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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차곡 May 18. 2020

공감이 어려운 여자

벤치에 앉은 사람

육아에 관한 우스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남편에게 아이 좀 봐 달라고 했더니 멀리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더라는.
실은 내가 좀 그런 타입이다.
근거없이 추측해보자면 이건 공감과 감정의 영역이 아닐까 싶다.
공감이 잘 안되면 상대방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상대방을 어떻게 대해야할 지 전혀 알지 못한다. 마치 내가 아기를 봤을 때 ‘낯선 작은 인간’을 어찌 대해야 할 지 몰라 굳어버리는 것 처럼.

 사회생활도 문제 없이 하고 있고 친구들도 있으니 훌륭까진 아니더라도 나름 멀쩡한 사람이다. 하지만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늘 어렵다.
한때는 내가 아스퍼거 증후군이 아닐까, 하고 의심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관련 카페도 가입해보고 책도 읽어 보았다. 나름 확신도 가졌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스퍼거는 대개 천재성을 보인다고 하던데 나는 평범하고 성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정확하게 파악한 건 몇 년 전 직장 문제로 인해 남몰래 심리상담을 받았을 때였다.
내 성격이 전문적으로 분석되었다.
유난히 독립적이며 정서보단 사실에 집중하고, 잡담에 흥미가 없으며 감정에 별로 민감하지 않은, 세계적으로도 적고 특히 여성은 0.3%에 불과한 유형이었다.
그래서 살면서 자신이 섬처럼 느껴졌을거고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했을거라고 했다.
바로 그거였다. 나도 정의하기 어려웠던 내 모습.
마치 머릿속에 들어 와 있는 것 같던 설명지에는 나의 장점과 단점을 어떻게 살리고 보완할 수 있는지도 나와있었다.

왜 감정에 민감하지 않을까, 수 백번 자책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잘 공감하지 못할까. 왜 늘 어색할까.
모순적이게도 남들보다 민감하기까지 하면서.

단지 이런 성격을 가졌을 뿐이었다.

덜 감정적이라고 해서 감수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문제 삼으면 문제가 된다고 했던가,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조금 힘들었던 건 감정이란 것 자체에 둔했던 탓에 나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조차 모르고 있던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조용히 쌓여있다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터져버리곤 했다.

사회생활하며 그나마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감정의 영역은 미지의 세계다. 다만 아닌 척 하고 있을 뿐.
평생 보완해 나가야 할지, 그냥 이대로 살 지 결정은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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