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도시 우화 10화

면접 후기

어느 날, 증명사진이 말을 걸었다.

by 차감성

[도시 우화]

면접 후기: 어느 날, 증명사진이 말을 걸었다.



"그래, 그래서 지금까지 뭘 했다고요?"

"그게...지금까지 설명드린 것처럼..."

"감성씨."

"네?"

면접관은 쓰고 있던 안경을 내려 놓으며 서류에서 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보고 있던 서류를 가볍게 들어올려 종이 뭉치 가장 밑바닥으로 밀어넣었는데, 하필이면 함께 첨부된 내 증명사진이 종이 뭉치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감성씨가 기분 나쁘지 않게 들었으면 좋겠어요. 아직 감성씨는 젊고...또 능력도 있으니깐, 앞으로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해볼게요. 감성씨의 이야기가 참 좋긴 한데, 뚜렷이 뭘 했는지가 증명이 안돼요. 회사에서는 '나'를 숫자로 증명해야 해요, 숫자로."


나는 아까부터 면접관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무리 사이에서 간신히 고개를 내밀어 숨을 쉬고 있는 내 증명사진과 대면하고 있었다. 무표정한 듯, 살짝 웃고 있는 듯한 그 사진이 '이제야 숨 좀 쉬겠네' 하는 표정으로 바깥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살만 하니?


"그런데 감성씨가 이야기하는 거, 그래, 좋게 보면 멋있는 꿈이고 이루면 좋죠. 좋은데, 그게 우리 회사에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 는 조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너는 살 만하니? 쪼그마한 증명 사진은 오히려 나에게 반문했다. 나? 나는 뭐...이렇게 면접도 보러 다니고 꼬박꼬박 잘 챙겨먹고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지 뭐. 뒤쳐지진 않았는데 앞서지도 않은? 아니, 사실 뒤쳐진 걸 수도. 에이, 잘 모르겠다. 거기 그렇게 쳐 박혀 있는 너보단 낫지.


"여기 면접보러 오는 수많은 청년들이 꿈을 이야기하는데, 과연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을 했는지, 그 노력은 어떤 결과를 냈는지, 그 결과로 우리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이야기 안 해요. 감성씨는 그래도 꿈이라도 있지, 지원자들 몇몇은 자기소개서 밖에 있는 걸 물어보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요."


그래? 정말 그렇게 생각해? 여기 있는 나는 적어도 남들과 다르진 않잖아. 오늘이 지나고 저기 작은 분쇄기에 갈린다고 해도 남들이랑 함께 갈릴 걸? 근데 넌? 넌 이제와서 면접관 앞에서 혼자 뭐 하는건데?

후...속이 쓰리다. 내가 아무리 변명해도 결국 이 재수없는 대머리 아저씨 앞에 어영부영 하고 있는 이상, 나는 철지난 지각생일 뿐. 그래, 미안하다 미안해. 괜히 복잡해서 그랬어.


"내가 너무 쓸데없는 이야기 했죠? 너무 마음에 담아두진 마세요. 다 지원자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이니깐."

면접관은 흐트러진 종이 뭉치들을 양옆, 위 아래로 툭툭 치며 반듯하게 하나의 뭉치로 만들었다. 빼꼼 나온 내 증명사진도 툭, 뭉치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결과는 2주 후에 회사 게시판에 공시 됩니다. 우리 회사에 관심 가지고 지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돌아가시면 되겠습니다."



빌딩 정문을 밀고 나올 때 비로소 손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마치 부끄러운 일을 한 강아지처럼 정장 입은 직원들 사이에서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시린 공기, 저릿한 햇살.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가방을 들고 회전문으로 빌딩에 들어가고 나가는 모습을 보며 작은 현기증이 왔다.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회전문, 그 안을 빙글빙글 도는 얼굴들. 어쩌면 분쇄기에 들어갈, 혹은 서류 봉투에 밀봉될 수많은 증명사진들이 떠올랐고, 그 가운데 빼꼼 고개를 내민 내 사진과 또다시 천연덕스럽게 눈이 마주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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