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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헌 Oct 12. 2023

7. 다정한 마법 같았던 하루

솔트레이크시티에서의 첫 주말은 태국 음식 축제로 시작했다. 태국 음식 축제를 한다는데 가볼래? 솔뫼가 묻자마자 오케이!를 외쳤다. 태국도 좋아하고 음식도 좋아하는데 태국 음식? 그것도 축제를 한다고? 물을 것도 없이 오케이다. 


토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채비를 했다. 평소라면 하느작거렸을 테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정해둔 일정이 많아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축제 장소는 불교 사원인 왓 다마구나람Wat Dhammagunaram. 왓wat은 태국어로 사원. 



자동차로 30분 거리라길래 가까운 줄 알았는데 고속도로를 타고 한참을 달렸다. 정확한 거리를 확인하니 집에서 25마일, 약 40km. 거리 감각이 없는 나를 위해 솔뫼가 서울에서 용인쯤 되는 거리라고 말해주었다. 찾아보니 시도, 카운티도 다르다. 솔뫼의 집이 유타주 솔트레이크 카운티 솔트레이크시티, 왓 다마구나람은 같은 유타주지만 다비스 카운티 레이톤시다. 


으앗, 멀잖아! 나는 자동차로 30분이라고 해서 대충 서울 홍대에서 광화문 정도의 거리를 생각했단 말이다. 서울과 이곳의 거리 감각이 같을 수 없다는 걸 전혀 몰랐던 것이었다. 이렇게 먼 줄 알았으면 솔뫼에게 장거리 운전이 괜찮겠냐고 물었을 텐데. 물으나마나 솔뫼는 괜찮다 했겠지만 그래도. 솔뫼는 이 정도는 미국에선 장거리도 아니라고 했다. 땅이 넓으니 확실히 시간과 공간 감각이 다르다. 미국에 사는 사촌도 자기 동네에서 솔트레이크시티까지 차로 8시간‘밖에’ 안 걸린다며 가깝다고 했다.      


축제는 왓 다마구나람 마당 잔디밭에서 열리고 있었다. 사왓디 카. 인사하고 들어서니 천막 아래 음식을 파는 좌판이 예닐곱 개, 작은 가설 무대에서는 음악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아마추어인 것이 분명한 밴드가 음악을 연주했다. 그 음악에 맞춰 몇몇이 무대에서, 잔디밭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춤을 추다가 일하러 가고 노래는 부르다가 말다가 이 사람이 불렀다 저 사람이 부르고. 좌판에 선 사람들도 어깨를 들썩이고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승려복 입은 스님들은 사람들이 늘어나자 부랴부랴 간이 테이블을 세팅했다. 


태국 음식 축제라고 했을 때 떠오른 것과는 전혀 다른,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 벌이는 잔치처럼 소박하고 정겨운 풍경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이거 뭐야, 너무 사랑스럽잖아.  



메뉴를 훑다가 타이티라는 게 있어 무슨 맛이냐 물었더니 대뜸 먹어보라며 컵을 건넸다. 조금만 주셔도 된다고 거듭 말했는데도 큰 컵 가득 얼음까지 넣어서. 시식을 이렇게 많이 주시다니요. 황송하게 받아들고 맛을 보니 상큼하고 달콤했다. 승려복을 닮은 주홍빛까지, 아름다운 맛. 양이 적었다면 당장 한 잔 시켰을 텐데 시식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 대신 타이 커피를 시켰다.


식사 메뉴로는 태국 음식 축제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먹고 싶었던 팟타이. 홍합을 전처럼 부친 것(후에 찾아보니 허이텃이라고 태국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이라고), 쏨땀을 함께 골랐다. 쏨땀은 즉석 제조. 라오스식, 태국식이 있다는데 판매를 맡은 선생님께서 자신이 라오스 사람이니 라오스 스타일로 먹어보라 권하셨다. 라오스 사람이 라오스식으로 만들어주는 쏨땀이라니. 오브 코스, 와이 낫! 재료나 조리법은 비슷하지만 라오스식 쏨땀에는 생선젓갈인 빠덱이 들어가서 조금 더 짭짤하고 매콤하다고. 원래 쏨땀은 라오스가 원조로 라오스에서는 땀막홍이라고 부르는데 이 땀막홍이 태국으로 전해져 현지화되면서 지금의 쏨땀이 되었단다. 우연찮게 쏨땀의 조상님을 만나게 된 것. 


