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의 외출이었다. 대학 동기인 은지, 서희와 함께 서울국제도서전을 다녀왔다.
서희는 출발 하루 전부터 준비물은 다 챙겼냐 물었다. “준비물이 있어?” 되물었더니 전시홀 안이 복잡하고 걸어 다니느라 힘들 수 있어 텀블러와 편한 복장이 필수이고, 당연히 많이 소비할 테니 큰 가방도 준비해야 한다 그랬다. 은지는 일주일 전부터 각 부스의 굿즈들을 DM으로 보내왔다. 군침이 싹 돈다는 메시지와 함께. 철저한 준비성과 숨기지 않은 기대감에 비죽 웃음이 나왔다.
텍스트 힙 붐이 불긴 불었는지 전시홀은 인파로 들끓었다. 어느 부스든 귀여운 굿즈가 한 개라도 있으면 인산인해였다. 명색이 도서전인데 방문객들은 전부 도서보다는 굿즈를 갖기 위해(그리고 자랑하기 위해) 도서전에 온 것이 명백해 보였다. 우리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서너 시간 동안 도서전을 후다닥 둘러보고 나올 때, 우리 손에 들린 것들은 키링, 티셔츠, 짐색 같은 도서 외 굿즈가 전부였다.
우리는 전시홀을 나오자마자 눈에 보이는 카페 아무 곳에나 들어가 재빠르게 음료를 주문하고 부은 다리를 주물렀다. 사람 많은 곳을 하도 오랜만에 오다 보니 넋이 나간 채로 의자에 눕다시피 기대 함께 찍은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었는데,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은지는 “얘 왜 죽은 사람 그리워하는 표정으로 우리 사진 보고 있냐?” 그랬다. 낄낄거리며 서로의 근황을 늘어놓았다. 우리가 늘어놓는 근황에 서로의 일과 직업과 미래 같은 건 없었다. 관계와 회복, 그리고 추억이 전부였다. 나는 그게 좋았다.
매장 마감 시간이 다 되도록 우리는 마치 편의점 야외 테이블 의자(일명 ‘드르륵 칵’ 의자)에 앉은 것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역에 다다라서야 은지가 그랬다. 내일 출근하러 여기 또 와야 되는 거 실화냐? 나는 물었다. 근데 너네는 강남 좋아해? 친구들은 1초 만에 대답했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동네가 강남인데 무슨 소리야.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런데도 제일 싫어하는 동네에 하루의 반 이상을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거 좀 말도 안 되지 않아? 내 물음에 은지는 “싫지만 이 사회가 여기서밖에 돈을 안 주겠다는데 어떡하냐”는 식으로 대답했다.
역시 일 이야기가 나오니 기분이 처지는 것 같아 얼른 “공차에서 버블티 말고 아이스크림도 판다더라”는 말로 선회했다. 개맛있겠다 개맛있겠다 노래를 부르며 우리는 베짱이들처럼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