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24일차

by 채윤희

작업 표시줄에 탭을 잔뜩 열어 두고 이 탭, 저 탭을 와리가리 오가며 무엇 하나에 십 분 이상 시간을 쏟지 못했다. 오늘은 무언가 하나에 집중할 수 없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좀 쓰다가도 금세 유튜브로 돌아와 자극적인 제목만 골라 봤다. 전남친에게 환승 바람 다 당한 썰, 빡치는 시댁 선물 대결 썰, 틴더로 외국인 변태 만났는데 나도 만만치 않았던 썰.... 지금 이 시기에는 유튜브 달란트를 받은 자들이 너무도 많구나, 잠시간 키웠던 5만 유튜버의 꿈을 고이 접어 두고 GPT로 다시 개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 역시 10분을 못 갔다. 이북에 읽고 싶던 책들을 구매해 넣어 놓기 시작했다. 공부를 끝내고 침대에 퍼져서 책을 읽을 심산이었다. 그런데 나는 갑자기 냉장고를 열었고 달걀을 꺼냈고 식빵도 꺼내서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 버렸다. 맛이 없었다. 꾸역꾸역 욱여넣곤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또 반복. 전남친 원나잇 촉으로 잡은 썰, 21살에 첫 임신 들킨 썰, 워홀 가서 진상 손님이랑 맞짱 뜬 썰.......


사실 이렇게 얼레벌레 도파민에 절여진 채 지나가는 날들을 세어 보면 1년에 특정 비중을 차지할 만큼 이는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상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공개적으로 일기를 쓰다 보면, 이런 날들이 꼭 죄지은 날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이것은 일종의 고해성사이다. 신부님 앞에서 고해성사를 드리고 나면 수치심과 해방감이 동시에 오지 않는가. 지금 내 기분이 그렇다.


나는 내 하루가 왜 이렇게 지나갔는지 알고 있다. 뚜렷한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시험을 앞둔 학생이었다면, 유튜브만 보다 하루가 다 갔더라도 내 신분을 떠올리며 늦게라도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취준생이었다면 취업 준비를 조금이라도 하고 빨리 잠에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어느 것도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취업 준비생이 되기까지의 마음을 준비하는 '취준생준비생' 정도의 신분이라서, 그 어떤 고삐도 없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취준생준비생에게 이 정도의 하루면 나름의 양심의 가책도 느꼈고, 방향성도 잡아가고 있는 중이지 않는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듯하다.


여기까지 쓰고 글을 마무리하려는 순간, 초등학교 시절, '수업 시간에 떠든 것도 하나의 추억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는 문장으로 반성문을 마무리했다가 선생님께 흠씬 두들겨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실화다). 내일은 오늘처럼 보내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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