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는 아니지만, 아이와의 조금 긴 여행
우와.
문턱을 넘어 들어서자마자 저절로 소리가 나왔다.
사진에서 본 그 모습 대로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주 외진 어느 마을에, 조용하게 만든 비밀의 공간 같다고 할까.
이런 외진 곳에서 대체 무슨 배짱으로 장사를 하는 걸까, 싶었다.
(나중에 엠은 이곳이 카모메 식당 같다고 했다. 물론 식사도 훌륭했다.)
숙소는 붉은색 벽돌로 만들었고, 그 위에 초가집처럼 나무로 지붕을 만들었다.
나짱 전통 가옥을 흉내 낸 건지도 모르겠다.
그 주변을 상당히 공들여 가꾼 정원이 채워주고 있다.
스프링클러 여러 대가 잔디에 물을 주고 있었다.
오른편을 보니 부처님을 모시는 작은 사당도 보였다.
이곳이 서양인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제대로 오리엔트 하다.
내 눈에도 신비로워 보이는데, 그들에겐 오죽할까.
베트남 전통 치파오를 입은 매니저가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코알라처럼 귀엽게 생긴 젊은 여자였는데,
더듬더듬 영어를 하는 모습이 호감을 갖게 했다.
우리가 질문을 하면 깜짝 놀라면서도, 열심히 설명을 한다.
하하. 이곳과 딱 어울리는 매니저다.
저 매니저는 이 마을 출신일까.
이곳에서 자라서 매니저까지 맡게 된 걸까.
그럼 제법 성공한 편인지도 모르겠다.
매니저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가 묵을 방으로 향했다.
또다시, 우와.
붉은색 돌담을 넘어서니 수영장이 있었고, 그 안에 우리가 묵을 방이 있었다.
수영장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방 앞에 있는 관계로, 다른 방에서 묵는 사람들이 놀러 오긴 어려울 것 같았다.
우리가 도착하니 한국인으로 보이는 가족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매니저에게 설명을 들으며 방으로 들어섰다.
토토로 하우스 같다.
방을 보고 든 생각이다.
천장은 높은데, 흙과 나무로 마감을 했다.
전통 가옥 같은 느낌이다.
화장실도 소박하다.
최소한의 꾸밈만 넣었다.
그 모습이 더 고풍스러워 보였다.
커피와 차는 항상 텀블러에 채워 넣는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 스탭들은 우렁각시 같다.
우리가 방을 비우면 몰래 들어와서 커피를 채워주고, 과일을 놓고 간다.
청소도 중간중간 계속해준다.
살면서 이 정도로 극진한 대접을 받은 게 언제였는지...
점심을 주문했던 터라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 방이 입구에 위치한 터라, 방에서 나와서 가운데 길을 쭉 걸어가야 했다.
별은 대만족이라는 분위기.
요정들이 사는 비밀스러운 집에 들어선 기분인가 보다.
다른 집들은 길에서 바로 보였다.
우리가 묵은 방이 유독 프라이빗한 위치였다.
바닷가로 가는 길에 커다란 사원이 하나 있고,
그 옆에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야외 식당이었다.
다시 한번 와우.
식당 맞은편엔 천장이 높다란 한 카페가 있었다.
당연히 커피 같은 건 방에서 가져다가 마시면 되는 구조다.
카페 구석에 책이 놓여 있어서 둘러보니 한글책도 보였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책 두 권.
다행히 둘 다 내가 읽어보지 않은 책이다.
반가웠다. 4일 동안 읽어봐야지.
셰프는 베트남 아주머니.
우리에게 환하게 인사를 해주더니 웰컴 드링크로 레몬 에이드를 줬다.
이게 또 그렇게 맛있다.
시원하게 꿀꺽꿀꺽.
음료를 마시다 보니 음식이 하나씩 나왔다.
이곳 식당은 1인당 12달러를 내면 베트남 가정식을 차려주는 구조다.
주변에 다른 식당이 없다 보니 거의 3끼를 여기서 해결하게 된다.
그래서 좀 걱정도 됐다.
그런데... 또다시 우와. (표현력이 이 정도 수준이라 죄송 ㅠ)
우선 샐러드를 먹었는데 아주 신선한 맛.
