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급히 아빠를 찾는 아이에게 나는 즉각 반응한다

씩씩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나를 찾는 아이를 바라보며

by 나폴리피자

브런치에 문득 글이 쓰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리고 어떤 주제를 쓸지 잠시 고민을 한다. 보통은 자연스레 머릿속에 스치듯 지나가는 주제나 스스로 주저리 떠들고 싶은 내용이 생기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요즘 내 삶은 오로지 육아뿐이다. 온종일 아이와 단 둘이 보내며 시간을 다 쓰고 있다.


조금씩 말을 주저리주저리 내뱉는 아이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느라 정신이 없다. 물이 마시고 싶을 땐 아이는 계속해서 물을 외친다. 키위가 먹고 싶으면 키위를 반복해서 말한다. 회사 다닐 땐 누가 날 찾으면 괜히 부담스럽고 회피하고 싶었다. 반면에 아이의 요구 사항을 들으면 생각할 틈도 없이 몸이 움직이고 있다.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에서 말 보단 느낌으로 전해지는 그 메시지가 내 뇌를 스치면 나는 기어코 반응한다. 아이가 무엇을 요구하고 지금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많이 알게 되었다.


서서히 육아는 내 일상의 전부가 되었고, 막막할 것이라 걱정과 달리 그 안에서 행복을 느낀다. 육아가 비교적 체질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익숙해지고 자연스레 잘하다 보니 성취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아주 자잘하고, 너무나 미세한 아이의 반응에서 내 마음은 따뜻해진다. 그렇게 나는 행복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사람이 붐비는 혼잡한 곳에서 아이와 잠시 꽉 잡던 손을 놓았을 때 황급히 "아빠, 아빠"를 큰 목소리로 외치며 나를 찾는 아이의 모습을 본다. 그 모습에서 내가 아빠임을 자각한다. 내 뇌에서 혹은 본능적으로 내 새끼에 대한 어떤 강렬한 끌림이 즉각 반응하는 느낌이 있다.


어쩌다 한 번씩 아이들이 즐겨보는 만화 영상에 나오는 캐릭터의 모습이나 동작을 내가 따라 하면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크게 웃는 아이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럴 땐 내가 아이를 즐겁게 하고 있구나 보람도 느끼고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집 밖을 나가 손을 꽉 잡고 걷다가도 어딘지 손 잡는 게 불편하면 아이는 내 손을 풀었다가 다시 야무지게 꽉 고쳐 잡는다. 그러다 우연히 지나가는 고양이나 강아지를 발견하면 뭐가 그렇게 무서운지 급하게 안아달라고 재촉한다. 아이의 황급히 놀란 모습을 보면 나는 잽싸게 아이를 안아서 들어 올린다. 팔에 힘이 빠져 아이를 다시 내려놓으려고 하면 그 작은 두 손으로 내 양어깨를 꽉 붙잡는다. 아이가 힘을 쓰는 게 느껴지고, 얼마나 긴박한지 나에게 전달이 된다.


이런 상황을 매일 같이 겪다보니 아이의 모든 것을 전부 다 경험하고 서로의 감정을 나누게 되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무서워하고 어느 순간에 아이는 함박웃음을 짓고 어떤 때 슬퍼하는지 내가 아이 같고, 아이가 나 같고 뒤죽박죽 뒤섞인 기분이 든다.


아침에 눈 떠서 아이가 잠들기까지 끊임없이 아이를 위해 뭔가를 해야만 했을 때, 한 때는 가슴이 답답하고 뭔가 말로 딱히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달리기를 하거나, 운동을 하면 일종의 스트레스가 해소되었다고 느꼈다.


그런데 요즘은 단 둘이 딱 달라붙는 시간이 늘어서 그런지 육아 스트레스와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아이가 하루를 살아내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리고 어제와 달라진 어떤 모습에서 때론 놀라기도 하고 보람을 느끼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육아란 단순히 자신을 내려놓고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오히려 육아를 통해 흐리멍덩했던 내 정체성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그 정체성에 비춰 인생을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나는 선명한 삶을 살고 있다.


이렇게 아이를 재우고 글을 쓰는 시간도 행복하지만, 내일은 내일대로 아이와 어떤 하루,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 기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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