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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는 아닙니다만,

2부 6장_그분이 나타났다!

by 책 읽는 엄마 화영

"안 봐도 그분 맞아요."라고 주무관님이 대답해 주셨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는 전설 아닌 전설이 있다.

주무관님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해달라는 요구를 거의 들어주시게 하는 분.

10년 동안 출근 도장 찍다 요즘 한동안 나타나지 않아 다행이다라고 얘기를 하게 하는 분.

다행히 내가 일한 뒤로는 안 나오셔서 그분을 얘기로만 들었다.


디지털 자료실은 기간제 근로자가 2명이 근무하는데

주말은 돌아가며 쉬게 된다.

어느 정도 업무도 익혀 주말근무도 혼자 잘 해내던 어느 날이었다.


디지털 자료실은 매번 오시는 분들이 가득하다.

와서 한참을 앉아 조용히 공부하다 가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중 처음 보는 얼굴이 있었다.


처음 본 그분은, 미간이 찌그러진 채로 이것저것 요구하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요구가 가득하길래

이 분은 뭘까라고 생각이 들며 싸하던 찰나

3층 담당 주무관님이 오셨다.

오늘 있던 일을 대강 전달드리며 그분인지 한번 봐달라고 얘기드렸다.

안 봐도 그분이 맞다며 그래도 한번 확인해 주신다고 하셨다.


그분은 멀티탭의 모양이 죄다 가로라며 이러면 잘 안 꽂아져서 못쓴다며 바꿔달라고.

쌀쌀한 날씨에 반팔 반바지 차림에도 불구하고 히터를 끄라고...

계속 화가 나있으셨다.

주무관님이 그런 모습을 보고 옆에 가셔서 한참을 얘기하셨더니

환하게 웃기 시작한다.

무슨 말씀을 나누신 걸까...

다행히 그 뒤로는 별일 없이 하루를 마감하였다.


다음 날, 짝꿍과 함께하는 평일 근무.

"선생님! 그분이 나타나셨어요!"

"주말에 왔다고?? 왔어요? 한동안 안 왔었는데."

그분이 나타남과 동시에 근무자들이 시끌벅적해진다.

다들 긴장하고 경계태세이다.


난 순진하게 생각했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착하고 순하다고.

착하고 순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도서관이라고.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리고 빌려주는 곳이 아니었다.

행정복지센터 마냥 서비스기관이었다.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달라 안내문이 있어도 대부분 진동 아니면 소리.

전화벨 소리야 듣고 찾아 안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지만

카톡음은 한번 울리고 끝이니 찾기도 힘들다.

전화 진동이 울려 조용히 일어나시더라도 전화를 받으며 나가시는 분들.

생각보다 도서관 에티켓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사람을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일이 사서라고 하더라.

난 책이 좋아서 도서관이 좋아서 이곳에 근무하고 싶었던 건데...

막상 겪어보니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책을 제공하기보다는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 업무가 가득한 이곳.


다른 도서관과 달리 열람실과 디지털 자료실이 분리되어 있는 이곳은,

우스갯소리로 우리들은 말한다.

디지털자료실 3층은 PC방 총무라고...


나는 오늘도 진동만 울려도 미어캣 마냥 고개를 쭉 내밀고 두리번거리기 바쁘다.

벨소리에는 벌떡 일어나 찾았다니 기기 바쁘다.

역시 일은 직접 해봐야 그 실상을 알 수 있다.


AFTER...

3층은 학습실도 함께 있는데 중고등학생 시험기간이 되자 독서실 총무의 업무가 부과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조용하던 그분은 나에게 아줌마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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