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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와 감사가 넘쳤던 일본 가족 여행

익숙한 풍경에서 벗어나면 더 높은 시선으로 또 다른 세상을 마주한다.

by 나폴리피자

아이를 데리고 일본을 다녀온 지 어느덧 20일이 지났다.


지금 문득 떠오르는 여행지 풍경과 느낌을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을 했다. 여행으로서 8박 9일은 비교적 긴 시간이었다. 넉넉하고 여유 있게 도쿄 도심 구석구석을 보고 싶었다.


막상 우리는 아침에 눈 뜨면 9시를 넘겼었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나가면 11시 정도 됐다. 식당에서 식사를 해보려고 도전했지만, 유모차를 끌고 막연히 기다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숙소 인근 백화점 지하 식품점에서 주로 도시락을 사다가 먹거나 마트에서 장을 봐서 음식을 해 먹곤 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숙소 바로 옆 백화점 2층에 하브스라는 케이크 가게가 있었다. 인기가 많아서 줄 서서 먹는 곳이라 기대가 컸다. 빵이나 디저트만큼은 배부르게 먹고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매장 진열대에 있는 케이크를 종류별로 조각으로 담아 숙소에서 먹곤 했었다.


한 입 가득 케이크를 먹으면 촉촉한 크림과 입 안에서 녹는 듯 사라지는 빵 식감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다. 평소에 먹던 생크림에 비해 덜 달았고 향도 좋았다. 일본 여행 내내 그래도 맛있는 케이크를 잘 즐기고 와서 여전히 뿌듯하다.


여행 이튿날 아침에 비가 와서 길거리를 배회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역 안에 있는 빵집에서 배를 채워야 했다. 보통의 백화점 식품관에 가면 도시락을 사더라도 그곳에서 먹을 곳이 없어 숙소로 싸들고 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나마 그 빵집은 너무나 감사하게도 유모차도 적당히 세워둘 수 있고 의자에 편히 앉아 먹을 공간이 있었다. 배가 고프니 식사용 빵을 비롯해서 샌드위치까지 이것저것 샀다. 그리고 시원한 커피 한잔도 샀다. 여행 중 가장 설레는 순간이었다. 빵 한 입 베어 물고 우걱우걱 씹다가 차가운 커피를 마시니 비로소 내가 도쿄에 왔음을 실감했다. 배가 고파 맛도 좋았고 커피 향도 새로운 맛이라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배가 고파하는 아이를 달랠 수 있어 안심이 됐다.


또 하루는 동경대 견학을 갔다. 유모차 끌고 가서 구경하고 쉬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대학교 캠퍼스 자체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나무 그늘 밑에서 편안하게 앉아 책을 읽는 학생의 모습도 보였고, 운동장에서 럭비 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보았다. 전체적인 캠퍼스 풍경과 건물 색감에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꼈었다. 이곳이 일본에서 가장 훌륭한 인재가 모여 공부하는 곳이구나 생각하며 좋은 기운을 많이 느끼려 했다.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자전거를 하나하나 만지며 흥미로워하는 아들을 곁에서 돌보느라 조금 힘을 썼지만,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 최적의 여행지였다. 아이가 피곤해서 유모차에 앉아 몸을 기대어 쉴 때 즈음 본격적인 캠퍼스 투어를 했다. 나는 이때가 가장 자유롭고 아이에게서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아이가 유모차에서 눈을 붙이고 잠이라도 자면 그땐 느긋하게 커피 한잔 마시며 비로소 눈앞에 펼쳐진 캠퍼스 풍경이 새롭고 정겹기 시작한다. 밥을 먹더라도 관광을 하더라도 일단 아이가 먼저 활동을 해둬야 그다음 우리의 행동이 편해졌다.


동경대 학식 체험도 기억에 남는다. 오후 느지막이 간 식당에 다행히 운영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별로 없어서 마음 편히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골라서 식판에 놓고 계산 후 먹기 시작했다. 음식에 온기가 있었고 가격도 괜찮아서 괜히 기분이 좋더라. 어딜 가나 학교 식당 밥은 그래도 맛있게 잘 먹을 수 있었다.


