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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 Oct 19. 2021

계속 해, 널 사랑해도 돼.

Epilogue



“나, 이제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고.”



계절은 멀었지만 처음 여기 도착했던 날과 아주 비슷한 날씨가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내 유배 생활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달력을 여러 장 넘기고 10월 31일에 특별한 표시를 남겼다. 겨우내 썼던 물건들을 정리하면서는 다시 열어보지 않을 것처럼 꼼꼼히 포장을 해 두었다. 어차피 다시 겨울이 오기 전에 이삿짐이 될 거니까. 그렇게 짐을 싸 두는 기분은 다시 먼 길을 떠나는 것도 같았고, 마침내 돌아가는 것도 같은 오묘한 기분이었다.


‘마지막, 마지막.’ 그 단어 자체도 마지막인 것 같이 생긴 저 말은 게으른 나를 움직이게 했다. 나는 텃밭에 나가 감자를 다섯 고랑이나 심었다. 토마토 모종도 20개나 넘게 사서 늘 풀만 무성했던 벗겨진 비닐하우스 아래에 심었다. 내 손으로 길러 내 입으로 가져갈 마지막 작물. 아주는 아니지만 오래도록 마지막으로 남아있을 것들.


작물 심기가 끝나갈 무렵부터는 무뎌진 감각을 벼리기 위해 디자인 관련 서적을 꺼내고, 컴퓨터에 3D 응용프로그램을 다시 깔았다. 나는 돌아가서 이전처럼 먹고살기 위해, 다시 취업준비생이 되어야 했다. 경력도 없이 나이만 들어버린 나를 신입직원으로 써 줄 회사는 드물 테니까, 나는 어떤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보단 할 줄 아는 것이라도 복기시켜 둘 생각이었다. 몇 가지의 키보드 단축키는 손가락에 짙은 습관처럼 툭툭 떠오르긴 했지만 역시 너무 오랜만이라 한참을 더듬으며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처음 취업 준비를 시작했던 때보다 많은 것이 능숙했지만 어쩐지 마음이 계속 가라앉았다. 모니터 앞에 앉아 1시간만 지나도 기계적으로 일하던 그 순간, 그 자리로 돌아간 것 같이 느껴졌다.


해가 질 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여름밤, 손목에 익숙한 통증이 느껴질 때쯤 무언가 견딜 수 없는 기분에 산책을 나갔다. 왼손엔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 찰스 없이 혼자 여름밤을 걸었다. 방 안의 컴퓨터 열기는 선풍기로도 가시지 않았는데, 웬일인지 밖은 말할 수 없이 시원했다. 나는 얇은 원피스 잠옷을 펄럭이며 가로등 아래에 잠시 멈추었다. 짙은 초록의 벼들이 끝없이 먼 어둠에서부터 파도를 일으키며 나에게 밀려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폭풍이 오기 전 새벽같이 조용하면서도 아주 큰 몸짓의 바람이 비 냄새를 묻혀 불어왔다.



“아이구, 좀 살 것 같다.”



쓰레기를 버리는 마을 정자에 가까워지니 불빛도 없는 마루에서 할머니 두 분이 바람을 쐬고 계신다. 아무렇지 않게 젖가슴께까지 민소매 아랫단을 둘둘 걷어 올리시고 더위를 쫓으시는 중인 듯했다.



“큰 아가, 이거 복숭아 먹구 가.”



꾸벅 인사를 하는 내게 복숭아를 건네셨다. 우리 집 앞에 열려 있던 작고 단단한 복숭아. 나는 복숭아털 알레르기가 있다. 껍질 째 복숭아를 만지면 입이든 손이든 만진 곳은 어디든 가려워 아무리 씻고 씻어도 한참을 그랬다. 그런데 나는 무슨 호기로움인지 거절 않고 덥석 그 복숭아를 건네받았다. 조심스럽게 입가로 가져가 가급적 입술을 사용하지 않고 이로만 복숭아를 깨물어 씹었다. 나는 복숭아를 좋아한다. 그 털만 아니면 매일매일 먹을 만큼. 복숭아는 마구 자란 것치곤 꽤 달았고, 이상하게 나는 아무 데도 가렵지 않았다.



“할무니이- 바람이 진짜 시원하네요, 오늘.”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바람만 드나드는 모정(마을 정자)이 적적해서 할머니들 곁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떠들었다. 농어촌 버스 시간표에 대한 얘기나, 에어컨 얘기, 동네에 새로 온 멍멍이 얘기. 할머니들은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어주시며 들어주셨다. 이따금씩 두 분이서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싸우시는 건 절대 아니었다.(웃음) 나는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다가 이만 들어가 보겠다며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는 짧은 길을 아주 느리게 걸었다. 오늘 이렇게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지 않았다면 이 여름밤이 이토록 시원했는지는 전혀 몰랐겠지. 복숭아를 껍질 째 먹고도 입가가 따가워지지 않을 때도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겠지. 그래, 이렇게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간 방에는 컴퓨터 열기가 여전했다. 나는 곧장 컴퓨터를 끄고, 두꺼운 책들을 덮어 치워 버렸다. 시원한 맥주를 꺼내 잔에 따르고 마루 앞에 앉았다. 바보 같아 보여도 그래, 나는 당장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이렇게 바람이 좋은 날엔 마루 샤시를 활짝 열고 맥주나 마시며 노래를 들어야지, 간간히 바람소리도 들을 수 있도록 볼륨을 맞춰서.


