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볼 때마다 눈물 흘리는 장면이 있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숀 맥과이어 교수(로빈 윌리암스)가 윌(맷 데이먼)에게 "It’s not your fault(네 잘못이 아니야)..."라 힘주어 말하는 장면이다. 몇 번을 보아 다 아는 내용일뿐더러 이제 그 장면이 나올 때구나 예측까지 하면서도 어김없이 또 눈물이 흐르고 만다. 윌의 아픔에 공감하고, 윌을 향한 숀 교수의 마음에 감동받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내 안의 무언가가 건드려졌기 때문이다. 죄책감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어떤 감정이...
숀 교수가 윌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며 한두 번 정도만 말했다면 관객으로서 내 사적인 감정까지 건드려지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숀 교수는 "나도 알아요"라고 말은 하면서도 실은 아무것도 모르거나 안다고 착각하는 윌에게 "It's not your fault." 이 말을 연이어 정확히 열 번 한다. 열 번을 온 마음 다해 진심으로, 윌의 마음에 가 닿길 바라며... 그 마음이 화면을 넘어 나에게까지 와 닿은 것이다. 마치 숀 교수가 나에게 그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 것도 과장은 아니다.
윌은 몇 번의 입양과 파양, 양아버지로부터 받은 폭력과 학대로 인해 세상에 마음을 열지 못하는 인물이다. 윌은 자신의 불행을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겪은 것이라 생각한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지만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보다는 양을 치는 '목동'이 되겠다며 자신을 속인다. 누군가에게는 목동이 정말로 원하는 일일 수 있지만, 윌의 경우엔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욕망을 미리 거세한 선택일 뿐이다. 그런 윌에게 숀 교수는 네가 겪은 모든 불행은 네 잘못 때문이 아니라고 말해준 것이다. 부정하던 윌은 끝내 숀 교수를 부둥켜안고 참아왔던 눈물을 흘리고 만다.
윌만큼 힘든 가정사를 겪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자기만의 상처를 어깨에 짐처럼 얹고 살아간다. 제 때 어루만지지 못하면 안에서 곪아버린 상처가 마음을 철문처럼 걸어 잠그게 만들기도 한다. 지나온 시간 어디쯤에서 나도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채 살았던 적이 있었다. 세상 모든 이가 나의 적인 것만 같고, 바깥은 그야말로 전쟁터인 것만 같은 기분... 투명한 유리창 안쪽에서 차마 문을 열지 못한 채 유리 너머로 세상을 바라만 봤던 비겁했던 시간들... 그리고 그렇게 바라본 세상을 나는 다 안다고 착각했던 자만의 시간들... 이불 밖이 아니라 자궁 밖이 무서워 다시 엄마의 자궁으로 들어가고만 싶었던 나약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을 지날 때 나는 세상을 탓했지만, 실은 나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조병화 시인의 시구처럼 "결국, 나의 천적은 나였던 거다". 그때 누군가 내게 말했었다. 우울이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우리는 자신이 부족하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이것이 모든 인생 문제의 근원이다.
- <치유>, 루이스 L. 헤이, 나들목, p.51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내 안의 죄책감을 지우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나쁜(bad)' 나를 '좋은(good)' 나로 봐주는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힘을 낼 수 있다. '굿(good)' 윌 헌팅처럼 말이다. 다행히 나에게도 그렇게 말해주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 덕분에 나는 유리문 너머 바깥세상에서 살아도 괜찮다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는 없지만 '숀 맥과이어'로 분해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 로빈 윌리엄스 님께도 뒤늦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내 잘못이 아니면... 그럼 누구 잘못일까?
이렇게 반문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를 콕 집어 찾는 일도 그만두기로 했다.
나의 잘못도 아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혹은 나의 잘못이기도 하고, 누구의 잘못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저 함께 위로하며 응원하며 걸어가야겠다.
그것만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