밥과 함께 나온 국도 맛있다.
그리고 메인 요리로 보이는 생선 구이.
이게 또 상당히 맛있었다.
그동안 음식을 가리던 별도 맛있다며 냠냠.
엠도 마음에 드는 눈치다.
음식이 맛있구나, 다행이다.
은근히 걱정했는데.
밥을 먹다 보니 옆에 커다란 개가 느릿느릿 오더니 들어 눕는다.
별이 깜짝 놀라며 나한테 도망을 쳤다.
개는 우리를 한번 슬쩍 쳐다보더니 다시 엎드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개는 무려 15살이나 된 늙은 개였다.
그래서인지 걷는 게 느렸다.
그리고 계속해서 몸을 긁었다.
처음엔 개를 무서워하던 별도 나중엔 개 주변을 얼쩡거렸다.
나중에 썸 데이즈 사진을 보면서 개의 모습을 보고 살짝 눈물이 핑 돌았다.
늙은 개, 다음에 오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배부르게 밥을 먹고 바닷가로 나가봤다.
썸 데이즈는 바닷가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식당을 넘어가면 오션뷰 방 2개가 더 있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서 문을 나서면...
바다다.
바닷가에는 러시아 관광객들이 제법 보였다.
선베드에도 아무렇게나 누워서 잠을 자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썸 데이즈 바로 옆에, 파라다이스라는 커다란 리조트도 있었다.
그곳에 묵는 손님들도 많아 보였다.
쭉 둘러봐도 동양인은 우리 가족밖에 없는 것 같았다.
나짱은 원래 러시안들의 휴양지라고 들었다.
나짱도 처음엔 이런 모습이었을까.
바로 앞에 파도가 쳐서 그곳까지 걸어갔다.
이곳도 파도가 꽤 세다.
파도를 맞는 재미가 있다.
비치엔 게들도 많았다.
별은 게를 보고 나한테 도망 왔다.
나에게 안겨서 한참 쳐다보더니 재미있는지 게가 걷는 걸 따라 했다.
바로 옆 파라다이스 비치엔 개들도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누군가 지나가면 컹컹 짖으면서 따라갔다.
그리고 다시 선베드 옆에 무심하게 눕는다.
선베드에 있는 사람들과 서로 무관심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
방으로 돌아와서 수영장에서 놀기로 했다.
난 기분이 좋아서 맥주와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감자튀김은 5달러.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곳 주방에선 9개의 방에 묵는 손님들을 위해
하루 3끼를 준비하는데 모든 정성을 쏟고 있었다.
나처럼 중간에 스낵을 주문하면 쉬는 시간을 뺏기는 모양이었다.
아이고, 죄송해라.
결국 감자튀김 주문은 첫날이 마지막이었다.
맥주를 마시며 감자튀김을 먹었다.
엠과 별은 수영복을 입고 수영을 했다.
정말 평화롭다.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옆에 대나무로 만든 돗자리가 있어서 잔디밭에 깔고 누웠다.
파란 하늘이 보였다.
저렇게 높은 하늘,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던가.
갑자기 음악이 듣고 싶었다.
멜론을 켜니 다행히 플레이가 된다.
토토로를 선곡했다.
토토로, 토토로~
오래전 애니메이션에 쓰였던 그 음악,
지금 분위기와 딱 어울렸다.
책을 가지러 방으로 들어갔다.
방을 둘러봤다.
천장은 높다.
그 사이를 나무로 덧대고 흙으로 채웠다.
아마 이곳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게 아닐까.
화장실도 소박하다.
등불은 작은 것 하나.
너무 밝은 것도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다.
그런데 천장에 무언가가 스르륵 지나갔다.
하얀 저것은 뭘까.
더 자세히 쳐다봤다.
흰색 도마뱀이었다.
녀석은 나방을 향해 재빨리 돌진해서 혀를 날름 거렸다.
맙소사, 이거 진짜 토토로 하우스잖아.
도마뱀을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잡아달라고 하면 잡을 수 있을까.
도마뱀이랑 같이 자도 괜찮을까.
하긴 태국 호텔 같은데선 도마뱀이 잘도 돌아다니는데...
여기라고 안 될 거 있나.