잔 밖으로는 물기가 송글 하게 맺히고 잔 안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만족과 불안이 표면 위로 퐁퐁 함께 떠올랐다. 그리고 그 밤 가운데 들었던 플레이리스트, 어느 한 구절이 계속해서 여름 밤기운을 맴돌았다.



‘계속 해. 널 사랑해도 돼.’



-



평온한 날들 가운데 문득 불안해 지곤 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이 너무 익숙해져 버리면, 그래서 이전엔 당연했던 것들이 더욱 견딜 수 없어지면 어떡하지- 그런 고민은 아주 사소한 것에 대한 것이었다. 맨 얼굴과 노브라 상태로 종일을 보내는 일과 아침엔 빛과 새소리, 저녁엔 달과 풀벌레 소리가 자연스러워지는 일.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쓰고 싶어질 때 쓰는 것. 혼자 마시는 술로 쓸쓸함에 잔뜩 취해보는 일. 그런 일들에 너무 익숙해져 버리면 어쩌지. 아냐 어쩌면 이미. 그런 고민의 심연에는 내가 언제나 돌아갈 때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생각이 가라앉아 있었다.


계절이 어떤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낼 때 나의 베스트 모음집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정말 나의 일상이 새로운 베스트 모음집으로만 가득 채워지고 있다는 걸 문득 느꼈다. 좋아하는 것들의 연속. 다시 그 좋았던 것들의 반복. 그걸 알아차리고 나니 너무 기쁘고 또 한편으로 슬픈 것이다. 사소한 고민들을 하며 불안해져 갔다. 이 좋아하는 것들, 이 베스트 모음집의 연속을 두고서 나는 언젠간 돌아가야 하는 사람이니까. 아무리 철을 잊은 나라도 이 생활을 이런 방식으로 오래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분명히도 알고 있었다. 내가 늘 이상을 향해서만 가고 있는 것처럼 쓰고 말하긴 했지만 결국 나는 아주 현실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매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바람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뚜렷하게 알고 있는 나는, 행복에 겨워 인생에서 가장 불안한 2년을 보낸 게 틀림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몸속의 피를 전부 빼내고 새 피를 수혈받은 것처럼 확연히 변해갔다. 시들고 건강해지기도 하면서.


그 변화의 과정은, 그러니까 그 안에서 느낀 나의 모든 감각과 감정은 낯설었고, 설레었고, 때로는 너무 처량하기도, 소중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날들을 어떻게든 흘러가게만 두고 싶진 않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롯이 나를 위한 나만의 기록을 남기는 동안 나는 멈춰져 있었고, 쓰는 일이 끝나면 시간은 멈춰져 있던 시간만큼 빠르게 흘렀다. 시간은 결국 공평하게 흐른다. 스물여덟의 나는 어느새 서른의 끝물에 와 버렸다. 1년이라도 버텨낼 수 있을까 싶던 시간이 2년이나 지나있었다. 삼일 밤샘 뒤에 잠깐 빠져든 낮잠처럼 짧고 충만한 시간. 그리고 서툰 방식이나마 그 찰나를 이렇게 문장으로 붙잡아 둘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차갑게 내몰던 시간들이 더는 수습할 수 없는 후회로 다가왔을 때, 내가 나를 구해주어야겠다는 아주 짧고 강렬한 의지로 나를 여기 유배지로 보냈었다. 오로지 자신을 향해서만 헤엄쳐 가야 하는 그 위험한 고독을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떤 모습일까, 아니 그 끝은? 그 유배생활의 끝에 결국 난 쓰디쓴 사약을 받아 들고 멍석 위에 피를 토해내야 하면 어쩌나.


다행이라면 아직까지는 이 유배생활의 결말을 모른다는 것이다. 돌아가기로 했던 마음을 접어 나는 1년을 마저 채우기로 결심했다. 핑계라면, 그 여름밤이 지나치게 시원해서라고 둘러댈 수 있다. 그리곤 그 뒤엔 정말 돌아가야지, 생각했다. 돌아가는 것인지 다시 출발하는 것인지 가봐야 알겠지만, 삶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든 어쨌거나 나는 다시 술래가 되어야만 한다. 그게 공평한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도망치기만 하면 그간 술래가 되었던 시간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릴 것만 같기도 하고. 술래였던 그 모든 시절, 시절이 너무 고단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결국 내 삶의 일부분이고,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내 안을 유영하며 나를 어딘가로 계속 이끌 것임에 틀림없으니까. 이 술래잡기에서는 술래의 역할도 도망치는 역할도 모두 내 것이다. 나는 내가 줄곧 그래 왔음을 깨달았다. 그런 쭉쩡이 같이 들쑥날쑥한 시간들을 오래 후회하고 때로 부정하기도 했지만 마침내는 인정하게 되었다. 도망치고, 다시 술래가 되고, 또 도망치고. 그런 진득하지 못한 패턴이 어쩌면 나만의 물살이라는 것을. 내가 삶과 관계를 끌어가는 방식이 그러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유배지에서 보낸 700여 일의 하루들이 필요했다.


그러니 그 물살을 괜히 거스르려 하지 않고자 한다. 다시 술래가 되기 전까지는 있는 힘껏 도망쳐 보기로 한다. 그래야 다음 턴에 전보다 근사한 술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술래잡기에 대해 쓰는 것으로 쫓아가는 고단함을 달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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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 쓰고 싶은 날들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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