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나를 만나는 한걸음, 나를 마중 나가다. 16
7,8년 전 삶의 변화를 갈구하던 나는 프랑스로 떠났다. 혼자서 떠나는 첫 배낭여행이었다. 한 달간 영국과 프랑스를 여행하기로 결정했지만 사실 목적은 플럼 빌리지(Plum Village)에 있었다. 프랑스 보르도 근교에 위치한 ‘플럼 빌리지’는 베트남 출신의 영적 스승이자 평화운동가인 틱낫한(Thich Nhat Hanh) 스님이 만든 명상공동체다. 불교공부를 하고 명상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에 이끌렸다. 어려운 불교 교리들을 쉬운 언어로 이야기하는 틱낫한 스님의 책들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던 시간들이 나를 저 멀리 플럼 빌리지까지 이끈 것이다.
한 달의 여행 가운데 2주를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화두로 남아있는 문장이 있다.
플럼 빌리지에서는 수행 중인 스님들과 다양한 나라에서 온 방문객들이 함께 머문다. 점심 식사 후 각자에게 주어진 소임(저녁을 준비한다거나 낙엽을 쓰는 일 등)을 마치고 나면 스님과 방문객들이 함께 모여 하나의 주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주어진다. 그날의 주제가 바로 쓰레기를 어떻게 꽃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영어가 짧은 나는 아쉽게도 사람들의 대화를 절반 이상 알아듣지 못한 채 혼자만의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바로 전 나의 소임은 바퀴 하나 달린 손수레에 낙엽을 담아 밭으로 쓰일 땅에 붓는 일이었다. 아마도 부엽토를 만드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주로 낙엽 쓰는 일을 맡았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부엽토 만드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부엽토 만드는 일에 비하면 그전까지 했던 빗자루로 쓱쓱 낙엽을 쓰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특히나 바퀴 하나 달린 손수레를 밀며 진흙길을 지나가는 것이 너무 고되었다. 힘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수레가 옆으로 기울어져 애써 담은 낙엽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 맘 같지 않게 바퀴는 자꾸만 옆으로 굴러갔다. 평생을 도시에서만 살았던 내겐 낯설고 힘든 경험이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명상하러 왔지 노동하러 온 게 아니라고... 그러면서 한편으로 애써 불만을 꾹꾹 눌러 내렸다. 그래,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밥을 먹지 말라고 백장선사가 말씀하셨지...
쓰레기를 꽃으로 만드는 법에 대해 생각하려는데 방금 전까지 고되게 했던 노동이 떠올랐다. 쓰레기가 된 낙엽이 흙에서 일정 기간 미생물과 함께 분해 발효되면 수분과 영양분을 가진 질 좋은 부엽토로 재탄생될 것이다. 그리고 그 부엽토에 뿌리를 내린 씨앗은 수분과 영양분을 빨아들여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힘들다고 불평만 했었는데, 방금 전까지 내가 했던 노동은 쓰레기인 낙엽을 꽃으로 피워내는 첫 단계 과정이었다.
불평했던 내 마음을 '쓰레기'라고 한다면 그 마음도 '꽃'으로 피워낼 수 있을까?
어리석었던 나의 실수들을 '쓰레기'라고 한다면 그것 또한 '꽃'으로 피워낼 수 있을까?
키워드는 '발효'에 있는 게 아닐까. '부패' 말고 '발효'.
발효와 부패는 비슷한 과정에 의해 진행되지만, 우리의 생활에 유용한 물질이 만들어지면 '발효'라 하고 악취가 나거나 유해한 물질이 만들어지면 '부패'라 한다고 한다.
낙엽을 부엽토로 만드는 과정은 부패가 아닌 발효의 과정이다.
부정적인 내 마음과 어리석었던 행동들이 결국 '유용한 것'으로 거듭날 수 있다면 그건 악취 나는 부패가 아니라 발효의 과정을 거친 덕분일 것이다.
내게 일어난 일의 부정적인 면에서 나온 좋은 것이,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자아가 되도록 돕는다.
- <모든 일에는 일어나는 이유가 있다>, 미라 커센바움, 바다출판사, p. 35
<모든 일에는 일어나는 이유가 있다>의 저자이자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딸로 태어나 불운한 어린 시절을 겪었던 미라 커센바움은 말한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다면,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뭔가를 배운다면 곧바로 새로운 나로 진화할 수 있다. 내 안에서 작은 의미의 진화를 겪은 것이다."
삶에 있어 '발효'란 내가 겪은 부정적 감정과 경험들 안에서 뭔가 배울 것을 찾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부정적인 것 안에 그대로 머물면 부패해 악취가 나겠지만, 부정적인 것을 하나의 '배움'으로 승화시킬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 배움을 통해 '의미'라는 꽃을 피워낼 수 있다.
'내게 일어난 부정적인 면에서 나온 좋은 것...'
이 말을 계속 되뇌어 본다.
왠지 이 문장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꽃이 될 작은 씨앗 하나가 마음에서 자라고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