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요즘 보면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겠다는 사람이 남는 것 같다. 고등학교 방과후 미술 시간에 한 중년 화가 아저씨가 선생님으로 계셨다. 지금은 오랜 세월이 지나서 뭘 배웠는지조차 가물가물하지만 그 분이 하셨던 말씀 중에 하나는 기억한다. 자신도 어렸을 때는 재능있는 사람이 끝까지 가는 줄 알았는데 재능도 감각도 별로 없던 친구가 미술을 끝까지 하는 걸 보고 이해를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수 년이 흘러서 그 친구의 작품을 봤고, 예전과 다르게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을 만드는 그를 보고 놀랐고 존경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그 때 화가선생님 말에 속으로 비웃었다.
나는 우물 안에서 가장 오만한 개구리였고 7살 때부터 다져온 나만의 세계는 불필요할만큼 견고했다. 그렇게 자기 색깔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림을 그리는 선생님이 만들어낸 말이라며 한 어른의 통찰을 무시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수업용이라 일부러 기술적으로 그리셨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그 때의 선생님과 비슷한 중년의 나이까진 아니지만 비슷한 경험 하나가 내 건방진 어깨를 툭 치고 앞질러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림에 대한 애정은 있었지만 내 모든 열정과 시간을 오롯이 쏟기엔 두려워 평범한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였다. 서점에서 문득 집어든 일러스트레이션 잡지에는 고등학생 때 그리 뛰어나지도, 하지만 재능이 없는것도 아니었던 무던한 친구가 그린 캐릭터와 인터뷰가 실려있었다. 평소에 보지도 못했지만 그 날따라 눈에 띈 잡지 속에서, 하필 그번 달에 실린 친구의 작품은 내게 소리쳤다. ‘건방진 인간아, 이렇게 사는거다.’
쓸데없이 견고했던 내 세계가 무너졌다고 해야할까. 내가 보는 그림의 가치가 꼭 정확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 내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조금은 알게됐다. 뛰어난 사람이 계속 하는 게 아니라, 하는 사람이 하는거라는 말이 딱이다. 작품 만드는 것도 그림 그리는 것도 결국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 중 하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성인이 되고 오랫동안 그림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지냈기에 1차적으론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평범한 회사원이라기엔 감성이 예민하고 자의식도 강하고 그림이든 뭐든 표현해야 해소가 되는 뭔가가 있다. 배운 건 어디 안간다고, 그림을 그리고 때론 글을 쓰며 사회인으로서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