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참는 것에 완전히 질려 버렸다. 난생처음 사직서라는 걸 쓰고 나왔다.
내 마음에 꼭 맞는 회사 같은 건 없는 거라고, 다들 생계를 위해 돈 벌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버티는 거라고,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 버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일할 수 있는 회사가 있다면 그 자체로 감사한 것이라 그런다. 대다수가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는 그게 최선의 답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번 계기를 통해 정확히 알았다. 그 어떤 불편을 감수한다 하더라도, 개인의 자율성을 배반하는 집단에서만큼은 나는 버틸 수 없다.
회사는 갑작스레 전체 회의 날짜를 앞당기더니 성과 부진을 핑계로 세 가지 불이익을 일방적으로 통지했다. 첫째, 주 50시간의 근무를 시행한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위해 '권장'이란 말로 포장하며 하루에 10시간을 일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라 했다. 둘째, 연차를 소진한 뒤에도 내년의 연차를 10개까지 당겨 쓸 수 있던 마이너스 연차 제도를 폐지한다. 대다수의 구성원은 이 제도를 하나의 복지로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이를 믿고 휴가를 당겨 사용하던 구성원은 강제로 무급 휴가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셋째, 반반차와 분차 제도를 폐지한다. 대표는 점심시간 20분씩 더 쓰는 구성원들에게 칼 들고 쫓아가지 않지 않느냐 말하며, 이런 제도 폐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작년에도 이미 많은 일들이 있었다. 3개월 간 매 전체 회의 때마다 '이런 식으로 성과 안 나오면 희망 퇴직 할 수밖에 없습니다'로 엄포를 놓곤 구성원을 벌벌 떨게 만들더니 기어코 희망퇴직을 시행, PPT에 각 팀별 남겨야 하는 인원을 공표해 분위기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복지로 주어지던 점심 식대, 간식, 회식비, 유연 근무제 폐지는 예삿일도 아니었다. 한순간에 내가 사랑하던 동료들을 잃었다. 그럼에도 이 상황이 나를 퇴사하게 만들지는 않았었다.
이번은 달랐다. 성과 부진을 직원들의 근무 태만으로만 돌리는 듯한 경영진의 태도,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하지 않으면 성과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는 구시대적 마인드, 그것을 구성원 간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전달 방식, 주 타깃층의 니즈에 역행하는 로드맵을 해결 방안이라 굳게 믿는 답답함, 인력은 AI로 대체하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 그 사고방식을 직접적으로 전파해 버리는 가벼운 입, 무엇보다 이 비합리적인 구조를 묵묵히 감내하며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한 구성원의 기력 없음이 나를 이 집단으로부터 분리하고 싶게 만들었다. 같은 집단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듯했다. 나는 그러기 싫었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나에게만 집중했다. 영혼을 갉아먹히며 지옥에 살기 싫었다. 이미 조각날 대로 조각났다 생각했다. 매일매일 낭떠러지 앞에 있던 나를 비웃던 누군가가 손가락 한 개로 확 밀어 버리는 것 같았다. 전체 회의 다음날 아침에 퇴사 면담을 했다. 예상했던 대로 퇴사 처리는 쉬웠다.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이유를 들며 누구도 나를 붙잡을 수 없다 했다. 아끼던 동료들에게 편지를 쓰다 울었다. 이 사람들이랑만 일할 수 있다면 계속 함께하고 싶은데 그 집단에 소속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동료를 아끼는 마음을 이겼다는 게,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내 인생에서는 있을 수 없던 일이었어서, 복잡하고 헛헛한 마음에 눈물이 자꾸만 흘렀다.
어느 회사든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상황은 무한히 벌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내 안에서 가장 중요하다 여겼던 가치를 이길 만큼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도 계속 발견될 것이다. 따라서 당장의 마음으로는 그 어느 회사에도 소속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 상황과 마음은 끊임없이 변화하겠지. 그래서 오늘부터 내 마음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고자 퇴사 일기를 작성해 보려고 한다.
앞으로 나는 30일간 매일의 사소한 일상과 시시각각 바뀌는 내 마음에 대해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마음이 들든, 어떤 선택을 하든 '그럴 수 있는 일'이라 다독이려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나의 마음이다. 모두가 하는 선택으로 회귀할 수도 있고, 누구도 하지 않던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누군가 보기에 나라면 할 법한 선택을 할 수도 있고, 또 어느 누군가가 보기에는 나라면 하지 않을 법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오늘부터 나의 유일한 지지자로서, 나의 모든 경험을 그저 관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