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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차곡 May 31. 2020

"평생 혼자이면 어쩌지?"

혼자됨과 결혼에 대하여

길을 걷던 누군가


두려웠다.
결혼이라는게 가까운 시일내에 해결해야 할 발달과업처럼 느껴져 조급했던 시기가 있었다.

어린이였을 때부터 난 결혼을 늦게할 것 같단 직감이 있었다. 일찍부터 남자들과 연애하며 경험을 쌓을 성격은 아닌 듯 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사회에서 흔히 기대하는 친절한 여성은 아니었다.
농담을 가장한 성희롱에 호호 웃으면서 넘어가기는 커녕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불쾌하니 말 조심하라고 하는 성격. 누가 슬쩍 비난을하면 같이 면박주는 단순무식함. 정부에서 준 성희롱교육자료 한 페이지를 형광펜으로 체크해서 능글거리는 남자상사들 눈 앞에 들이미는 성격. 남의 자질구레한 일상에 관심도 없고 잡담도 별로 즐기지 않는 과묵함. 애교는 아기같이 행동하는 것 같아 꺼리는 성격. 무엇보다 내 일이 있어야 속시원하고 의존하면 신세지는 것 같아 불편한 성격.

'세다'라는 중립적 형용사는 이따금씩 부정적으로 탈바꿈되어 나에게 던져졌다.
사실 순종적이지 않다고 해서 혼자가 되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다.

어린시절 밥먹듯 드나들던 할아버지 댁은 남자들이 먼저 큰 상에서 식사한 후에 여자들은 작은 상에서 따로 밥을 먹는, 남존여비스러운 환경이었다. 유년시절 자란 곳은 국내에서 제일 보수적인 지역이었다. 엄마는 시어른들에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순종했고 집에선 온 살림을 도맡아했던 전통적인 기혼여성이었다.
물론 살림을 도맡아 하려면 강인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느낀 ‘전통’은 그 강인함을 숨긴채 여리고 의존적인 모습을 요구했고 난 그게 싫었다.

어렸을 땐 막연히 32~33 쯤에 결혼하면 ('정상'이라는 가면 뒤에 숨기에)꽤 이상적이겠다고 생각했었다. 30살 즈음이었을까, 그러려면 지금부터 누군가를 만나야 하지 않을까 싶었고 한때는 소개도 여러번 받았지만 인생공부만 되었을 뿐 결과는 없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욕심이 많고 남들은 내 맘과 다르다는 것만 배웠다.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도.

과거에 회사문제로 심리상담을 받던 중 선생님이 내게 했던 말도 떠올랐다. '이러다 평생 혼자 덩그러니 남으면 어쩌죠'라는 나의 불안한 물음에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이런 성향-특히 한국의 여성중에-은 드물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그 분도 연세도 있고 여리여리 전통적인 여자였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그런 말을 내게 했을 거라고 믿고싶었다.

모두가 집에 머물기를 권장받았던 2020년에
방구석에서 휴일을 보내던 나는
난생처음, 진심으로, 남들의 마음을 얻기보다 그냥 나 스스로도 오롯이 온전하기를 바라게되었다.

돈과 사람은 있다가도 없는거니까. 일단 내가 스스로 마음이 편하고 안정돼야 친구를 사귀든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주말에 부모님이 계신 집에 다녀왔다.
가만히 쉬는데 불현듯 엄마는 내게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하셨다. 정말 불현듯. 난 아무 말도 안했는데.

엄마는 결혼생활이 힘들기도 하지만 나를 보면 그 세월이 가치있었다고 했다. 인생에는 서럽고 힘든 일이 많지만 티끌만큼의 행복을 보고 살게 되는거라고 했다.
그리고.. 혼자여도 괜찮다고 했다.
결혼해서 살다가도 혼자 될 수 있는거고 꼭 누구를 만나야 한다 생각하지 말고 즐겁게 살되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만나보라고. 인생은 어찌될지 모르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엄마는 엄마가 되면서 강해져야했던, 사실은 순하고 연약한 사람이다. 누구보다도 제 나이에 시집 가는 것이 당연했던 분위기에 순응했던 사람이다. 엄마는 나를 위해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사람 인생 모르니까 난 어쩌지 하면서 걱정하지 않으려 한다. 혼자이든 아니든 나는 편안할거니까. 오늘 하루 마음 편하게 보내는 것, 그게 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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