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내장탕이라고 하면 해장국집에서 자주 보는 소 내장탕을 떠올리리라 생각된다. 물론 나도 내장탕을 얘기할 때 소 내장탕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내가 처음 내장탕이라는 걸 접한 건 어머니가 끓여주신 닭 내장탕이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집에 닭장에서 키운 닭을 직접 잡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닭 내장에 익숙해져 있었다. 특히나 나는 닭 간과 닭똥집을 제일 좋아했다. 꼬들거리면서도 부드러웠던 닭 내장도 물론 좋아했다.
요즘은 백숙에서 닭 간과 닭똥집을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어렸을 적 먹었던 닭백숙에는 항상 들어있었다. 닭 간은 굉장히 귀엽고 조그마했는데, 씹히는 식감이 퍽퍽하지 않고 좋았다. 그래서 항상 닭 간은 내 차지였다. 키우던 오골계 장 닭에 쪼이기 전부터 익숙해져 있던 맛이라 육식을 멀리하기 시작한 후에도 닭 간과 닭똥집, 닭 내장은 희한하게 포기가 안 되었다.
대학 시절에는 친구들과 안주로 얼큰하고 걸쭉한 닭 내장탕도 많이 먹었다. 그럴 때 듣던 소리가 고기는 안 먹으면서 내장류는 어떻게 그렇게 잘 먹느냐는 것이었다. 이건 아직도 나에게도 미스터리다. 지금은 곱창구이를 밖에서 사 먹지만, 내가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곱창구이는 집에서 먹었다.
아버지는 단골 정육점에서 소 잡는 날에 소간, 내장 등을 몽땅 사 오셨다. 그러면 어머니는 큰 대야에 내장을 담아놓고 지방을 먼저 제거하면서 손질하셨다. 그 많은 내장이 사라지는 것은 우리 가족들에게는 순식간이었던 것 같다. 기억에 의하면 내장을 제거하고 나면 손실량도 꽤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 먹었던 곱창 맛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제아무리 맛있는 곱창전문점이라고 해도 직접 손질해서 바로 구워 먹는 맛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기름소금에 곱창을 찍어 입에 물면 쫄깃한 식감과 함께 터져 나오는 곱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는 지금이나 그때나 여전히 곱창을 잘 먹는다. 요즘은 고기 잡는 곳에서도 내장은 따로 판매하는 곳에서 대량으로 가져가서 일반인들은 사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아버지는 지금도 가끔 내장을 살 수 있는 곳을 찾으시는데 어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시며 절대 사 오지 말라고 하신다. 이제는 힘에 부쳐서 손질하기 힘들다면서 말이다. 나의 맛있는 추억 속에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이 있었음 새삼 느껴본다.
육식 파였던 우리 가족들은 고기 못지않게 내장류 요리들도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나는 다양한 내장과 내장 요리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특히나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에 어머니 소양으로 끓인 양곰탕을 자주 끓이셨다. 노인분들의 보양식에 양곰탕만 한 것이 없다 하시면서 말이다.
무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뜨거운 물에 튀겨 껍질을 벗긴 양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곰탕 고우듯이 오랜 시간 끓이면 정말 국물이 뽀얗게 나왔다. 가끔 소고기도 넣고 다른 소위도 함께 넣어서 끓이시기도 했다. 아버지는 하얀 양곰탕도 좋아하셨지만 요즘 해장국 스타일인 고춧가루 듬뿍 들어간 얼큰한 내장탕을 좋아하셨다.
꾸준히 먹어왔던 내장탕이었지만 다른 맛있는 먹거리들에 치여 한동안 외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안 먹다 보니 또 그다지 먹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맛있게 먹었던 기억도 희미해질 즈음 이렇게 해장국을 가지고 글을 쓰게 되면서 해장국 투어를 하러 다니다 보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다시 내장탕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내장탕 맛이어서인지 먹기 쉽지는 않았다. 그러다 한 입, 두 입 내장을 씹기 시작하면서 금세 어릴 적 먹었던 내장의 맛을 기억해 냈다. 그러고는 내장의 쫄깃한 매력을 예찬하면서 음미하기까지 했다.
문득 내가 처음 커피를 마시던 때가 떠올랐다. 커피가 열매인지, 콩인지, 볶는 건지조차도 모르던 시절 수능 준비를 한다는 핑계로 처음 커피를 마셔보았다. 나는 수능 1세대로 입시제도가 처음 바뀌었던 때라 스트레스가 어마무시했다. 그렇게 여러 핑계로 마셨던 커피는 지금은 생명수와도 같다. 결국 커피가 너무 좋아서 카페를 10년 넘도록 운영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커피를 좋아했어도 에스프레소는 난관이었다. 커피의 참맛을 느끼기에는 에스프레소가 제격이지만 흔히들 말하는 사약 같은 맛에 힘들어했었다. 그래서 처음 시작했던 커피류는 당연하게 생크림이나 우유가 들어가 있는 메뉴들이었다. 달콤 쌈싸름한 맛을 커피의 맛으로 알고 먹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나 모카마키아또에 생크림을 추가한 메뉴를 매일 한 잔씩 꼬박꼬박 먹었었다. 그러다 점점 카페라테로 그다음에는 아메리카노로, 또 다음에는 샷을 추가한 진한 아메리카노를 종국에는 에스프레소를 먹기 시작했다.
현재는 주로 투 샷 또는 쓰리 샷의 아메리카노나 드립커피를 먹지만 진한 에스프레소의 맛을 잊지 못해 종종 마시고는 한다. 결국 달달한 라테류에서 아메리카노로 다음에는 에스프레소, 또다시 라테류로 또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다가 다시 에스프레소를 찾게 된다. 악보에 표시된 도돌이표처럼 무한루프를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내장탕은 다시 찾게 되는 에스프레소와 같은 맛이다. 또 사랑받고 보호받던 어린 시절 추억의 맛을 찾게 되는 것이다. 돌고 돌아 찾게 되는 맛은 바로 엄마의 손맛이다.
이제는 차마 수고스럽게 곱창을 손질해 구워달라 닭 내장탕이나 소 내장탕을 끓여달라 할 수 없지만, 그때의 맛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 든든해지고 위로가 되어준다.
다시 돌고 돌아 사랑받았던 그 시절의 기억으로 다시 한번 힘내어 세상 속으로 걸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