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경이라는 들판에 나 피어났네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by 풀 그리고 숲

엄마는 장미처럼 생겼지만 들꽃 같은 여자였다. 어쩌면 이 세상이 엄마를 담아내기 너무 부족해서 드넓은 하늘의 부름을 따랐는지도. 엄마는 부드러움과 강함이 공존했다. 한 없이 여렸다가, 어느 날은 아빠보다 강인했다. 마음이 복잡하고 우울할 때면 엄마는 이불속으로 숨기는커녕 문 밖으로 돌진하는 사람이었다. 돌연 침대 위치를 바꾸는가 하면, 안방 벽을 가득 채울 만큼 커다란 옷장도 거뜬히 옮겼다. 화초를 정돈하고 온 집을 깨끗하게 살폈다.


배구장에 갔고, 검도장에 갔다. 배구공에 손목 안 쪽이 멍으로 가득한 날, 엄마는 홀가분해 보였다. 파래진 손목은 엄마 하루의 파편 같았다. 그것들이 짙어졌다가 옅어지는 동안 엄마는 멈춤 없이 검도복 자락을 매섭게 펄럭였다. 목검을 휘두르며 내질러진 엄마의 기합 소리에는 온갖 감정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것을 중학생이 되기도 전에 모두 느꼈다.


음악을 좋아하던 엄마는 어린 나에게 바이올린을 쥐어주었으며 늘 클래식 선율로 집안을 채웠다. 초대하지 않아도 한낮이면 언제든 깊숙이 찾아드는 햇살과 무언가로 분주한 엄마, 엄마 냄새, 클래식 음악 소리, 바람에 흩날리는 덩굴 식물. 전부 좋았다. 그 순간이 좋아서 나는 하굣길이 늘 설렜다.


엄마는 들꽃처럼 생명력이 강했고, 들꽃처럼 피어올랐다. 사람의 마음을 잘 어루만졌으며, 너른 들판처럼 사람들을 품에 안았다. 그녀의 진심은 여러 사람을 움직였다. 엄마는 사랑을 주는 법도, 받는 법도, 나누는 법도 알고 있는 멋진 여자였다. 그런 엄마는 내 자랑이었다. 길가에 강아지를 지나치지 못하는 것도, 세상에서 쥐를 가장 무서워하는 것도, 깜짝 놀라게 하면 가슴을 움켜잡으며 푹 주저앉는 것도, 쇼핑을 즐길 줄 아는 것도,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마시는 것도, 가끔 당황스러운 돌발 행동을 하는 것도, 취미가 많은 것도, 음악과 책을 좋아하고, 매일 저녁 식탁에 앉아 자신만을 위한 글을 쓰는 것도, 모두 좋았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응급실에 가던 때, 중환자실에 계시던 때, 우리를 떠나가던 때에 많은 사람들이 아파했다.


엄마는 사는 내내 외할머니를 그리워했다. 그 그리움은 가끔 화살이 되어 나에게 날아오기도 했다. 화살촉에 살짝 묻은 원망이라는 감정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아주 가끔 내 앞에서 울었다. 죽은 자를 그리워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말을 해 줘야 하지? 학교는 왜 이런 것들은 가르쳐 주지 않는 거야. 그리고 죽는다는 건 뭔데! 죽고 나면 눈앞이 캄캄해지나? 영화처럼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며 둥둥 떠다니게 되나? 아니면 전원을 끈 듯이 모든 게 끝나나? 그때의 나는 죽음이 뭔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엄마와의 이별은 더더욱 모를 일이었다.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슬퍼하는 엄마를 위로하는 법은 아무리 노력해도 일깨워지지 않았다.


엄마는 누군가와 통화를 할 때 항상 종이에 낙서를 했다. 글씨를 쓰고 지우거나 도형을 그려 색칠하고, 가끔은 통화 내용과 무관한 단어들을 끄적이기도 했다. 엄마의 낙서에는 '엄마'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바보 같은 나는 생각했다.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구나. 어른도 자기 엄마를 그리워하는구나.'


엄마는 자신의 엄마와 일찍 이별한 것에 그토록 슬퍼했으면서, 그보다 더 일찍 우리를 떠났다. 외할머니께 내가 태어나는 모습을 못 보여준 것을 아쉬워했으면서 내가 자라나는 모습도 성인이 되는 모습도 결혼하는 모습도 보지 않고 떠났다. 모순적인 사람. 그 모순 때문에 힘든 날도 많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그 모순마저 거스를 수 없는 그녀의 매력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keyword
이전 08화네가 태어난 지 27개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