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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 May 02. 2021

두려움엔 실체가 있다

시골에 온 걸 처음으로 후회해 본 밤



내가 시골로 오게 되었을 때 주변의 대부분 사람들은 여자가 낡은 시골집에서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해 마음을 썼다. 걱정스럽다고도 대단하다고도 했다. 사람과의 얄팍한 관계라는 것에 신물을 느끼고 있는 때여서 처음엔 인적이 아주 드문 곳에 집을 구하고 싶었다. 옆에 그 누구도 없어서, 끝내는 사람이 그리워지는 때까지 나를 내버려 둘 참이었지만 언니의 걱정스러운 만류로 큰길과 이웃집이 가까운 집을 구하게 됐다. 그렇다고 나 역시 시골에서 혼자 살아갈 일이 아주 신경 쓰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약간은 겁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나'를 잃고 스러져가는 것이 가장 두렵던 시절이어서, 그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보란 듯 내 불행을 타인 앞에서 전시하게 될까, 그게 더 무서웠다. 그러니 시골에서 혼자 사는 것 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졌던 것이다.





집은 2월 중순이 다 되도록 공사장 같았다. 이곳에 내려온 지 4개월이 되어 가지만 아직도 짐을 거의 풀지 못했다. 해야 할 일은 매일 쌓인다. 사실상 폐가나 마찬가지인 집을 젊은 여자의 입맛에 맞게 고치기란, 그것도 전기나 수도 같은 기능적인 일을 스스로 터득하고 작업해야 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공사장과 다름없는 집에서 컵라면 같은 것들을 먹고 자면서 더디게 몸을 움직였다. 집은 매일 조금씩 내게 맞게 달라져 갔지만 서두르지 않기로 한 계획을 철저히 지키고 있어 여전히 가야 할 길이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평소처럼 하루를 끝내고 누운 밤, 잠에 막 들려는데 갑자기 부엌 현관 쪽에서 쾅! 하는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누군가가 문을 집어 차는 것 같기도 했고 망치 같은 것 따위를 던진 것 같기도 했다. 찰스도 뭔가를 경계하는 듯이 마구 짖어댔다. 심장이 배 밖으로 나올 것처럼 뛰었다.



“(작게) 뭐야 누구야.”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누구’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온 것이 나의 잠재된 공포가 무엇이었는지 알아차리게 했다. 내게는 곧장 일어나 불을 켜고 실체를 마주할 용기 같은 건 없었다. 기침을 할 수도 몸을 고쳐 누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왠지 사람이 없는 척해야 할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이성을 담당하는 뇌 일부가 마비된 게 틀림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내 상태를 시간별로 알려두려 언니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겁이 난 상황에서도 밤중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로 차마 전화는 걸지 못했다. (나는 왜 이렇게도 못난 사람인지 정말 모르겠다.)



- 자려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났어. 누군가 들어온 걸지도 몰라.

- 지금 또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어. 일어나면 연락 줘.



큰소리는 더 이상 나지 않았지만 작게 뭔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 같았다. 갖은 상상을 하면서 꼼짝 않고 밤을 새웠다. 경계가 조금 풀리려는 새벽녘, 낯선 차가 갑자기 우리 집을 향해 헤드라이트를 비췄다. 나는 다시 한껏 어깨를 움츠리고 경계를 했다. 새벽에 밭으로 나가는 옆집 트럭이라는 걸 그 순간 잊고 있었다. 이성이 여전히 마비된 상태였다. 일곱시가 지나자 닭 우는 소리가 어둠을 몰고 가기 시작한다. 아침 해가 방으로 스미니 불안도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마침 일어난 언니에게서 전화가 온다.



“괜찮아? 무슨 일이야 대체. 날 밝았으니까 우선 바깥부터 확인해 봐.”



혹시 몰라 언니와 통화를 이어가면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마루로 나가 보았다. 손과 목소리를 달달 떨고 있는 내 모습이 측은했다. 스스로를 이렇게 가엾게 여긴 적이 언제였는지. 걱정스러운 밤이 무색하게 집 안팎은 고요했다. 모든 게 잠들기 전 그대로였는데, 설치하지 못한 채 세워져 있던 행거만 어제와 다르게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스르르 넘어지다 철문에 부딪히며 크게 소리를 낸 듯했다. 그제야 거품처럼 사그라드는 두려움이 갖은 감각으로 느껴졌다. 내가 주저하는 용기가 실은 일어나지도 않은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 어찌나 어리석은지.


겨우 저거였어? 소리가 났을 때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불을 켤 걸. 옅은 바람 소리에도 공포라 이름 붙여가며 상상의 나래를 밤새 펼쳤다니. 나 왜 이렇게 한심한 거야 대체.





지난밤 “누구야”라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짧은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검은 밤을 견뎌온 씩씩한 표정 뒤에 그간 내가 두렵게 느끼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똑똑히 말해주고 있었다. 그 어떤 것도 아닌, 사람을, 나는 무서워하고 있었구나. 곧장 호신용 스프레이와 핀을 뽑으면 사이렌이 울리는 경보기를 구매했다. 내 두려움의 실체를 눈치챈 이상 나는 나름의 대비를 하기로 했다. 역시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효험이 있었다. 내가 가진 것 중에 사용할 일이 없길 바라는 유일한 물건이 되었다.





그 일이 있던 날 밤, 나는 처음으로 시골에 온 것을 후회해 보았다. 그리곤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잊었다. 그 이튿날엔 씩씩한 척하는 것도 병이니 좀 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자고 마음먹기도 했다. 폐를 끼치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거라고 셀프 세뇌도 시켰다(여전히 강력하게 거부 중인 듯 하나). 이런 나의 여림과 두려움을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여럿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그 밤의 해프닝으로 나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관계의 권태를 벗어나고 싶어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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