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목욕] 메리 카사트
성장을 바라본다는 것
러시아인형을 본 적 있을 것이다. 한 겹의 인형을 벗기면 그 안에 작은 인형이, 그것을 벗기면 또 작은 인형이, 그렇게 반복적으로 인형이 나타나다가 마지막에 아주 작은 인형이 등장한다. 그것은 마치 본래의 인형이 지니고 있는 심장처럼 인형의 중심에 콕 박혀있다가 나타난 것만 같다.
“자, 그럼 너의 중심은 뭐지?”
가디언즈’라는 만화영화의 한 장면에는 산타가 주인공에게 이 인형을 보여주면서 질문을 던진다.
- 나의 중심은 호기심이야, 너의 중심은 뭐지?
나는 이 장면을 참 좋아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즐거움”이라는 자신의 중심을 찾게 되는 과정과 엔딩에 감탄했고 나 또한 이 영화를 본 이후 나의 중심이 되는 것,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일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곤 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목표와 성취가 나의 중심이었다. 목표가 생기면 나는 그대로 정면돌파했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다시 돌아보는 그 과정이 나의 중심이자 행복이었다.
최근 나의 목표는 4년 만에 다시 보게 된 공무원시험의 합격이었다. 현재 나의 공직자리인 국가직에서 지방직으로 빠르게 이직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4개월 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타인의 눈에는 육아와 공부를 병행한다는 것이 굉장한 노고로 비쳤을 것 같다. 하지만 난 이 시간이 꽤나 즐거웠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 그 자체도 즐거웠고 하루하루 이전처럼 스터디플랜을 세우고 해내며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그 느낌도 본래 내가 숨 쉬던 공기와 같았다. 그렇게 그 과정에서 고군분투하며 나는 내가 목표했던 딱 그만큼의 점수를 받았다. 등수라 하면 이전의 시험 때보다 뒤처진 등수라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목표한 점수를 그대로 이뤘다는 것은 신기하면서도 감사한 일이었다. 목표를 이루는 것은 나 자신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게 해주는 근사한 일이다. 커다란 기쁨과 뿌듯함,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성취를 난 참 좋아한다. 하지만 이번의 성취 후에 이상했던 건, 이전보다 나의 성취가 꽤나 무덤덤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깨달았던 계기는 시험 후 이튿날 갔던 짧은 여행에서 찾아왔다. 아이는 오랜만에 물놀이를 할 수 있다는 설렘에 처음으로 수영안경도 사고 집에서부터 써보면서 아주 들떠있었다. 하지만 막상 수영장에 들어서 수경을 써보자 아이는 겁이 났는지 쉽사리 잠수를 시도해보지 못했다. 첫날에는 조심스럽게 얼굴을 물속에 넣었다가 뺐다가 하며 “무서워”라고 말하면서도 재밌어했던 딸은 그다음 날엔 가르쳐준 대로 손으로 코를 막고 천천히 잠수를 하기 시작했다. 해냈다라는 마음일까, 수경 속에서 빛나는 눈망울과 들뜬 미소로 환하게 웃던 아이는 그날 이후 이젠 집에서도 가끔씩 수경을 쓰고 목욕을 하곤한다. 난 아이가 잠수도 하고 그럴듯하게 수영도 하는 모습을 보며 새삼스레 아이의 성장에 뿌듯함을 느꼈다. 이것은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경험이지만 한편으로는 부모로서 아이에게 느낄 수 있는 아주 고귀한 기쁨이기도 했다. 이 여행이전, 이 시험 이전에 내가 큰 성취감을 느꼈던 순간이 언제였던가?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어린이집 학예회에서 환하게 웃으며 춤을 추던 딸이 모습이 떠올랐다. 유치원에서 배웠다며 집에서도 몇 날며칠을 연습하고 선보인 그 무대에서 딸은 정말 신나 보였고 그 순간을 만끽하는 것 같았다. 딸은 학예회의 MVP로 꼽혔지만 그 타이틀보다도 아이가 온전히 그 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아이만큼이나 큰 성취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알았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행복을 주는 것은 아이의 성장이라는 것을. 내가 성취한 것이 아이가 성취한 것 이상으로 가치가 있는가, 아이가 수영하며 밀려오는 물결처럼 나에게 감싸온 감동은 그 가치를 비교할 정도도 아니었다. 이따금씩 딸을 바라볼 때면 맑은 수면 위를 바라보는 것과 같아 기분 좋게 찰랑이는 행복에 감싸인다. 가슴에 얼룩으로 남아있던 일들이 떠오르더라도 아이를 떠올리면 기쁨의 길로 다시 들어설 수 있다. 이 작은 존재는 내가 가는 길을 환하게 비춰준다. 러시아 인형 속 작은 인형처럼, 내 마음속에도 따스한 불빛이 비집고 들어와 나를 지켜주고 있다.그렇게 아이와 함께라는 시간이 내 중심이 된 것이었다.
마치 러시아 인형 속 마지막 작은 인형처럼, 메리 카사트의 《The Child’s Bath》 속 아이는 평범한 순간 속에서도 삶을 밝히는 작은 불꽃으로 존재한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매만지는 부드러운 손길과 아이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속에서, 나는 나의 중심과 아이의 성장을 동시에 느낀다. 시험의 성취나 계획을 이루는 순간도 값지지만, 그 위에 아이의 웃음과 성장, 함께 나누는 일상의 순간들이야말로 나를 진정으로 움직이는 힘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의 중심을 찾아가는 여정은 결국 사랑과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작은 불꽃 하나에도 삶 전체가 환하게 빛나는 삶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다시 내 삶을 밝힐 수 있게 해주는 나의 작은 불꽃.
내가 다시 내 길로 들어설 수 있게 해주는 나의 작은 불꽃.
내가 다시 눈앞의 행복에 감사할 수 있게 해주는 나의 작은 불꽃. 나의 작은 아기. 나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