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제 어른이 되는 걸까?
요즘 내 피드는 아기들 사진으로 가득하다.
A의 딸은 갓 돌을 기념한 사진을 찍었고 B의 아들은 유치원에 입학한 모양이다.
침대에 누워 킬킬거리며 하릴없이 스크롤을 끌어내리던 나를 불러낸 것은 엄마였다.
딸, 밥 먹어-.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같이 학교 다니고, 비슷한 시기에 취업했던 것 같은데?
화면 속에는 딸에게 숟가락을 쥐어주며 한껏 웃고 있는 친구가,
화면밖에는 세수도 않은 채 휘적휘적 식탁 앞으로 걸어 나가는 다 큰 딸, 내가 있다.
뭐지? 나 왜 이렇게 철딱서니 없게 느껴지지?
태어난 지 3n 년, 직장생활 1n 년,
금융활동, 문제없음. 운전, 가능함. 음주 및 흡연, 역시 가능함(아마도?).
엄마에겐 "내가 알아서 할게-."를
친구들에겐 "우리가 나이가 몇인데-."를 달고 사는데.
입안의 밥알이 문득 까끌까끌하게 느껴졌다.
뭐가 이렇게 잘못된 기분이 들지?
나 스스로가 왜 이렇게 미성숙하게 느껴지는 거야?
내가 진짜 다 큰 걸까? 정신적 독립을 이루어내고 내 삶의 전문가가 되긴 한 걸까?
그러니까 그게.
단순히 내가 미혼이거나 독립하지 않아서 떠오른 생각은 아니라는 걸 확실히 하고 싶다.
외부적으로 '어른'의 조건들을 모두 갖추고도
여전히 철딱서니 없이 굴거나
나이 들어서 왜 저래- 하는 감상을 주는 사람들을 넘쳐나니까.
그것보다는 조금 더 본질적인 어떤 것.
이건 어쩌면 나 자신과 인생 전반에 대한 고찰과 관련 있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난 언제 어른된 기분을 느꼈었더라.
신입생 OT에서 선배들이 주던 소주를 한입에 털어 삼켰을 때.(이 시절 일부러 소주잔을 넘기며 크- 소리를 내곤 했다. 다들 그러기에. 그게 술의 '맛'을 아는 어른이라 생각해 흉내 낸 거였다.)
빳빳한 정장차림으로 첫 출근을 하고, 첫 월급이 통장으로 딩동! 했을 때. (이건 좀 인정해 줄 만하지 않나?)
결혼식에 축의 봉투를 넣었을 때나 장례식에 근조화환을 보냈을 때. (고백하자면 근조화환 주문 전화가 무서워서 미리 연습해 봤다. 통화가 1분 만에 싱겁게 끝나 오히려 당황했었다.)
혼자 입원해 수술받고 나 스스로 보험금을 청구했을 때. (보험 처리 후에 이제 우리가 이런 거 스스로 챙겨야 한다며 친구들에게 일러댔다. 지금 보니 스스로가 좀 웃기다.)
친구들은 어찌 생각하나 싶어 물었다. 야. 너넨 언제 어른되었다고 생각했냐?
아기 낳았을 때, 면허 땄을 때, 대출 냈을 때...처럼 법적 '성인'에게 가능한 일을 언급한 친구들이 꽤 있었다.
놀라운 건, 내가 물었던 인원의 과반이(결혼, 출산과 상관없이) '나 아직 어른 안된 것 같은데?' 하고 대답했다는 거다.
뭐야, 얘네도 이렇게 생각한단 말이야?
나나 친구들이나 이렇게 많은 순간, 많은 일들을 해오며 살았는데
왜 심정적으로는 어른이 되지 못한 기분을 느낀단 말이야?
더 이상 민증검사도 하지 않는 이 시점이 되어서?
약간은 혼란한 기분이 되어 다시 한번 친구들이 보내준 답들을 읽어 내렸다.
조금 더 알아채기 어려운 '어른'을 짚은 친구들도 많았다.
하기 싫은 거 꾹 참고 할 때, 싫은 사람 앞에서도 좋은 척할 때, 부모님께서 아프셔서 책임감을 느낄 때, 어린 시절이 그리울 때, 큰 선택을 내 마음대로 할 때, 그리고 그거에 대해 책임져야 할 때.
희미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출발선 끄트머리를 찾은 듯도 싶었다.
어른되지 못한 기분을 느끼는 내가 이 선에 서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부터 하나씩 뜯어 살펴보려고 한다.
주민등록증으로 증명되는 '숫자 어른' 말고, 진짜 어른에게 꼭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지.
취업이나 결혼으로 증명되는 '조건 어른' 말고, 우아하고 품위 있는 어른은 어떤 인간인지.
그래서 나는 다 큰 건지 덜 큰건지.
내가 나 자신을 어른으로 인정해 줄 건지 말건지.
겨울밤처럼 긴 고찰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