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도시 우화 09화

어서 와, 앨리스

다시 쓰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by 차감성

[도시 우화]

어서 와, 앨리스



S#1

초저녁. 앨리스, 한참을 헤맨 끝에 주소가 적힌 꾸겨진 지도를 따라 커다란 빌딩으로 들어간다. 빌딩 내부는 화분도 많고 고풍스러운 조각품도 많지만 어딘지 모르게 위화감이 든다. 검정색, 회색, 흰색만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의 옷은 빌딩의 분위기를 더욱 칙칙하게 만든다. 정장 포켓에는 눈에 띄게 노란색 스마일 배지를 달고 있지만 웃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과 전혀 다르게 밝은 옷을 입은 앨리스. 하지만 아무도 앨리스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앨리스는 무표정한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탄다. 매층 마다 사람들이 내리고 결국 앨리스만 남겨진다. 44층.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짙은 보라색 페인트칠을 한 넓은 집이 보이고 그 가운데 젊은 남자 둘이 앨리스를 발견한다.

대인: (앨리스를 발견하곤 반갑다는 듯이) 어서 와, 앨리스! 먼 길 오느라 고생했어. 딱 티타임에 맞춰 왔구나? 아직 적응이 안 되지?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 너도 곧 익숙해질테니깐.


대인, 앨리스의 손을 잡고 갑작스럽게 집 안으로 끌어들인다. 집 안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고 바닥과 지붕 모두 보라색으로 칠해져있다. 통유리 벽 바깥은 앨리스가 힘겹게 걸어온 휘황찬란한 도시의 모습이 내려다 보인다.



S#2

앨리스: (대인의 손에 끌려가며, 휘둥그레한 눈빛으로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어…안녕? 여긴 어디야?

대인: 어때? (과장된 몸짓으로 팔을 벌리고 빙그르르 돌며) 여기가 이래봬도 이 세상에서 가장 높고 가장 넓은 집이라고. 조금 덥긴 하지만, 요즘은 다들 이렇게 통유리로 해서 사람들을 내려다 보는 게 유행이야. 어때, 왕이 된 거 같지? 어때, 어때, 어때, 어때? 왕이 된 거 같지?

앨리스: 응…응. 아, 참, 나는 여기 종이를 보고 왔는데…


대인: (앨리스의 말을 가로 채며) 이 쪽은 나랑 같이 다니는 녀석이야. 널 보고 싶다고 했어, 앨리스! (누가 들어도 위선적인 목소리로) 우리들이 널 초대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야. 이 쪽은 세오라고 해!

이 쪽은 앨리스. 앨리스는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는 애야. 이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와서 아직 이 곳이 익숙하지는 않아. 우리가 많이 알려줘야 해.


세오: (대인과 다르게 점잖다. 하지만 어딘가 꿍꿍이가 있다) 안녕, 앨리스? 난 이 집의 주인 세오야. (불쾌감이 들 정도로 미소 지으며) 너한테 그 쪽지를 보낸 게 나야! 네가 핸드폰이 없어서 얼마나 전달하기 힘들었는지 몰라.


대인: 세오는 정말 정말 돈이 많아. 이제는 세는 걸 포기했을 정도라니깐, 하하하. 아 참, 네가 사는 곳에도 돈이 있니?


앨리스가 대답하려고 하지만 입을 열기도 전에 대인이 말을 이어간다.


대인: (앨리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허리를 숙인다. 앨리스 코 앞) 이 곳에서는 돈으로 뭐든지 할 수 있어. 아주 아주 빠른 자동차나 (소곤소곤 말하며) 이렇게 엄청나게 넓은 집은 물론이고...


(세오가 가로챈다. 앨리스에게 눈을 고정하며 다시 허리를 피는 대인)

세오: (으쓱하며) 널 행복하게 만들어줄 사랑도 살 수 있지.


잠자코 듣다가, 앨리스

앨리스: (눈이 휘둥그레지며) 사람? 여기서는 사람도 돈으로 살 수 있니?


세오: (방긋 웃으며 손을 가로젓는다) 아니아니, 사람이 아니라 사랑! (하지만 이내) 아니지, 사람도 돈으로 살 수 있어.


대인: (하하하 웃으며) 맞다 맞아. 사랑도 사람도 돈으로 살 수 있어. 우리는 사랑도 사람도 돈으로 살 수 있어. 사랑도 사람도 돈으로 살 수 있어.


S#3

모두의 손에 커피잔이 들려있지만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앨리스는 갈증을 느끼고 있으나 대인과 세오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다. 해는 금새 졌지만 야경의 불빛이 44층이나 되는 이 집을 불쾌하게 비추고 있다.


그때, 따르릉! 따르릉! 날카로운 전화음이 울린다.

