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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란 Jan 19. 2024

섬은 기다린다

퇴고 없이 쓰는 글

나무가 기다리고 있어

한 명도 늦지 않은 버스는 정각에 출발했다

나무를 만나러 가는 사람들 새벽부터 먹지도 자지도 않는 걸 보니 오랫동안 오늘을 기다려 왔나 봐


우리는 다른 곳보다 더 오래 기다려주기로 했어요 우리는 그게 여러분이 원하시는 거잖아요?

여행사 가이드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숨도 한 번 쉬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일이지만 일이 아닌 것처럼 즐거워 보였다

저 사람도 우리를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려 왔나 봐


창밖으로 풍경이 차례대로 흘러갔다

롯데월드 신밧드의 모험 놀이기구에 앉아 출발을 외치면 컴컴한 동굴 안쪽에서 칼을 든 남자와 보석함이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다

외로움이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면 돼

나무는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있다

눈 위에 발자국이 길게 찍혀 있다 나무는 밤이 되면 잠시 걷다 새벽이 오기 전 제자리로 돌아온다 자신을 기다릴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이 삶이니까


한국에는 자판기가 없나 봐요

기다릴 마음이 없었는데 친구들을 맞이한 붉은색과 초록색의 자판기

너희들도 곧 뿌리를 내릴 운명이겠구나 나무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데


정해진 길로만 다니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걷다 멈추고 기다리고 걷다 멈추고 기다리고

추위와 더위를 반복하면 단단한 껍질이 돋아난다고 들었다

나무가 되면 무슨 이름이 좋을지 생각하다 밤이 되었다 밤이 되면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갈 시간 신호등이 붉은색과 초록색을 왔다 갔다 하며 켜질 때마다 우리는 멈추고 기다리고 뛰고


나무는 오래전부터 나무였을까

우리를 기다려 왔다고 말하지는 마 그건 너무 뻔한 말이야 너는 그저 외로웠고 혼자가 좋다고 말하지만 밤마다 몰래 혼자 걸으며 새벽을 기다렸다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렸다고 말해

민망해할 필요는 없어 우리도 너를 기다렸다고 나무가 되는 상상을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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