팟타이, 허이텃, 쏨땀 모두 스티로폼 박스 하나 가득이라 차려놓으니 잔칫상이 따로 없었다. 팟타이는 두말할 것 없이 맛있고 허이텃은 조금 식긴 했지만 홍합이 가득 들어 있어 반가웠다. 쏨땀은 설명대로 제법 매콤했다. 특유의 얼얼하게 매운 맛이 팟타이, 허이텃과 잘 어울렸다. 콧물을 훌쩍거리며 먹는 동안 옆에서는 아이들이 비눗방울을 불고 뛰어다녔다. 햇살은 강렬하고 그늘은 선선했다. 밴드는 계속해서 쿵짝거리며 어설픈 연주를 했고 누군가 올라와 노래를 부르다 말다 또 다른 사람이 이어 부르다 했다. 비눗방울이 하늘 위로 둥실둥실 떠올랐고 노래가 끝날 때마다 나는 손뼉을 짝짝 쳤다.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분위기로 배와 마음을 불리고는 다시 달려 솔트레이크시티로 돌아갔다. 두 번째 일정은 유타현대미술관UMOCA(Utah Museum of Contemporary Art). ‘더 큰 유타A Greater Utah’라는 주제의 전시가 흥미로워 가보기로 했다. 


제목 그대로 더 확장되고 변화하고 있는 오늘날 유타를 유타 지역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전시였다. 기후 위기, 정체성, 유타 지역 선주민의 권리와 관습, 언어, 지리, 종교, 문화 등 다루고 있는 영역부터 다양했다. 전시 설명에 따르면 더 많은 관점을 아우르기 위해 여섯 명이 공동 큐레이션을 했다고.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았는데 몇 가지만 꼽아보면 우선 입구에서부터 보이던 Jean Richardson 작가의 Diffused Frustrations. 구겨진 포스트잇을 이어 붙여 담요 크기만한 포스트잇을 만들어 걸어놓은 작품이었는데 작가는 불안하고 답답할 때마다 포스트잇을 구겨뜨렸고 그렇게 모은 포스트잇을 풀로 붙여 불안을 덜어주는 담요로 만들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잔뜩 구깃구깃해진 포스트잇이 가벽 하나를 차지할 만큼 컸다. 포스트잇 하나, 주름 하나에 작가의 불안과 답답함이 담겨 있는 셈이었다. 


나 또한 불안하고 답답해서 포스트잇을, 나의 경우에는 다른 무언가들이었지만, 구겨뜨리는 시간이 있었다. 그 무언가가 나일지라도 어찌하지 못하고 구겨뜨릴 수밖에 없는 마음을 모르지 않기에 그 앞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할 수만 있다면 손으로 쓸어주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주름이 다 펴질 때까지 쓸고 또 쓸어주고 싶었다. 손 대신 마음으로 포스트잇을 쓸어내리면서 작가가, 포스트잇이든 다른 무언가든 구겨뜨리며 견디고 있을 이들이 조금 더 무탈하기를, 점점 더 평온해지기를 빌었다. 



두 번째는 Pat Debenham 작가의 All Over This Land. 작가는 2022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 파기를 계기로 당연한 권리를 위해 여전히 싸워야 하는 여성들을 지지하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적혀 있었다. 여성의 임신 중단 권리를 미국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파기했다는 것은 여성이 임신 중단을 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누군가에게는 세상 남의 일일, 그리하여 낙태 그거 좋은 것도 아닌데 하지 말아야지 같은 태평한 소리나 늘어놓을 수 있는 일이겠으나. 여성이 임신 중단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은 자신의 몸에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를 제한당한다는 것이다.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는 미국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서도 큰 논란이 되었고 되는 중이다. 이 ‘여성권 역사상 기념비적인 퇴행’을 두고 전 세계 각계각층의 여성들이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표명했다. 세상 남 일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낙태하면 여자들한테도 안 좋잖아, 같은 소리나 태평하게 늘어놓고 있을 수는 없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위험한 시술을 받고 불법 약을 먹어야 하는 여성들이 있으니까.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맞은지 4년째지지만 여전히 임신 중단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나 또한 참담한 분노를 느끼기에, 이 작품이 고마웠다, 힘이 되었다. 이렇게 서로를 도닥이며 한 걸음씩 떼다 보면 나아가겠지. 세상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우리라도. 그래, 우리라도. 그렇게 믿는다. 



