 요리를 하지도, 해보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이런 결론을 내리기까지 이차저차한 시간들이 있었는데 그 시간들에 관해 말하자면 따로 책 한 권을 써내려야 할 지경이므로 할 만큼 했다, 정도로 줄이고…… 어쨌거나 그 시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이게 무슨 맛이지? 였다. 


이게 무슨 맛인가.

이게 얼마나 슬픈 물음인지는 내뱉어 본 이들만이 알 수 있다. 


맛에 관한 표현은 굉장히 많다. 단맛만 보더라도 달다, 다달하다, 달달하다, 달콤하다, 달곰하다, 달큼하다, 들큼하다, 달보드레하다, 달짝지근하다, 들쩍지근하다, 새콤달콤하다, 시큼달큼하다. 매운맛이라면 맵다, 매콤하다, 매큼하다, 매움하다, 매옴하다, 칼칼하다, 얼큰하다, 알알하다, 얼얼하다, 알싸하다, 맵싸하다, 맵디맵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맛인가, 라는 물음은 이렇게나 많은 어휘가 있는데 이걸 설명할 단어가 없다는 뜻이다.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물음이되 물음이 아니다. 재료와 맛의 인과 관계를 만든 이조차 알 수 없을 때(이 재료에서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음식의 맛이 싱겁거나 짜거나 달거나 맵거나의 영역을 넘어설 때(조금 속되게 표현하면 한마디로 노답인) 터져 나오는 탄식이자 한숨이다. 


그 탄식과 한숨 같은 맛이 몰레의 맛이었다. 



나는 솔뫼의 타코를 집어 먹으며 메뉴판을 재차 확인했다. 뭐가 문제인지 파악해보고 싶었다. 분명히 맛있는,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재료의 조합이었다. 문제는 없었다. 몰레 포블라노는 잘못이 없었다. 몰레 포블라노를 고른 나도 잘못이 없었다. 다만 우리가 맞지 않았을 뿐. 맛있는 거에 맛있는 거를 더해도 맛이 없을 수도 있는 거였다. 나는 그걸 몰랐고 내가 모르던 걸 몰레가 가르쳐 주었다.      


이 글을 쓰며 찾아보니 몰레 포블라노는 멕시코의 기념일인 싱코 데 마요 때나 생일, 결혼식 같은 특별한 날 먹는 음식이었다. 메뉴 설명에 ‘푸에블라에서 사랑받는 Puebla’s veloved’이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푸에블라 식으로 만든 음식을 포블라노라고 한단다. 푸에블라의 식문화는 멕시코 전통 요리법에 식민지 시기 유럽에서 들어온 식재료와 요리법이 더해져 독창적이고 다채롭기로 유명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그런 푸에블라 식문화의 핵심이자 소울인 몰레 포블라노를 내가 만든 음식에 빗대었다니, 문제도 잘못도 모두 나였고 반성의 의미로 몰레를 한 번 더 시도해 볼까 솔뫼에게 물었더니 나보다 더 음식에 호불호가 없고 웬만한 건 다 좋다 하고 내가 남긴 몰레를 다음 날 점심으로 가져가 먹어치우기도 했던 솔뫼가 웃으면서, 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음, 그 돈으로 다른 걸 먹자. 몰레는 솔뫼마저도 영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 마이 몰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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