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 수녀님의 굽은 등과
천수천안의 사랑

병고를 건너 '집'이라는 정토(淨土)로 가는 길

by 찰라


“세상에는 빵 한 조각이 없어 죽어 가는 사람도 많지만,

작은 사랑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은 더 많습니다.”

- 마더 테레사


사본 -9_f6dUd018svctr42pu3j2ew1_s19bq2.jpg 테레사 수녀님의 고향 마케도니아 스코페 테레사수녀 기념관 앞에 세워진 동상. 작은 키에 굽은 등이 인상적이다.


물질적인 빈곤보다 더 무서운 것이 '마음의 빈곤'과 '고독'입니다. 특히 타인의 따뜻한 손길이 간절한 이들에게는, 백 마디 말보다 곁을 지켜주는 작은 사랑의 온기 하나가 삶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고독사가 점점 늘어나는 이유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 무관심의 상태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테레사 수녀님은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하셨지요. 누군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그 부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가 살아있을 때 이미 사회적으로 '투명 인간' 취급을 받았다는 뜻이기도 해서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깊어가는 밤, 요양병원의 적막을 깨는 것은 곁에 누운 아내의 옅은 숨소리뿐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 어둠 속에서 아내의 젖은 기저귀를 갈아주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순간, 문득 마음의 거울 속에서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뒷모습이 떠오릅니다.


오래전, 수녀님의 고향인 마케도니아 스코페에서 마주했던 수녀님의 작은 동상을 기억합니다.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품느라 낮게 굽어버린 그분의 등은, 이 땅 위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하나라도 더 안아 올리려 했던 세상에서 가장 자비로운 곡선이었습니다.


오늘 밤, 좁은 간이침대에서 칼잠을 자며 아내를 지키는 나의 굽어진 등 또한 그 성스러운 흔적을 닮아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팔순의 이 서툰 두 손이 고통을 어루만지는 보살의 천수(千手)를 닮아가기를, 야윈 살결을 매만지는 이 손길이 세상 그 무엇보다 따스한 약손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눈이 천안(千眼)이 되어, 아내의 아픈 곳을 구석구석 살피고 보듬을 수 있기를.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병고(病苦)로써 약을 삼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아내의 갑작스러운 뇌출혈과 긴 기다림은 우리 부부에게 가혹한 시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역설적이게도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를 깨닫게 해 준 가장 깊은 사랑과 수행의 ‘약’이 되었습니다.


섬망의 안개를 걷어내고 다시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봐주는 아내의 눈빛, 제 자리를 찾아가는 생명의 수치들—체온, 혈당, 혈압, 그리고 잦아든 기침 소리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은혜이자 관세음보살님의 가피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혹여나 침대 밑으로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며 낙상을 걱정하던 불안의 밤들도 이제는 사랑의 깊이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내일 아침, 우리는 드디어 그토록 그리워하던 집으로 돌아갑니다. 차가운 병원 천장이 아닌, 익숙한 우리 집의 천장을 보고 싶다던 아내의 소박한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비록 병마가 완전히 물러간 것은 아니나, 여전히 내 곁에 숨 쉬며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우리는 다시 ‘집’이라는 이름의 정토(淨土)로 향합니다.


이곳 요양병원의 수많은 환자는 테레사 수녀님이 말씀하신 그 ‘사랑’에 주려 있습니다. 찾아오는 이 드문 병실에서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는 영혼들을 생각하며, 나지막이 마지막 기도를 올립니다. 이곳에서 재활의 꿈을 꾸는 고독한 환자에게 따스한 손길이 닿기를, 그리고 고통받는 모든 중생이 병고를 넘어 진정한 평온에 이르기를.


나무관세음보살 마하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