세 번째는 Rocio Cisneros-Vasques 작가의 Nepantla. 제목인 Nepantla는 멕시코 남부와 중미 일부 지역 선주민인 나와틀족어로 ‘사이between’를 뜻한다고 했다. 작가는 15세기 말 아즈텍 사람들이 불렀던 시를 나와틀족어, 스페인어, 영어로 써서 벽에 붙였다. 시들을 배경으로 드레스 한 벌이 공중에 걸려 있다. 


드레스는 흔히 멕시코 모자 춤으로도 불리는 멕시코 전통 춤인 Jarabe Tapatio를 출 때 입는 의상. 붉은색을 주조로 소매깃과 상하의 밑단에 알록달록한 줄무늬가 들어가 화려하기 그지없는 드레스 밑에는 지저분한 재와 먼지가 놓여 있다. 작가는 문화와 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꼭 이와 같다고 적었다. 재와 먼지 위에서 전통 의상을 입고 전통 춤을 추는 것. 실제로 작가는 재와 먼지를 맨발로 밟으며 춤추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고. 퍼포먼스를 볼 수는 없었지만 조금은 그려지는 것도 같았다. 이곳과 저곳 사이에서 부유하는 슬픔이, 이곳과 저곳을 모두 끌어안으며 풍요로워지는 환희가. 



네 번째는 Fazilat Soukhakin 작가의 Queer in Utah 연작. 작가는 LGBTQ+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나라 이란에서 나고 자랐다.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미국에서도 여전히 성 정체성에 따른 불평등과 억압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특히나 후기 성도 교회가 주류를 이루는 유타에서는 성 정체성과 종교적 신념의 충돌로 괴로워하는 퀴어들이 많다고. Queer in Utah는 그로 인한 우울과 자해, 자기 의심과 싸우고 있는 퀴어들을 마주하는 것에서 시작된 작업이라고 작가는 소개하고 있었다. 유타의 퀴어들을 사진으로 찍고 그들이 쓴 문구를 옆에 두었다. 그중에 인상적인 문구가 있어 일부를 옮겨본다. 한국어는 보잘것없는 독해 실력으로 내가 의역한 것.     


“To ensure the continuity of Life, we must Resist against the old order. A New World is wanting to be born, and it is up to us to take the lead in the struggle for transcendence.
삶이 계속되기 위하여 우리는 낡은 질서에 저항해야 합니다. 새로운 세계가 등장하길 갈망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나아가는 길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 12/09/2018 Jean Gargia Periche”
 


'사랑은 자라고 사랑은 빛이다.' 전시와는 별개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관람객들의 작품 :)


전시는 다 보지 못하고 나왔다. 저녁에는 유타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에 가야 했고, 가기 전에 간단히 배를 채우는 게 좋을 듯했다. 전시는 무료인데다 집에서 가까워 아쉬움 없이 다음을 기약했다. 근처 베트남 식당에서 쌀국수와 스프링롤로 요기를 하고 공연장으로 갔다. 사람들이 회귀하는 연어떼마냥 몰려가고 있어서 그들 사이에 끼어 걸었다.


공연장은 유타현대미술관 바로 옆. 로비로 들어서니 벌써 공연이 시작된 듯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었다. 이날 공연은 유타 심포니에서 시리즈로 선보이고 있는 Films In Concert, 영화는 <블랙팬서>였다. 블랙팬서 코스튬을 입은 이가 관객들과 와칸다 포에버 동작을 취하며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다. 나와 솔뫼도 사진을 찍었다. 와칸다 포에버는 오른손이 앞으로 와야 했다. 엇갈리기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왼손을 앞에 두었는데 사진 속에서 블랙팬서 선생님이 내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용서하소서, 마이 로드. 다행히 동작을 바로 잡고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나처럼 헷갈리지 말라고 한 번 더 말해둔다. 와칸다 포에버는 오른손이 앞. 



