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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란 Jan 05. 2024

절대로 창문을 열지 마

퇴고 없이 쓰는 글

며칠째 잔기침이 목을 괴롭히더니 이제는 코로 온 모양이다.

매운 음식을 먹지 않았는데 맵다 느끼고, 뜨거운 물을 뿌리지 않았는데 뜨겁다 느낀다.

차가운 손가락을 넣어 코 안쪽을 식혀 봐도 그때뿐이었다.


몇 년 전 사 둔 식염수가 떠올랐다.

콧구멍에 빨대를 꽂고 입을 쩍 벌린 채 아-하고 소리를 내면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사레가 들리거나 코가 아픈 것보다 힘든 건 화장실에 울려 퍼지는 내 목소리였다.

바깥에는 가족들이 있는데, 문을 사이에 두고 새처럼 우는 나의 모습이 보기 싫었다.

아-에서 우-로.

우-에서 -에로.

울음은 조금이라도 덜 민망한 양태로 점차 진화했다.


지구를 호령했던 공룡은 종국에 가장 무해한 모습으로 진화하였다.

매일 식탁에 올라와 인간에게 먹히는 그들을 누가 감히 공룡이라고 쉽게 상상하겠는가.

나의 울음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덜 민망한, 그러니까 누가 듣더라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이제 새는 울지 않는 방식으로 운다.

콧구멍에 빨대를 꽂고 입을 쩍 벌려도 소리를 내지 않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더 큰 새가 나를 잡아먹으러 이쪽으로 달려들더라도 목구멍 너머로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결연하리.

절대 구차하게 소리를 내지 않으리.




마스크를 써도 들어오는 먼지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나의 목과 코를 괴롭힌 원인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럼 무슨 수로 먼지를 막지?

나는 나의 안쪽을 마스크로 지키고 또 열심히 막아 왔는데 결국 아무것도 지켜지지 않았고 그 어느 것도 막지 못한 상황이 되었다면 내가 앞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지?

차가운 손가락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절대 창문을 열어서는 안 돼.


검은 마스크의 하얀 속살에는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다.

모든 마스크를 뜯어봐도 똑같았다.


초록색 그래프가 주황색이나 빨간색이 되면 창문을 열면 안 된다고 했는데.

하지만 식염수는 베란다에 있고, 베란다는 창틀 너머에 있으며, 창틀 너머는 창문을 열어야만 볼 수 있다.

하지만 마스크는 이미 아무것도 막지 못하고 어느 것도 지키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거실 바닥에 누워 있다.


한심한 것.


결국 나 혼자 나서는 수밖에.

창문을 열면 먼지가 나의 목과 코를 사정없이 파고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는 무릎을 꿇고 사정을 하고 싶을 만큼 구차해질 것이겠지만 나는 나보다 식염수를 믿는다.

먼지와 함께 민망함을 씻겨내려 줄 조용한 구원자가 저기 창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다.

셋과 함께 여는 거다. 뭐든 셋만 세면 이룰 수 있다고 누가 그랬으니까.


하나-

두울-

세엣-




창문 너머에는 쪽지가 붙어 있다.


좋은 마스크가 되는 법.

하나. 화장실에서 나는 모든 소리는 모른 척할 것.

두울. 식염수의 위치를 옮기지 말 것.

세엣. 절대 창문을 잠그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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