대인, 전화를 보며


대인: (핸드폰에 눈을 고정하며) 즐거운 대화 중에 미안해, 얘들아. 연락이 너무 많이 오네. 핸드폰이 뜨거워서 터져버릴 지경이야.


대인, 핸드폰을 끄고 뒤로 던져 버린다. 대리석에 부딪혀 깨져버리는 핸드폰. 하지만 대인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대인: (핸드폰은 신경도 쓰지 않으며) 내가 요즘 돈 좀 벌었거든.


앨리스: (조심스레) 누구…연락인데? 친구들이니?


대인: 친구? (비웃으며) 에이~ 요즘 같은 세상에 친구가 어딨니, 앨리스. 다들 비즈니스 파트너지. (차갑게 정색하며) 너도 조심해. 옛날에나 있었던 친구로 변장해서 사기 치는 새끼들이 너무 많아졌어. 속는 사람도 어처구니 없지. (다시 방긋 웃으며 세오와 앨리스를 번갈아 보며) 앨리스는 참 순수해서 탈이야.


세오는 대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며 앨리스만 바라보고 있는다. 앨리스, 그런 세오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눈길을 피한다.


대인: (새로운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끄내며) 우리, 이야기도 다 했으니깐 세오 집 배경으로 셀카 한 장 찍을까? (거칠게 앨리스를 잡아끈다)


앨리스: 아얏!


대인: (아랑곳 하지 않고) 응응, 넌 키가 작으니깐 앞으로 가고...자, 내가 먼저 중간에서 찍을게. 일단 찍는다? 앨리스, 더 붙어봐. 자, 일단 찍는다? 하나~둘~셋!



S#4

찰칵하는 소리와 펑, 플래쉬가 터진다. 지붕과 바닥에 플래시가 반사되어 터져 모두의 눈을 멀게 한다. 하얗게 밝은 보라색 빛만이 화면에 가득 찬다. 잠시 후, 음성만 멀리서 조금씩 들린다. 낄낄낄 웃는 세오.


세오: (낮지만 불쾌한 목소리로) 음...괜찮은데? 이거는 나한테만 공유해줘.


앨리스의 시야가 점점 돌아오고 어느새 가까이 서있는 대인과 세오가 눈에 들어온다. 대인, 앨리스 눈 바로 앞까지 얼굴을 들이대며 말한다.


대인: 자, 그럼 앨리스! 다음에 보자!


앨리스: (다급하게) 잠깐만! 난 너희에게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고. 물어볼 게 많단 말이야.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대인과 세오. 아무말 없이 앨리스를 바라본다. 숨막힐 듯한 침묵. 위협적인 침묵이 계속되자 앨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게 된다. 한동안 계속되던 침묵을 깨며 세오가 이야기한다.


세오: (방긋 웃으며) 더 물어볼 게 있어? 더 얘기할 게 있니? 너희 세상에서는 모이면 뭐하는데? 우리는 우리를 증명하기 위해 모여.


대인: (앨리스가 멀어진만큼 다가서며) 우리는 그냥 이렇게 사진 찍으려고 모이는거야. 혹시 인스타 하니? 앨리스도 이 곳 세상에 왔으니깐 얼른 만들도록 해. (인스타그램 화면을 보여주며) 이 피드가 널 어떤 사람인지 증명해주는 거라고. 그래, 이게 우리의 신분증이야.


인스타그램 화면에는 대인, 세오, 앨리스가 함께 찍은 사진이 어느새 올라가있지만 얼굴이 모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하게 바뀌어져 있다. 앨리스, 대인의 핸드폰 화면을 보다 화면에 비춘 자신의 모습이 사진처럼 기괴하게 바뀌어져 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뒤로 넘어진다.


넘어진 앨리스를 바라보는 세오와 대인은 깔깔깔 웃는다. 웃음소리와 함께 둘의 신체가 조금씩 뭉개진다. 뭉개지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커다란 타원형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두 사람의 색 역시 샛노랗게 물들어 간다.


앨리스, 어느새 커다란 두 개의 고양이 눈으로 바뀐 두 사람을 발견한다. 두 눈이 점점 앨리스에게로 다가오자 앨리스는 겁을 먹은 채 엘리베이터로 도망간다. 1층부터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소름끼치는 두 눈알은 점점 앨리스에게로 다가오고, 앨리스는 발을 동동구르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린다.


띵! 마침내 도착한 엘리베이터. 앨리스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발을 내딛지만 바닥이 꺼져 있어 아래로 휙 떨어진다.


끝없이 떨어지는 앨리스. 떨어지며 앨리스는 자신이 떨어진 44층을 올려다 본다. 어느새 커다란 체셔 고양이가 떨어지는 앨리스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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