도쿄의 최대 관광지라는 시부야에선 시부야 스카이가 단연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이와 함께 그 높은 건물 옥상에서 도교 도심을 둘러보며 그 크기와 발전한 도시 풍경에 감탄을 했다. 일본은 일본이구나 글로벌 도시다웠다. 옥상에 바람이 불었고 건물 테두리에 둘러쳐진 유리난간은 너무나 아찔했다. 혹시나 기대면 떨어질까 무서웠다. 여기가 옥상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신난 아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나보다 더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이곳에 왔다는 것을 기억할까? 기억을 못 해도 상관없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와 우리는 즐거웠다.


의외로 피곤해서 금방 벗어났던 곳이 시부야 길거리와 오모텐산도 힐즈 근처였다. 사람이 많으니 유모차를 밀면서 신경이 쓰였었다. 긴자 거리와 긴자역에서 전철 탈 때도 참 애를 먹었었다. 당시에 퇴근 시간이었는데 전철을 타려니 너무 사람이 많아서 겨우 유모차를 태우고 탈 수 있었다. 전철에서 내릴 때 유모차 바퀴가 잘 굴러가지 않아 버벅 댈 때 한 일본인 남성이 유모차를 들어줘서 잘 내릴 수 있었다. 스미마셍과 친절이 습관인 일본 사람의 매너에 여러 번 감사함을 느꼈었다. 무엇을 하든 어느 틈에서나 느낄 수 있는 일본 특유의 섬세함과 숨 멎을 듯한 디테일에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에노 공원의 풍경도 기억에 선명하다. 평상시에도 공원에 가서 산책하거나 쉬는 것을 즐겨서 도쿄의 공원도 호기심이 가득했다.


크기도 제법 컸고, 적당히 나무도 많고 미술관과 동물원 그리고 박물관까지 정말 제대로 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모여서 그런가 사람이 참 많았다. 날씨가 화창하고 눈에 보이는 풍경이나 이미지가 워낙 또렷해서 지금도 좋은 분위기로 남아있다.


여행하는 동안 근사한 식당에서 먹거나 쇼핑을 하거나 그런 경험은 못했다. 최대한 느긋하고 안전하게 유모차를 잘 밀고 다니고, 배가 고프면 바로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간단한 먹거리로 급한 불을 끄곤 했었다. 어쩌다 숙소 바로 앞 브런치 카페에 들어가봤는데, 운 좋게 앉을자리가 있어 셋이서 겨우겨우 앉아 에그샌드위치와 커피를 먹기도 했었다. 어딜 가도 사람이 줄 서 있고, 많은 도쿄 도심은 외식 한 번 하는 것도 우리에겐 일이었다. 그렇게 겨우 외식을 하기라도 하면 그저 행운이라 생각했다.


9일은 여전히 모자라고 아쉽고 더 가보지 못해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또 다른 기대를 낳았다. 여행 첫날 우에노 역에서 몇 시간을 울어서 나를 당혹스럽게 한 아이를 달래느라 참 애를 먹었는데, 점차 여행에 적응을 한 아들은 여행 내내 유모차 안에서 낯선 세계를 바라보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즐거워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니 나 또한 즐거웠다. 심지어 여행 다녀오고 아이의 말이 더 늘기도 하고 새로운 자극을 받아서 그런지 더 성장했다. 참 신기했다.


다음 가족 여행지는 어디가 될지 모르지만, 아이와 함께 떠난 첫 여행은 무사히 잘 다녀온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었다. 충분히 풍요로웠고 눈에 보인 울창한 나무에서 싱그러운 봄날의 도쿄 풍경을 담을 수 있어 좋았다.


도시의 색채가 다양하고 느낌이 좋고 나뭇잎이 울창한 그런 여행지를 다음에도 골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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