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지개 Apr 15. 2016

받는 마음, 주는 마음

그대는 감사하고 있나요?

얼마 전 우연히 고민 글에서 자신이 주기만 해서 상처만 남는 것 같다고 하는 글을 보았다

그리고 그 밑에 적힌 수많은 댓글 중 눈에 들어온 말 "헌신이든 사랑이든 주면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한테 줘야 되는 거예요. 자책하지 마세요 단지 그 사람이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일 뿐이에요"

이 글을 보고선 상자 속에 담겨있던 내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경주에 여행을 갔던 지난겨울 같은 방에 묵었던 혼자 여행 온 여자 셋, 한 명은 게스트하우스 파티에서 치맥을 하며 몇 마디 얘기를 나눴던 터라 첫인상부터 왠지 '이 여자 나랑 안 맞는 거 같아'란 생각을 했던 여자이고, 또 한 명은 이틀째 파티에 참석하지 않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고 있다던 여자였다.

블로그 등에서 봤던 글과는 다르게 파티는 매우 재미가 없었고 '아 나도 아까 그 여자처럼 그냥 방안에나 있었으면 이런 어색함도 느끼지 않고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어서 이 자리가 파하기만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는 끝이 났고 나는 맥주두캔의 알딸딸함을 안고 나와 맞지 않을 것 같은 그 여자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 앉아있던 미스터리함을 풍기던 그 여자는 어색한 인사를 보내왔고, 몇 번의 대화를 통해 여자는 서울에 사는 여자였으며 나보다 3살 많은 언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얘기를 하다 보니 그 언니와 나는 묘하게 통하는 구석이 많았다. 물론, 나와 맞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던 그 여자도 정말로 나와 맞지 않았다.

아무튼 그 언니와 나는 금사빠라는 우리의 성향을 가지고 열렬한 대화를 했다. 마침 그때 언니는 짝사랑 중이었고 나는 그 안타까운 얘기를 들으며 내가 과거에 겪었던 짝사랑을 생각하며 슬퍼했다. 그 언니는 나와는 다르게 용감한 여자였다. 나의 짝사랑은 고백 한 번 해보지 못한 그저 그런 짝사랑으로 끝나버렸지만, 그 언니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여자였다. 그리고 상대의 행복을 빌어주며 마음을 접은, 그런 강단 있는 여자였다. 그래서 그 언니가 더욱더 빛나 보였고 닮고 싶다고 생각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언니와 나는 번호를 교환한 뒤 몇 번의 카톡과 한 번의 만남을 더 가졌다. 그때 카페에서 언니는 언니가 짝사랑하던 그 남자로부터 날아온 메시지를 나에게 보여줬다. 그 안에는 정말 예의 바르고 또 예의 바른 사람의 대화가 녹아있었다. 그 대화들을 보며 이런 사람이면 사랑할 수밖에 없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의 마음을 그는 매우 감사하게 받아들였으며, 그리고 매우 예의 바른 태도로 거절을 했다. 그래서 언니도 매우 이쁜 마음으로 그 거절을 받아들였다. 그는 이미 여자 친구가 있었기에 언니의 고백은 아마 '나랑 사귀자'라는 류의 고백은 아니었으니 거절이라는 말이 옳지 않을 수 있으나, 뭐 아무튼 그랬다. 그래서 그때 난 사람의 주는 마음과 받는 마음이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평소와 같았으면 여자 친구 있는 남자에게 무슨 고백이야 라며 언니 같은 행동을 하는 여자를 맹렬히 비난해버렸을 텐데 말이다.

카페에서 나온 뒤 거리에서 언니에게 내가 선물을 건넸을 때, 언니가 너무 기뻐해 줘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언니가 "너무 고마워요, 너무 고마워서 눈물 날 거 같아"라고 했을 때, 솔직히 '이게 그 정도는 아닐 텐데'라고 당황했었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니 언니의 그런 반응이 너무 고맙고 나를 기쁘게 했었다. 나의 주는 마음은 선물이 너무 하찮게 느껴져 조금은 부끄러웠는데 말이다. 언니의 저 한마디가 선물을 빛나는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이 언니를 보며 이렇게 주는 마음이 이쁘고 받는 마음이 이쁜 사람의 주변에는 이쁜 일들밖에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든 것에 감사함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이쁜 사람이 되어보기로 했다. 문득 저 글귀를 보며 묘한 공감과 언니의 한마디, 그리고 정말로 울 것 같았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낡은가죽신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