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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란 Jan 18. 2024

섬은 흘러간다

퇴고 없이 쓰는 글

눈발을 맞으며 정상에 도착했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접수처 직원은 유튜브 라이브 화면을 보여주었다

전망대에는 희뿌연 안개가 자욱했고 빛나는 조명만이 보이는 전부였다


이것은 지금이에요


그 말뜻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라가시겠어요?라는 것을 그때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내려가는 것보다는 올라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이제 와 내려가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뿐이지만 올라가면 뭐라도 있지 않겠어? 에이 유튜브 화면이랑은 다르겠지 저건 뭐랄까 CCTV 같은 거잖아 우리 눈이 그것보다야 낫지 않겠어? 눈은 감시를 위해 생기지 않았잖아 새로운 걸 담으라고 있는 눈이잖아 보지 않았던 것을 보는 건 귀중한 경험이니까 올라가자


이것은 언제였지?


저것 봐 또 다른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어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얘기했다

위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하러 줄을 서는 걸까 눈이 뭐라고 위가 뭐라고

내가 가 봐서 알아요 얼른 돌아가세요 나만 믿어 내가 맞아 그냥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나중에 괜히 탓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왔던 길로 내려가 새로운 것은 없어

케이블카가 덜컹 흔들리면 사람들이 소리를 지른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사거리에 울려 퍼지는 것처럼 밀실은 비명을 머금고 산다

카마이타치의 밤이라는 추리 게임을 알고 있니? 선택지도 결말도 수십 가지인데 범인은 단 한 명뿐이래 잘못된 선택지를 다 모아야만 진짜 선택지를 고를 수 있나 봐

단번에 맞힌 사람은 없겠네? 그런 사람은 없어 애초에 불가능해 어떻게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하지도 않고 정상에 올라가겠니?


이것은 지나갔다


오르지 않은 길을 미워했다

저곳은 보나 마나 그곳은 그래봤자

눈밭에 발자국을 찍고 눈발을 혀끝으로 맛보고

그래야 눈을 경험한 것이잖아? 그것 말고는 의미 없잖아? 그래야 다치지 않잖아? 그러니 한 발자국을 뗄 때 조심해야 해 무조건 길 같은 길로만 다녀야 해 길 아닌 길로 들어서면 눈 아닌 눈 위에서 크게 넘어지고 말 거야

나는 나만 믿을게 덜컹 소리가 나고 구급차가 산으로 가도

그 어떤 손잡이도 잡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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