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텔레긴
나에게는 러시아 아빠가 있다. 러시아어 통역사 시절에 나는 S그룹에서 6년 가까이 통역사로 일했다. 내가 S전자에 첫 출근하던 날에, 나의 러시아 아빠인 유리 텔레긴(Юрий Телегин) 수석도 첫 출근이었다. 유리 수석이 다른 계열사의 온라인 면접을 본 적이 있어서 얼굴과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뒤에 시티라는 이름이 붙어 있을 정도로 넓은 사업장에서 입구와 출구가 여러 개인 그곳에서 회사에 처음 온 그와 길치인 내가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서로 어딨냐며 전화하면서 시트콤처럼 헤매다가 결국은 만나서 우리가 근무할 건물로 갔던 게 첫 만남이었다. 그때 나는 31살이었다. 그리고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60대였다. 31살의 나는 사는 게 재미없었다. 어쩌다 보니 러시아어를 전공했고 어쩌다 보니 전공 살려서 계속 일은 하고 있었지만 즐겁지 않았다. 언어 전공자인 내가 휴대폰, 세탁기, 반도체 등을 통역하려면 해야 할 공부가 엄청 많았다. 기술통역은 정말 어려웠다. 내일이라도 당장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매일매일을 보내던 내게, 사실 유리 수석은 귀찮은 존재였다. 갓 태어난 아이처럼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회의 시간이 아닐 때도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해서 계속 나에게 말을 걸었다. 물리, 화학을 잘 이해 못 한다며 학교 다닐 때 안 배웠냐고 구박도 하고, 자꾸 내 수준에 안 맞는 어려운 책을 읽으라고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읽었냐고 확인도 했다. 내가 러시아어로 말하면 그렇게 말하는 것도 맞지만 더 고급스러운 표현은 이거라며 늘 고쳐주었다. 늘 내가 하는 일들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사내에서 함께 산책을 하다가 내가 사는 게 재미없고 우울하다고 했더니, 자신은 60이 되고부터 인생이 더 재밌어졌다고 했다. 4시에 퇴근하면 동네 산을 오르거나 지산에 스키 타러 가거나 가끔은 부산까지도 다녀오는 그의 에너지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한국인들이랑 더 많이 소통하고 싶다고 매일 이어폰 끼고 영어공부하는 모습도 하나도 멋지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들을 해낼 때라서 너무 지쳐있었다.
시간이 흘러서 아이를 낳고 세상 모든 것을 궁금해하는 아이를 키우면서 끊임없이 말하는 아이를 보면서 유리 수석님이 가끔씩 생각났다. 그는 60이 넘어서도 세상을 궁금해하고 재밌어하면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31살 생일에 곰인형을 선물해 주었던 그는 내 결혼식에도 왔었고 신혼집에도 왔었고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 조리원에도 선물을 사들고도 왔었다. 러시아로 돌아갔다가 잠시 한국에 왔을 때도 새로 이사한 집에 와서 보고 갔었다. 그리고 5-6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그가 있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놀러 가야지 막연하게 생각만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나의 러시아 아빠가 내가 페이스북에 올린 첫 책 출간 소식을 보고 댓글을 달았다. 내가 책을 낸 것에 놀랐고 멋지다고 축하한다고 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소식이 뜸해도 여전히 그는 나를 살뜰히 챙긴다. 나의 러시아 아빠답다. 그가 쓴 댓글을 보다가 오늘은 그와의 추억을 다시 소환해 보았다. 60이 되고부터 인생이 더 재밌어졌다는 그의 말이 내가 오십이 다 되어가니 이해된다. 나도 궁금한 게 많아서,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지금의 나이가 더 재미있다. 20-30대보다 지금이 더 좋다. 나도 이제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오십 이후의 내 삶이 더욱 기대된다.
ON 문장: 나는 60이 되고부터 인생이 더 재밌어졌어.
OWN 문장: 저도 오십 이후의 제 삶이 더 기대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