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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 Sep 28. 2021

나를 위해 케이크를 살 것.

2020년 겨울, 눈사람 만들기



종일 밖에서 흙을 만지며 풀을 찧어 밥을 짓고,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사루비아 꽃을 따서 그 꿀을 쪽쪽 빨아먹는 것이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였던 아이는 자신이 시급 4,110원에 쩔쩔매는 스무 살을 보내게 될 줄은 정말이지 몰랐을 것이다. 넓고 얕은 재능과 부족한 치기가 결국 죄가 될 것을 미처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가장 반짝거릴 시기에 어둠을 오래 방황하다 지하철이나 버스조차 제대로 탈 수 없을 만큼, 한동안 병들어 있을 것을 결코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해 낼 수 있는 일과 능력 밖의 일을 일찍부터 구분하기 시작해서 그게 결국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 거라는 것을 그 어린아이는 절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것은 크면서 점점 뚜렷하게 알아갔을지도 모른다. 어울려 다니던 친구의 배신과 순진하고 가난했던 여자아이를 향한 선생님의 조롱 섞인 웃음을 보며 조금씩 삶에 경멸을 느꼈을지도.


그 조금의 경멸이 커지고, 차츰 더 커지다 마침내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을 때, 나도 더 이상 아이가 아니게 되었다. 더는 소풍날 김밥 두 줄이 담긴 일회용 도시락과 나무젓가락을 부끄러움에 숨겨야 하는 아이는 아니게 된 것이다. 오히려 그 도시락을 쥐어주던 날 아침에 엄마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떠올리며 끝도 없이 그녀가 가여워져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그런 어른이 되었다. 시련의 종류라면 남은 것이 겪은 것보다 적은, 잔뜩 내성이 생겨버린 그런 어른이 되었다. 그러다가 아주 드물게 가끔은 알아차린다. 생일날 생크림 케이크 대신 초도 없는 롤케이크를 받고 집이 떠나가라 울음을 터뜨리던 소녀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가끔씩 흰머리가 자라기도 하는데 아이는 아랑곳 않고 무심코 툭툭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는 걸.





눈이 아주 많이 오던 2020년의 끝자락, 겨울. 나는 눈을 쓸지 않았다. 동네 분들이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리고 집 앞 길을 열심히 쓸고 계셔도 나는 아무 자국도 남겨져 있지 않은 마당을 방 안에서 창 너머로 오래 지켜보았다. 그리곤 충분히 쌓였다 느꼈을 때 옷을 두툼하게 챙겨 입고 목도리를 하고 장화를 신고 문을 나섰다.



“빠드득. 뽀득.”



장화 종아리 부분까지 눈 밭으로 쑥 빠져들었다. 나는 마치 달에 처음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고도 영광스럽게 발을 디뎠다. 이런 추운 날에 어째서 저 양반이 나와서 기웃거리나 신기했는지 찰스는 꼬리가 떨어져라 흔들며 나를 따라 눈 밭을 뛰었다. 드론으로 우리 집 마당을 찍었다면 분명 미쳐버린 짐승 두 마리처럼 보였을 것이다.(웃음) 작고 뾰족한 찰스의 발자국과 커다랗고 뭉툭한 나의 발자국이 눈밭에 꽤 어질러지고서야 나는 눈을 뭉치기 시작했다. 눈사람을 만들 작정이었다. 그리고 이 눈 장난을 카메라에 찍어서 오래도록 간직하기로 했다. 이 정도로 쌓일 때까지 기다렸다는 건, 내가 아주 아주 크은 눈사람을 만들 각오를 했다는 것이기에.


주먹이 작은 탓에 골프공 만하게 시작한 눈덩이는 뭉치고 굴리고 털어내고 뭉치기를 반복하면서 제법 무거워져 갔다. 이제 더는 굴리는 것도 힘들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자리를 잡고 눈을 다듬었다. 눈은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가벼우면서도 굵고 잘 녹지 않는 눈. 나는 하필이면 제법 비싼 스웨이드 재질의 패딩을 입고 나와, 눈을 온몸에 사정없이 붙여댔다. 머리를 감싼 후드에도 눈이 쌓이고 다듬어 놓은 눈사람 몸통에도 새롭게 눈이 들러붙었다. 과연 둘 중 누가 먼저 눈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나는 얼른 다시 골프공 만한 눈덩이를 뭉치기 시작했다. 이제는 머리를 만들 차례. 내가 눈사람이 되기 전에 눈사람을 먼저 완성하겠다는 마음으로 성실히 눈을 굴렸다. 가끔씩 허리를 펴 가며 앓는 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전혀 고단하지는 않았다. 그깟 패딩 따위도 이제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이 눈 장난을 실컷 다 하고 나면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창 밖으로 눈사람을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를 마실 완벽한 계획에 푹 빠져 있었다.


