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30일차

by 채윤희

마지막 일기.


내 안의 적당한 타협안을 찾기 위해 분투한 6주가 지났다. 하루하루 지나 보낼 때에는 퇴사한 지 한참 된 것 같아서 그렇게 마음이 바빴는데, 막상 6주라 쓰고 나니 한없이 짧은 시간처럼 느껴진다. 나를 조금 더 풀어 두고 마음 편히 쉬었어도 좋았을 텐데, 싶으면서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불안함이 기껍기도 하다. 이때가 아니었으면 언제 또 나의 불안을 매일같이 용기 있게 마주했으랴.


6주가 지난 시점의 나는, 취준생준비생에서 취준생이 되기로 했다. 어딜 가도 똑같이 괴로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회사원 신분으로 회귀하기 싫었지만, 회사원이 아닌 채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확신, 확신에 따른 체계적인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스스로 결론 내렸다. 나의 자율성이 배반되어 마음이 지옥 같았던 회사원 생활. 그 신분과 공간을 벗어나는 게 곧 지옥을 벗어나는 것이리라 생각했는데,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보장되지 않는 미래에 쪼들리며 불안에 벌벌 떠는 또 다른 지옥이었다. 어디든 지옥은 있을 수 있다는 걸 간과했다.


다행인 것은, 다시 구직을 하고 싶어진 이유가 단지 '어쩔 수 없이 돈은 벌어야 하고, 나는 이 일이 익숙하니까'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 새로운 마음이 돋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인터넷 서핑 중, 한참 전에 간단한 이력을 올려 두고 잊고 있었던 헤드헌팅 서비스로부터 커피챗 요청이 왔다. 커피챗을 요청한 회사는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이었는데, 홈페이지에 들어가 찬찬히 살펴보니 마음에 드는 부분이 꽤 많았다. 글로벌 서비스라는 것, 이제 막 커지고 있는 회사라는 것, 높은 리텐션과 깔끔한 UI/UX, 그동안 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산업군. 즐겁게 일하던 경험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내가 가장 즐겁게 일하던 순간은, 좋아하는 서비스를 몰입해서 만들고 그 서비스가 성장하는 경험을 하던 때였다. 회사의 이익만을 위하지 않고 고객 관점으로 의사결정하며, 그 결정이 큰 임팩트를 만들던 때. 이거 하면 성공할 것 같다는 확신으로 밤낮없이 옹기종기 모여 개발하던 때. 개인의 성장보다는 서비스의 성장이 나에게는 가장 큰 동기부여였고 나는 그 즐거움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커피챗이 곧바로 채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 회사의 제안 덕에 나는 내가 '원해서' 할 선택의 범주가 생겼다. 구직에 힘쓰고 움직여 보고 싶은 동력이 생겼다. 이전 회사를 선택할 때의 기준은 나의 '회복'에 있었고 그에 따라 조금은 쳇바퀴처럼 굴러갈 수 있는 회사를 찾았었다. 그 회사를 퇴사한 뒤 한 달 동안은 회사를 선택하고 싶은 어떠한 기준이 서질 않아서 계속 방황했다. 자신이 없는 건지, 채용 공고가 올라와 있는 회사들이 마음에 차지 않는 건지, 어느 곳이 됐든 회사원으로 일하는 내가 싫은 건지 아무것도 모르겠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나는 내가 조금 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퇴사 일기를 쓰기 시작할 때의 다짐이 있었다. 어떤 마음이 들든, 어떤 선택을 하든 '그럴 수 있는 일'이라 다독이겠다고. 한 달 동안 나는 내 마음을 얼마나 다독였을지 잘 모르겠다. 질타한 날도 많았고, 자기 합리화로 점철된 날들도 많았다. 그래도 마지막 일기만큼은 나의 선택을 확실히 지지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해졌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동안의 불안과 방황이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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