일단 나만의 비밀로 하기로 했다.
괜히 엠과 별을 불안하게 만들 것 같았으니.
(나중에 보니 도마뱀은 치르르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결국 별에게 우리 방에서 도마뱀과 함께 잔다고 얘기를 해줬다.
겨울왕국에 빠져있는 별은, 오히려 겨울왕국에 나오는 샐러멘도와 함께 잔다며 신기해했다.)
리의별을 펴 들고 남은 부분을 읽었다.
이 소설의 끝부분은 쓸쓸하다.
결국 사람은 고독할 수밖에 없는 걸까.
좀 더 밝은 책을 읽고 싶어서 장강명의 에세이를 펼쳤다.
3박 5일 동안 보라카이로 신혼여행을 떠난 작가의 이야기.
사실 이번 나짱 여행을 마치고 내 나름대로의 여행 에세이로 정리할 계획이다.
딱 이 정도의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문체는 오쿠다 히데오의 그것처럼 가볍게.
그렇게 있다 보니 해가 지기 시작했다.
방으로 들어와 티비를 켰다.
별을 위해 디즈니 채널을 찾았지만 안 보였다.
바로 뒤 편에 있는 사무실을 찾았다.
코알라를 닮은 매니저가 깜짝 놀라며 나왔다.
디즈니 채널을 찾고 싶다고 하니 방으로 와서 찾아줬다.
깜언.
별은 바로 디즈니에 빠져들었다.
금방 밖이 어두워졌다.
이곳에서 별다르게 할 일도 없어서 바로 식사를 하러 갔다.
이날 저녁은 식사와 함께 와인도 주문했다.
이날 식사를 하는 인원수에 맞춰서 식기가 세팅돼 있었다.
우리가 1등.
이미 해가 져서 식당에만 불이 밝혀 있었다.
식탁 밑에는 모기향이 피어 있었다.
멀리 쏴아쏴아 파도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바닷가라는 실감을 나게 했다.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잠시 후 다른 손님들이 나왔다.
늙은 노부부가 나와 우리에게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 또 다른 노부부.
둘이 조용하게 여행을 온 걸까.
보기 좋다.
나와 엠도 나중에 저렇게 되고 싶다.
그리고 가족 손님들도 나왔다.
아이들도 있었다.
별이보다 조금 어린 여자아이와 막 걸음마를 뗀 듯한 남자아이.
손님들은 우리를 제외하고 모두 서양인이었다.
그렇게 서로 떨어져서 조용히 저녁을 먹었다.
이날 저녁도 최고.
나오는 모든 음식이 맛있다.
와인은 메뉴판을 보고 대충 화이트 와인을 골랐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와인.
근사한 분위기였다.
우리, 더 잘 지내보자.
엠에게 말하니 풋, 소리를 내면서 웃는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를 둘러보다 우리 방 쪽으로 왔다.
수영장 앞에 있는 선베드에 누웠다.
하늘에 별이 반짝반짝 빛났다.
폰을 열고 토토로 주제가를 틀었다.
토토로, 토토로~
하지만 별이 바로 겨울왕국을 듣고 싶다고 했다.
이 분위기엔 토토로가 낫지 않니? 하고 말해봐야 소용이 없다.
할 수 없이 바로 겨울왕국 2 OST.
인투더 언노운~
별은 바로 아렌델 왕국으로 갔는지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을 보내다 시간을 봐도 고작 저녁 8시.
이곳은 시간도 느리게 간다.
방으로 돌아와 티비를 보다 잠이 들었다.
하지만 이날도 난 새벽에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주변은 아주 고요했다.
좀 으스스한 기분도 들었다.
이곳은 더블베드 2개와, 그 사이에 싱글베드 1개가 있다.
침대 위엔 모기장이 있다.
난 끝 침대에 가서 책을 읽기 위해 스탠드를 켰다.
하지만 스탠드는 너무 어두웠다.
그러다 한 편에 놓인 랜턴을 발견했다.
켜보니 책 읽기 좋을 정도의 불빛.
그렇게 랜턴을 켜놓고 폰을 열고 글을 썼다.
그리고 바로 책을 읽었다.
아주 어둡고, 고요한, 그런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