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12일차

by 채윤희

요즘은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가끔은 약하고 대체로 단단한 내면의 소리를 내는 것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러던 중, 우연히 유튜브에서 그런 삶을 닮은 사람을 발견했다. 퇴사 후의 일상을 담담하게 기록하는 채널이었다. 그중 <목적지 안 정하고 여행 떠나기>라는 영상을 보게 됐다. 성향은 달랐지만, 죽이 잘 맞는 두 친구가 계획 없이 여행을 떠나는 내용이었다. 자신만의 곤조와 가치관이 느껴졌다. 아무 걱정 없이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영상 말미에 이런 문장이 나왔다.


많이 먹든 적게 먹든 살이 빠지고, 일을 하든 안 하든 돈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부자유일 뿐이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든지 그에 상관없이 동일한(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필연적으로 결정되기를 바라는 것이니까.

진정한 자유는 비결정성(우연성)을 늘려야만 얻을 수 있다. 우연성은 우리 안의 잠재성을 촉발할 것이다. 자유에 직면하고 우연성을 긍정해 보라.

― 『결정되지 않음으로 자유롭다』, 황진규


곱씹을수록 마음이 쿡쿡 찔렸다. 나는 자유를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정해진 결말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를 보장받고 싶어 했고, 불확실성을 피하고 싶어 했다.


뒤틀린 자유에 방황하다, 새로운 환경에 나를 내던져 보자는 결심을 할 때 즈음 이 문구를 보게 된 게 꼭 운명 같다. 이 문장은 어떤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 같았다. 우연성을 껴안는 용기. 그거 하나면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만큼은 그렇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 생각이 나를 조금 자유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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