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활의 꿈을 삼킨 폐렴의 늪을 건너, ‘집’이라는 이름의 성소로
재활이라는 희망의 밧줄을 잡고 들어섰던 요양병원의 문턱을 넘은 지 102일 만이다. 다시는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길, 그 끝에서 마침내 아내와 나는 우리들만의 성소(聖所)인 집으로 돌아왔다.
기대했던 재활의 시간은 불청객처럼 찾아온 폐렴이라는 복병 앞에 무참히 무너졌다. 층층이 쌓아 올린 운동의 성과들은 수포로 돌아갔고, 아내의 목줄기에는 가혹한 석션 호스가 드리워졌다. 안개처럼 흩어지는 네블라이저의 약연(藥煙) 속에서 아내의 기력은 속절없이 사그라졌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일이다. 퇴원하여 집으로 가기로 한 그날부터, 아주 위험한 수준까지 내달았던 아내의 폐렴은 기적처럼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검사 결과는 크레아티닌 수치의 미세한 흔들림을 제외하고는 모든 지표가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것은 의학적 데이터라기보다, 오로지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아내의 절박한 생의 의지와 간절한 기도가 빚어낸 신비일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노인들은 폐렴으로 많이 생을 마감한다. 이곳 요양병원도 펴렴 환자가 많다. 그런데 네뷸라이저 치료기 한대로 이방 저 방 옮겨 다니며 치료를 하고 있다. 위생적으로 불결하고 열악하기 그지없다.
그런데다 우리가 마주한 요양병원은 인술(仁術)이 메마른 고립된 섬이었다. 현대 의학의 정점에 선 상급병원과 요양병원 사이에는 족히 백 년의 시공간이 가로놓여 있는 듯했다. 환자의 고통에 눈감은 채 기계적으로 투여되는 당분 가득한 수액들, 그로 인해 500을 치솟는 혈당의 폭주 앞에서도 병원은 태연했다.
심장이식 환자에게 소염제를 처방해 생명줄인 소변줄마저 막히게 했던 그 무지한 아집들. 30년 간 아내의 숨결만으로도 혈당을 읽어냈던 나의 호소는 차가운 권위 아래 매몰되었다. 결국 상급병원의 소견서를 손에 쥐고서야 마지못해 움직이던 그들의 뒷모습에서 나는 현대 의료의 처참한 민낯을 보았다.
위급한 순간, 상급병원 응급실의 문을 두드렸으나 돌아온 것은 '거절'이라는 차가운 메아리였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라 불리는 이 잔인한 현실 앞에, 아내 친구의 남편은 끝내 하늘의 별이 되었다. 이 시대의 요양병원은 치료의 공간인가, 아니면 방치의 공간인가. 배수진을 치고 항생제 투여를 요구하며 사투를 벌였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나는 휠체어 위의 아내를 보며 수천 번 다짐했다.
"다시는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으리라."
마침내 102일 만에 우리 집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안 가득 고여 있던 익숙한 공기는 그 자체로 '천국'이자 '극락'이었다. 휠체어에서 내려앉으며 아내가 내뱉은 첫마디가 거실 벽을 타고 메아리친다.
"역시... 집이 최고예요!"
그 한마디에 지난 백여 일의 피로와 분노가 눈 녹듯 사라졌다. 차가운 병원 침대 위에서 무지한 처방에 몸을 맡겨야 했던 공포의 시간은 이제 어두운 과거의 기록이 되었다.
며칠 후면 우리가 신뢰하는 상급병원 교수의 외래 진료가 기다리고 있다. '믿음'이라는 약이 환자의 마음을 얼마나 깊이 치유하는지, 아내의 평온해진 얼굴이 증명하고 있었다.
병원 천장이 아닌, 우리 부부의 손때 묻은 집의 천장을 바라보며 잠드는 밤. 아내의 고른 숨소리가 적막한 집안을 따스하게 채운다. 요양병원의 무지가 할퀴고 간 상처를 '집'이라는 가장 위대한 명약으로 씻어내며, 우리는 다시 소중한 일상을 시작한다. 오, 다시는 그 길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우리 부부에게 남은 시간은 오직 이 온기 어린 집 안에서만 정답게 흐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