공연이 곧 시작된다는 안내에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거의 만석이었다. 종종 유타 심포니의 공연을 보러 왔다던 솔뫼가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 처음이라고 했다. 역시 블랙팬서. 곧 지휘자와 협연 아티스트가 등장했다. 협연자는 타마 솔로이스트인 Massamba Diop. 그가 블랙팬서 OST에 참여했다는 소개에 공연에 관한 거라곤 제목만 달랑 알고 갔던 나는 우와,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그런데 진짜 우와, 할 일은 따로 있었다. 오케스트라 뒤편 화면으로 블랙팬서 영화가 나오기 시작했다. 콘서트 속 영화라더니 영화 인트로를 조금 보여주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영화가 나오고 그 효과음과 배경 음악을 오케스트라가 연주해주는 것이었다. 영화를 다 보여준다고? 배경 음악은 오케스트라가 실시간으로 연주해주고? 거기에 직접 OST에 참여한 아티스트까지 와서? 정말? 정말이었다. 나와 솔뫼는 눈을 마주치고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는 이내 영화에 빠져들었다. 한 번 보기도 했지만 영어 자막이 깔려서 영화를 보는 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아마도 청각장애인을 위한 것이었을 텐데 덕분에 영어가 주언어가 아닌 나도 영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한 사람을 위한 배려는 이렇게 또 다른 이를 돕는다. 


영화를 보며 자유롭게 환호하고 박수치는 분위기도 좋았다. 원래 영화를 볼 때는 조용히 집중하는 편이라 좋아하는 팝콘도 잘 안 먹는데 멋진 장면, 웃긴 대사에서 함께 탄성을 내지르고 손뼉 치며 웃는 게 거슬리지 않았다. 오케스트라 공연이라는 특성이 더해진 덕분이겠지. 예술이 일어나는 장소와 방식, 장르와 매개가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새로운 매력이었다. 블랙팬서 역을 맡은 채드윅 보스만이 등장했을 때는 자연스레 환호하게 되었는데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던지라 객석에서 커다란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모두가 그를, 블랙팬서를 사랑하고 애도하고 있었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순간 뭉클해졌다. 


<블랙팬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모든 부족이 모인 가운데 블랙팬서 자리를 놓고 싸우는 폭포씬인데 싸우는 장면보다는 그때 등장하는 부족들의 비주얼과 배경 음악이 좋아서였다. 특히나 북소리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서 좋았는데 그걸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다니. ‘말하는 북’이라고도 불린다는 타마를 연주하는 Massamba Tiop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었다. 집중해서 작게, 열정적으로 크게, 일어서서, 왔다 갔다 하며, 등을 구부리고 앉아서. 북과 한 몸이 되어 움직이고 정말 말하듯이 세심하게 소리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영화만큼이나 흥미롭고 아름다웠다. 



어느 새 블랙팬서는 사촌 킬몽거와의 싸움에서 승리해 왕위를 물려받고 와칸다 왕국의 비브라늄을 세계의 약자들을 위해 나누겠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그는 사랑과 관용을 말했다. 서로 도우며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이날 하루 내가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을 관통하여 정리해주고 있었다. 블랙팬서가 나의 하루를 함께하기라도 한 것처럼. 다름을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는 것, 더 많은 다름을 끌어안음으로써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 그리하여 함께 행복해지는 것. 어쩌다 보니 일정이 그리 된 것이었는데 이걸 기억해, 라고 귓가에 대고 속삭여주는 것 같은. 가끔 세상이, 삶이 다정한 마법을 부려주는 날들이 있다. 그날이 내게 그런 날이었다.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도 오케스트라와 Massamba Diop의 연주는 계속되었고 영화와 연주가 모두 끝났을 때 사람들은 기립하여 환호했다. 공연을 종종 보고 거의 좋아하며 보지만 모든 공연에 기립하게 되지는 않는다. 이때는 일어서지 말라고 해도 일어서고 싶었다. 기꺼이 일어서서 박수 치고 환호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예술의 힘. 아름다운 예술은 사람을 움직이고 나도 감히 그런 예술을 꿈꾼다. 


공연자들이 모두 물러나고도 몽글몽글 따뜻한 기운이 공연장 안을 가득 채웠다. 모두가 즐거운 얼굴로 서로 양보하며 천천히 걸어 나왔고 누군가 나와 솔뫼를 위해 문을 잡아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자 그가 웃었다. 사람들은 공연을 보러 왔을 때처럼 한 방향으로 무리지어 나오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하나둘 흩어졌다. 나는 이들이 따뜻한 무언가를 품은 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제각각일 그 무언가의 빛깔과 모양이 궁금했다. 내 안에 심겨진 것의 빛깔과 모양도. 그것들이 어느 때 어떤 형태로 피어날지도. 알 수 없는 무언가들을 상상하고 기대하며 점점 더 고요해지는 밤거리를 자박자박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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