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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차곡 Jun 30. 2020

어른의 어느 밍밍한 소개팅

따릉이를 타고 초록 불을 기다리는 사람

얼마 전 평일 저녁, 2년만에 소개팅을 했다.
몇 몇 정보만 대충 알고 갔던터라 그 사람 번호도 추가하지 않아서 얼굴도 모르는 상태였다.
상대가 보내온 카톡 대화창에서 몇 마디 나눈 게 전부였다, 친구추가도 하지 않은 채.
만나보니 그는 특별히 모난 곳 없어보였다. 아마 소개남의 눈에도 나는 그저 평범한 여자 한 명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그리 오래 이야기를 하지 않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한 시간 반만에 자리를 떴다.

요즘 내가 결혼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1%도 기대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소개팅 약속이 있다는 것조차 대부분 잊고 지냈다. 그래서 지나치게 긴장하지도, 예뻐보이지 않을까봐 불안하지도 않았다.
그는 만약 나의 지인이었다면 주변 여자들에게 소개했어도 크게 욕 먹지 않을만한 무난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한 눈에 큰 호감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왠지 양쪽 입꼬리가 축 내려가 슬퍼보이는 것도 같았다.

나는 지금 아무도 원하지 않는 걸까.

코로나를 이유로 집안에 조용히 혼자 있던 시간이 길어져서 내 안으로 한없이 침잠해있는 상태인걸까.

아무튼 그는 다음에 뭐 하러 가자, 빠른 시일 내에 만나자 등등의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어차피 예의상 내뱉는 껍데기. 행동 없는 말들.

헤어지고 잘 들어갔냐는 말에 답하고 마무리인사가 끝난 뒤, 카톡 대화창을 조용히 삭제했다. 그렇게 나와 그는 서로에게 사라졌다.

모든 게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거실에서 이불을 칭칭감고 피곤한 채로 조용히 누워서 잠들고 뒤척이고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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