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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랑 Jul 13. 2023

나를 당신이라 부르는 너에게

사랑할 때의 우리들


나를 당신이라 부르던 사람이 있었다.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기고 스물하나가 된 나와 마주 앉은, 나보다 한 살 어린 너. 우리는 대학에서 마주한 수많은 처음들과 온갖 어리둥절함을 함께 맞곤 했다.



누가 남자들에게 연인이 될 여자에게 '누나'라고 불러선 안된다는 교육이라도 시킨 걸까. 그는 나를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나에게 누나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저 보송한 아이들 둘인데, 그때는 한 살 차이가 한 번은 진지하게 넘어야 할 산 같았다.



우리가 아무 사이 아니던 때에도 그는 '여', ‘어’ 와 같은 말도 안 되는 단어로 나를 불렀다. 그러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곤 ‘너' 라고 칭했다. 나 역시 한 번도 그 호칭을 '누나'라고 정정해주지 않았다. 확실한 선을 긋고 각 잡으며 맺고 끊는 걸 즐기던 나였지만 오직 그에게만 애매함을 허용했다.



어느 날, 그는 횡설수설 우리 집 앞으로 찾아왔다. 본인이 요즘 <로마인이야기> 를 재밌게 읽고 있는데, 마침 도서관에 다음화가 없었고, 왠지 나에겐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던가. 밤 11시.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두 번의 환승을 거쳐 <로마인이야기> 5권이 있는지 묻고자 나를 불러냈다.



그렇게 시작된 산책길.

그는 10분이 되지 않아 서둘러 벤치에 앉자고 말했다. 한 번의 들숨과 날숨을 엇박자로 내쉬다 참고 참은 숨을 내뱉듯 “좋아해”라고 말했다. 나는 여전히 그 장면을 기억한다. 그 밤, 벤치 색, 물기를 가득 머금은 습도, 여름 내내 짙어져 있던 풀들이 뿜던 향, 가로수 빛의 퍼짐 정도, 내가 입고 있던 베이지 색 티셔츠와 그의 발 끝에서 약간 풀어지려고 하는 검은 캔버스 운동화 끈. 아주 쉽게 모든 걸 기억해 낼 수 있을 만큼 생생하다.



가장 담백하고 담대한 고백이었다. 미사여구는 하나도 없었다. 오직 단 한 마디였다. 직진 그 자체인 스무 살 남자에게 고백을 받았던 사랑의 역사가 두고두고 달콤한 기억으로 남을 줄은 몰랐다. 정확히 그 밤이 지난 후부터 그는 나를 ‘여’, ‘너’가 아닌 '당신'이라 불렀다.



단 둘이 있을 때뿐만 아니라 동아리 방에서도 그는 나에게 늘 당신이라고 불렀다. 주변을 둘러보지 않았다.

-당신은 어때?

-당신도 먹어.

-당신이랑 가야지.

-당신 어디야.

그가 나를 그렇게 부름에 어떠한 어색함도 없었다. 내게 그는 그 단어의 무게를 거뜬히 버티고도 남을 만큼 호젓했고 내가 한참을 기대어 있어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너른 사람이었다. 우리가 티격태격 거릴 때엔 서로가 서로를 당신이라 부르는 모습이 마치 엄마아빠 놀이를 하는 이들 같았다.



그 후, 수없이 긴 시간이 흐르고 흘러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달콤한 말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다. 그래도 소속이 같았다는 이유로 끊어지지 않고 이따금 닿는다. 그러나 여전히 너는 나를 당신이라고 부른다. 다만 우리 사이엔 이런 대화가 오간다.



"나는 화요일에 모임 갈 거야. 당신도 와?"

"나 선배 부조 부탁해. 당신 계좌번호로 전할게"

"ooo이 당신 연락처 물어봐서 알려줬어."



마치 사내메신저처럼 어떤 머뭇거림도 없이 대단히 목적 지향적이며 기능적인 대화를 주고받을 뿐이다. 한 시절 서로에게 기대었고 그로부터 십 년도 넘는 시간이 지났다. 가물가물한 추억들이 그저 몇몇 장면으로 남아있을 뿐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나를 “당신”이라고 부르면 저항할 수 없는 따스함이 퍼진다. 그 단어가 트리거가 되어, 여전히 나에게 저장되어 있었는지, 나조차도 알 수 없던 장면들도 스륵 펼쳐진다. 파블로의 개처럼, 단 하나의 단어만으로 어설프고 따스하며 포근한 감각들이 피어오르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왜 여전히 그가 나를 당신이라고 부르는지 물어본 적은 없다. 영원히 묻지 않을 예정이다. 이 너른 애매함을 그에게만큼은 평생 허용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번 생에 우리가 서로에게 연락할 일은 열 손가락 안에 꼽을 듯하다. 하지만 당신이라고 부르지 않는 그와 대화를 하느니 앞으로 영원히 대화하지 않아도 아쉽지 않다.



그에게서 불리우는 단어.

“당신”

내겐 영원히 확실할 달콤함이다.





지금 듣는 음악 - 디어 <Gra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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