마침내 머리가 완성되었지만 어찌나 크게 굴렸는지 몸통 위로 올리느라 혼자 아주 애를 써야 했다. 이제는 가장 중요한 작업만이 남았다. 이 듬직한 덩치의 눈사람에 드디어 생명을 불어넣어 줄 단계. 잔가지를 주워와 팔을 만들고 가을에 캐지 않고 두었던 당근을 밭에서 뽑아왔다. 땅이 얼어 있어 쉽지 않았지만 나의 집념 덕에 눈사람은 아주 높은 코를 얻었다. 눈썹은 깻대에 남아있는 시든 깨로 완성했다. 숯검댕이 눈썹 아, 아니, 깨검댕이 눈썹! 문제는 눈인데, 인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눈을 만들어 줄 재료가 마땅치 않았다. 작은 돌조각은 어딘가 생기가 부족했다. 그 때 순간적으로 떠오른 건, 바로 청포도맛 사탕. 여름에 놀러 왔던 친구들이 두고 간 사탕이 있었다. 나는 언 손으로 사탕을 까서 눈사람에게 눈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자 눈사람은 순식간에 유러피안이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 어? 어… 여기는 전라돈데, 얘는 핀란드 눈사람이네. 나는 나까지 눈사람이 되기 일보 직전에 방으로 돌아왔다. 옷을 갈아입고 커피를 내렸다. 계획대로 방 창문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서 있는 눈사람. 아이는 아주 만족했다. 완성된 눈사람은 객관적으로도 꽤나 근사했다. 왜냐하면 찰스가 눈사람을 보고 한동안 계속 짖어댈 정도였으니까.



찰스 경계 대상 1호 - 국적 핀란드(?)



거의 20년 만인가. 이렇게 눈사람을 만들어 본 게. 손이 시린 것도, 허리가 아픈 것도 모르고 눈 밭에서 한참이나 시간을 보내 본 게. 눈이 오는 날은 버스나 실내 바닥이 물기로 그저 꿉꿉하기만 한 데다, 도심에 내린 눈은 언제나 저 쌓일 기회를 빼앗겨 다음날이면 예외 없이 제설작업을 당했다. 그 밖에 남은 눈들은 흙먼지, 타이어 자국과 어울려 지저분하게 구석에 내몰려져 있었던 것 같고. 눈사람 만들기가 문제가 아니라 지난 몇 해 동안 눈 내리는 걸 제대로 들여다본 적 조차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떠올려보니 나는 강원도 출신이었다. 매년 겨울 기록적인 폭설을 남기고, 4월까지도 눈이 오던 곳이 고향인 아이. 그때는 그게 당연해서 몰랐고, 어딜 가나 그렇게 눈이 내리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을 때는 내가 이미 너무 무심한 어른이 되어 있었던 탓이겠지. 그러다 이렇게 20년 만에 ‘눈 오는 날 개처럼’ 뛰어다녀보니 비로소 내가 눈 오는 날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어쩐지 좀 미안해져서, 하늘로부터 천천히 멀어지는 눈과 직접 만든 눈사람을 감아도 아른거릴 때까지 실컷 바라봐 주었다.





눈사람은 얼마 안 있어 겨울 햇살에 어깨를 기우뚱하게 늘어뜨리며 서서히 녹아갔다. 눈사람이 사라지는 건 어째선지 전혀 슬프지 않았다. 되짚어보니 어릴 때도 난 눈사람 녹는 걸 안타까워하는 그런 타입의 어린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녹아 사라지는 것도 눈사람 만들기의 과정 중 하나로 받아들였다. 어릴 때도 나는 참 나다웠구나. 그리고 여전히 내게 그 모습 그대로 살아 있구나. 나는 그냥 겉만 자라서 노화하고 있었을 뿐, 속에선 언제나 그 아이가 살아 있어 눈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스스로가 좀 더 애틋해졌다.


돌아오는 생일엔 혼자 조촐하게 와인이나 마실까 했지만, 아무래도 나는 나를 위해 케이크를 주문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단 걸 즐기지는 않지만 제법 근사한 걸로다가. 나는 여전히 롤케이크를 받아 들고 서럽게 우는 아이이니까, 세상 온갖 슬픔을 아는 것처럼 다 자라 버린 듯이 굴지는 말아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러니 언제나 겨울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게 하고, 생일엔 좀 멋쩍어도 케이크를 선물해 줄 것. 어린 찰나를 외면하지 말고 안아줄 것. 가능한 연민과 애정을 가득 담아.



다음 겨울에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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