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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란 Jan 12. 2024

뒷걸음질 1,000km

퇴고 없이 쓰는 글

1,000km를 100시간 동안 뛰면서 3년이 조금 넘게 흘렀고 3년이면 서당개도 풍월을 읊는다니 나도 마디 정도는 있겠지? 가령 다리의 길이가 정확히 1km라든지, 노을이 무렵이면 커다란 카메라를 짊어진 사람들이 낚싯대를 걸쳐놓듯 난간에서 태양을 조준하고 있다든지, 자전거를 사람들은 항상 보행로로 다닌다든지


퇴근 후 금요일마다 강을 끼고 뛴다고 하면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어떻게 집 앞에 강이 있어요? (그건 강한테 물어보세요)

어려서부터 항상 강이 옆에 있었기에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혹은 상식 밖의 일인지 알 턱이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누군가에게는 웃통을 까고 센트럴파크를 뛰는 미국 시민만큼이나 부러운 입지였다는 것을 한참 뒤에 알게 되었다


바닥은 움푹 파인, 공사 중인 버스 정류장은 나를 뒷걸음질 치게 만드려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나는 기록을 위해 사는 사람 1,000km를 부지런히 달려왔기에 갑자기 느려지는 속도를 용납할 수 없다 그게 어느 정도인가 하면 잠시 숨을 고를 때도 일시정지를 눌러 놓고 멈춰 있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서 재생을 한다

지독한 사람 그러니까 네가 1,000km를 뛰지

사람들은 때때로 칭찬과 독설을 구분하지 않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람들을 스쳐 지나간다

뒷모습은 영락없는 커플이었는데 반환점을 돌아 얼굴을 보면 어느새 늙은 표정의 부모가 되어 있다

앞모습과 뒷모습이 다른 사람들 그런 사람들일수록 뛰지 않고 걷기만 해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눈치를 살핀다 마스크를 내리지 않고 나의 수염과 나의 턱을 가려 늙은 표정을 보일 수는 없잖아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알 것 같은 기분

어느새

이름만 빼고 다 알잖아요 우리는

너는 오늘 저녁에도 오빠에게 뮤지컬 티켓을 사달라고 조르고 한 달 뒤면 다른 오빠를 조르고 있지

너보다 빨리 달리던 강아지는 전속력으로 달리는 나를 주인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는데 요새는 왜 보이지 않는 거야


친해지면 곤란한데

가까워지면 뒷걸음질을 못 치잖아 네가 나를 다 알아버리면 나를 빠뜨리고 말 거잖아 그러면 나는 1,000km를 또 뛸 수 없잖아

그러니까 물러나 다가오지 마 나는 나의 마스크를 너는 너의 귀마개를 벗지 마

우리는 계속 다른 속도로 뛰는 거야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주치지 말고 서로를 흘끔흘끔 바라보면서,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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