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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깔깔씨 Dec 19. 2024

쾌변의 종말_2

썸타는 중

모닝커피 없는 삶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좋아요 없는 인스타?

넷플릭스 없는 티비?

유튜브 없는 핸드폰? (허허허 이건 뺄까?)

암튼 이런 거와는 비교도 안 될 일인 거다


정확히 시작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부터 숨쉬기처럼 함께 한 모닝루틴이었는데

그걸 못한다 생각하니, 기운이 쏙 빠지고 몸 어딘가 한구석이 뻥 뚫린 것만 같았다


그래도 그 루틴보다 중요한 게, 건강!이니 일단 후두염을 치료하고, 잃어버린 모닝루틴을 다시 찾기로 하자

근데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 산 넘어 산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다




모닝커피 루틴과 더불어 나의 식습관 정보를 공유하자면 대략 이렇다

1. 공복 모닝커피

2. 10시쯤 단백질 음료와 견과류 한봉

3. 1시쯤 샐러드나 샌드위치 고구마 과일 같은 걸로 가볍게 점심

4. 6시반쯤 저녁 (한식위주로 먹지만, 가끔은 한 끼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대차게 먹는 스타일)


평생 다이어터로 살고 있는 나는, 이렇게 두 끼 정도로 하루를 나고 있다


근데, 모름지기 약이란 것이 일 3회 식후 30분 후 복용이지 않나

내가 받아온 약도 그와 다를 바 없는 식후 30분 그거였다

게다가 아침엔 식전 약에 자기 전 약까지 총 5회

약 먹다 배 터지겠네


아침에 입맛도 없는데, 약 때문에 뭐라도 씹어 먹어야 하고 삼시 세 끼를 다 챙겨 먹게 생겼다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배가 터지게 약을 먹고, 커피를 끊고, 일주일 뒤 다시 병원을 간다

또 허리를 숙이고 목을 치켜들고, 차가운 쇠막대기가 목구멍 저 깊숙이 들어오면 아~하고 소리를 낸다

지난번에 한번 해봤다고 헛구역질은 안 났지만, 역시나 눈물은 살짝 고였다

아직 붓기와 염증이 가라앉지 않았다고 주사를 맞고, 같은 약을 또 처방받아 집에 온다


또 시키는 대로 또 일주일을 그렇게 배 터지게 보내고, 다시 병원을 간다

지난주보다 조금 나아졌지만, 역시나 같은 주사, 같은 약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된단 말인가

그냥 콱~커피 마셔버려? 짜증 나고 열받는데, 술도 확 마셔버려?

악마의 속삭임이 스멀스멀 들려온다

아니지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까워서라도 그것은 안될 일이지

그래 참자 참자 참아보자


또 그렇게 어찌어찌 배 터지는 일주일을 보내고 병원을 간다

이번엔 많이 좋아졌다고 2주 치 약을 처방해 주시며, 약을 먹고 괜찮으면 그만 와도 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약봉지씨와 이별이란 말이지?

아직 2주를 더 동거해야 하지만, 기한 있는 동거라면 기꺼이 함께해 줄게요


근데 이 무슨 조화지?

2주 치 약을 다 먹었는데도 이물감이 느껴지는 거다

'젊다는 건 허리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잊고 사는 것'라는 유진목 시인의 명언이 있는데,

이거에 대입하자면, '나았다는 건 염증이 목구멍에 있다는 것을 잊고 사는 것' 아니겠는가

근데 아직 이물감을 느끼고 있으니 이건 나은 게 아니잖아

후두염씨!

대체 언제까지 목구멍에 붙어 있을 거냐고요 대답 좀 해보세요

당신이 나가야 제가 봉지씨와도 작별을 할 수 있다고요

제발 이제 그만 제 인생에서 꺼ㅈ 아니 아니 사라져 주세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러고 또 기운이 빠질 대로 빠진 채 다시 병원을 갔다

선생님 말씀이 붓기도 다 가라앉았고, 염증도 없고 이제 다 나았다는 거다

"근데요 선생님 아직도 이물감이 있는데요"

"그건 환자분이 예민하셔서 그래요"

"네? 저 그렇게 예민한 사람 아닌데요"

"예민하신 분들이 거의 다 그렇게 말씀하세요 본인은 예민하지 않다고"

"진짠데요"

"그럼 일주일 더 드셔보시고, 괜찮으면 안 오셔도 됩니다 다 나으셨어요"

"네 안녕히 계세요"


또 터덜터덜 봉지씨와 집에 왔다

그러고 한 사흘쯤 지났을까?

늦은 밤 자려고 누웠는데, 어? 오늘 하루종일 목에서 느껴지는 뭔가가 없었다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거다


드디어 후두염씨와 봉지씨와 이별이다

hey~ 거기 두 분! 이제 제 인생에서 퇴장해 주세요

질척거리지 마시고, 스쳐 지나치는 우연이라도 우리 만나지 말아요

그렇게 우리는 남남이 되었다




이별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흔적 없이 깔끔히 사라진 그들 덕에 목구멍을 신경 쓸 일이 전연 없다


그래서 모닝루틴은 어떻게 됐냐고요?

다 낫긴 했지만 공복 모닝커피는 안 좋을 것 같아서 커피 대신 따뜻한 물을 마시고 있고요, 커피는 점심 먹은 후 마시고 있습니다

쾌변 상황도 궁금하시죠?

인간의 몸이란 게 또 신기하더라고요 환경에 맞게 적응을 한 건지, 아침에 따뜻한 물 한잔 마시고 나면 또 신호가 오더라고요

공복커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만족하며 살아야지 어쩌겠어요

방법이 없는걸...

저는 이렇게 또 적응해 가면서 살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어두컴컴한 검은 기운의 두 분과 이별하고, 요즘은 아침마다 멋진 분들과 썸타는 중입니다


평화로운 하루를 만들어 줄것 같은 캐모마일씨

향기로운 하루를 열어줄것 같은 라벤더씨

속편한 하루를 만들어 줄것 같은 민들레씨

열정적인 하루를 만들어 줄것 같은 히비스커스씨

이름만 들어도 상쾌한 페퍼민트씨


멋진 분들이 너무 많죠? 설레게~

내일 아침엔 누구를 만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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