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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그 가슴시리도록 아름다운

Ⅲ. 여름. 그녀의 편지

by 이서

그녀와 헤어진 뒤에도 나는 여전히 수련회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었다.

바닷가의 파도, 밤하늘 가득한 별빛, 그녀의 웃음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흐르면서도, 마음은 그 여름날에 묶여 있었다.

며칠이 지나던 어느 날, 책상 위에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낯설지 않은 글씨, 또렷이 적힌 그녀의 이름.

나는 반가움과 설렘, 수많은 감정에 휩싸인 채 봉투를 조심스레 펼쳤다.


“안녕! 나야, 너의 마니또(=천사). 이제는 아닌가? 잘 지내고 있어?

이 편지를 읽는 네 모습은 어떨까 궁금해.

살짝 놀란 표정일까, 아니면 무심하게 읽어 내려갈까?

사실, 네가 이 편지를 볼 때쯤이면 누나는 여전히 너를 떠올리고 있을지도 몰라.

교회에서 너를 처음 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해.

모퉁이를 돌아 들어서는 낯선 얼굴이었는데도, 왠지 모르게 시선이 멈췄어.

조용하면서도 묘하게 신경 쓰이는 분위기였다고 할까.

친구가 널 소개해 줬을 때, 사실 조금 설레는 마음이었어.

그런데 나보다 한 살 어리다는 말에 괜히 마음이 복잡해졌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같은 또래일 거라 생각했던 기대와 달라서였을 거야.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어.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너에게 느낀 감정들이 훨씬 더 소중했으니까.

누나는 아직도 마지막 날 밤, 바닷가에 앉아있던 우리가 떠올라.

별이 쏟아지던 밤하늘과 고요한 바다, 끊임없이 밀려오던 파도.

네 옆에 그저 말없이 앉아있었을 뿐인데, 오랜만에 마음이 참 편안했어.

그때 나는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넌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네가 나를 보지 않았는데도, 누나는 네 표정을 다 기억해.

먼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던 모습.

모래에 작은 그림을 그리던 손끝.

미묘하게 흔들리던 숨소리까지.

그때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

너에 대해 더 알고 싶었는데, 시간이 너무 짧았는지 아니면 내가 너무 망설였는지 모르겠어.

이 편지를 쓰면서도 마치 네가 내 앞에 있는 것 같아.

네가 이 글을 읽으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자꾸 상상하게 돼.

너도 가끔은 누나를 떠올릴까?

아니면 바쁜 일상 속에 수련회의 기억이 조금씩 흐릿해지고 있을까?

서울은 여전히 복잡하고 정신없지만, 며칠 동안 너와 함께했던 기억이 계속 맴돌아.

밤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며 조용히 옆에 앉아있던 그 순간이 누나에게는 참 특별했나 봐.

네가 나를 바라보던 순간을 떠올리면 괜히 설레고 웃음이 나.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이 편지가 네 마음을 살짝이라도 흔들었으면 좋겠다.

다음에 우리는 또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

잘 지내, 그리고 가끔은 나를 기억해 줘.


- 너를 기억하는 내가.”


편지를 다 읽고 나서, 나는 한동안 종이를 내려놓지 못했다.

글씨 사이사이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고, 문장 끝마다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그녀가 그리움에 사무친 채로 이 편지를 썼다는 걸, 나는 너무도 잘 알 수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 였으니까.

나는 눈을 감았다. 그녀의 웃음소리와 그날 밤 바닷가의 바람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그 화려했던 여름날이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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