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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lna Dec 24. 2023

어른의 덕목 3. 감정(1) - 외로움

외로움. 평생의 친구로 받아들여야 할 것.

분홍 장갑, 분홍 코의 털신, 분홍 모자

엄마가 요즘 하나씩 신중히 골라 모아 놓은 것들이다.

누가 보면 엄마한테 손녀딸이라도 있는 줄 알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새초롬하게도 예쁜 분홍들은 전부 외할머니를 위한 것이니까.



어른의 덕목 3. 감정(1)



나의 외할머니는 여러모로 놀라운 데가 많은 분이다.

며칠 뒤면 딱 100이 되는 할머니의 연세가 그렇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꼿꼿하게 선 자세와 선명한 눈빛이 그렇다.

여전히 장에 갈 땐 고운 붉은빛 옷들로 ootd를 완성하시고

자식들이 온다고 하면 철마다 신선한 재료로 요리하신다.



나는 할머니 연세에(물론 흔한 나이는 아니지만) 할머니만큼 자기 관리가 확실한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래서일까. 외할머니를 생각하면 늘 강인한 힘 같은 게 떠올랐다.

홀로 우뚝 서서 흔들림 없는.




몇 달 전 엄마와 할머니 댁에 갔다가 함께 외식 나가던 길이었다.

대뜸 오늘이 무슨 요일이냐 물으시는 거였다.



"오늘 화요일! 왜 엄마!"  

차 안이 울리도록 크게 대답한 엄마(-그러니까 나의 엄마)가 할머니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아- 저 목요일에는 차 타고 교회 가야 하거든"

"교회? 엄마 교회라 그랬어?"



엄마의 당혹스러움이 운전대를 잡은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도 그럴게, 할머니는 일평생 교회의 기역도 밟아보신 적이 없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사는 동네 어귀에 빨간 벽돌의 교회가 생겼을 때에도

독실한 신자인 할머니의 두 며느님이 교회에 가자고 꼬셨을 때에도( 이걸 달리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

할머니는 단 한 번도 그곳의  문턱을 밟지 않으셨다.

그랬는데 99년 인생 최초의 교회라니, 엄마가 경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른 것도 이해가 갔다.



"엄마 갑자기 교회는 왜 가는데!"

"아니 뭐 - 밥도 주고-"

"엄마 밥 때문에 가는 거야?  갑자기 밥 때문에 교회?"



놀라움 때문인지 다소 추궁처럼 느껴지는 엄마의 말에 할머니는 대답이 없으셨다.

몇 번 더 엄마가 물었지만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잘 안 들리시나 보다 하던 차에,

할머니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다소, 놀라운.



"거기 가면 아이고 -왔어요, 하고 반겨줘. 아이고 잘 왔다 하고- 이야기도 하고"



아, 그랬다. 할머니의 느닷없는 교회행의 원인은 거기에 있었다.

사람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과의 대화와 어울림.

할머니는 외로우셨던 걸까?

할머니의 이유를 듣고 난 뒤

나도, 엄마도 모두 잠시 숙연해지고 말았다.






"진짜 이상하지 않니?"

할머니 댁에서 돌아온 뒤에도 엄마는 몇 번이나 내게 물었다.

엄마가 '이상하게' 느낀 포인트가 어디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참 이상했다.

나는 할머니처럼 한 세기 정도 살다 보면, 외로움을 느끼는 일은 없을 줄 알았던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초연해져서 외로움 같은 자잘한 감정들에 무뎌질 줄 알았다.

그게 아닌 거라면 약간 좌절스럽다.

외로움이 나이가 많고 아주 풍부한 경험을 지닌 인간에게도 여전히 힘을 가지고 존재하는 감정이라면

나는 대체 언제까지 외로움을 느껴야 하는데?



나는 내가 꽤 외로움을 타는 성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왜 외로울까?를 생각하는데 골몰했다.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없을 때 외로웠고, 나만 부족한 것 같을 때 외로웠다.

근데 때로는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롭고, 나만 가졌는데도 외로웠다.

어느 날은 바람이 스산하고 낙엽이 내려앉아서 외로웠는데

또 어느 날은 하늘이 너무 파랗고 날이 좋아서 외롭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그 수많은 사례들로부터도,  왜 외로울까? 에 대한 정형화된 틀을 얻을 수가 없었다.

다만, 한 살 두 살 먹다 보니 내가 느끼는 외로움의 횟수와 크기가 줄었다.

그래서 그렇게 믿었다. 나이가 들면 외로움도 덜해지는 거라고.

근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다들 그저 티 내지 않는 거였나 보다.



다른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나'를 확인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진짜 그런 게 인간이라면, 평생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숙명 같다.

 


생 외로운 감정을 느껴야 한다면,

환경과 상관없이 나는 언제든지 외로울 수 있다,

외로움은 나의 친구와도 같다-라는 것을 받아들이 것이 성숙한 어른의 출발점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외로움은 참, 어렵다.



"우리 엄마 교회 갈 때 하고 가라고 내가 이런 게 사는 게 맞는 거냐?"

털모자를 반으로 개키던 엄마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한숨이 느껴졌다.


"할머니가 재밌으시다잖어.  막내딸이 늘 옆에 있을게 아닌데 뭐 어떡해"

"..... 내 말이 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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