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일 년 정도 살았었다. 내가 기억하는 러시아의 겨울은 칼로 얼굴을 긁는 듯한 아픔이다. 멋 부리는냐고 외투 속에 앙고라 반팔을 입고 치마에 부츠를 신고 다녀서 몸이 꽁꽁 얼어도 그건 참을만했다. 그런데 얼굴이 찢어질 듯이 아팠던 건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기에 아직도 생생하다.
2030까지는 추워도 어찌어찌 잘 버티고 지냈는데 40대의 겨울은 좀 다르다. 혈액순환, 기혈순환이 잘 안 되는 사람이라서 겨울에 몸이 더 안 좋다. 몸이 아프면 마음까지 아프다. 몸도 마음도 겨울에 취약하다.
동네 한의원에서 한약을 먹지 않을 때 평소에 먹으라며 준 환이 있다. 이름이 '맘편환'이다. 자주 깨지는 자율신경에 영향을 주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이걸 먹었다는 플라시보 효과인지 먹으면 맘이 편해진다.
이 환의 이름을 '맘편환'이라고 지은 원장님의 센스가 돋보여서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맘편환도 물론 도움 되지만 내 진짜 상비약은 책이다. 그중에서도 그림책이다.
김윤이 그림책 <오늘은 오늘의 플리에부터>
무릎을 구부리는 걸 플리에라고 해요. 발끝을 바깥으로 향하게 서서 살짝, 드미 플리에. 크게, 그랑 플리에.
그림책<오늘은 오늘의 플리에부터>에서는 발레를 처음 배우는 지유도, 발레 무대에 서고 싶은 지수도, 세계적인 무대에서 춤추는 제이도 늘 플리에로 하루를 시작한다. 잘하고 싶은 사람도 잘하고 있는 사람도 모두 매일 차근차근, 차곡차곡 기본부터 시작하며 실력을 쌓아간다.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주위를 살피다가 제 풀에 꺾였던 내 마음을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나만의 플리에로 시작하는 하루하루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 함께 하나 둘 셋 넷.
새해에 잘 어울리는 그림책이다. 마음만 앞서 달려 나가다가 지치지 말고 오늘은 오늘의 플리에부터 시작하는 내가 되어야겠다. 나만의 플리에를 무엇으로 정할까?
아침에 일어나면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고 글을 써야겠다. 잘 쓰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의식의 흐름대로 무조건 한 시간씩 써야겠다.
차곡차곡 모여서
매일매일 나만의 플리에로 하루를 시작하다 보면 그것들이 차곡차곡 모여서 내가 바라는 나에 더 가까워질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