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앞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한 시대가 저물었다.
그녀는 꽃을 좋아했다.
작은 마당에 색색의 꽃을 가꾸는 일은 그녀의 작은 기쁨 중 하나였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날리는 계절은 매해 반복되는 것이었지만
그 벚꽃에 매번 하이고- 참 예쁘다. 하며 감탄하는 일을, 그녀는 빼놓지 않았다.
그녀는 새로운 것에 눈을 반짝였다.
그녀의 표현대로 '세상이 좋아져서'
새로 나온 물건들, 새로운 이야깃거리는 늘 그녀의 관심사였다.
오일에 한번 서는 장에 가는 일, 읍내에서 외식하는 일, 그래서 세상을 '관찰하는 일'은
평온한 그녀의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작고 고왔던 그녀는 일곱의 자녀를 길러낼 만큼 강인했다.
한평생을 쉼 없이 부지런히 일했고 성실히 살림 살았다.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을 돌보았고 가족을 살폈다.
한 세기를 살아낸 그녀의 인생을 감히 내가 몇 가지 말로 정리하긴 어렵다.
그녀의 시간은 전쟁과 분단을 거쳐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과했고 여러 번의 올림픽과 월드컵도 지났다.
그동안 천지가 개벽할 만큼 세상이 변했고, 사람들도 변했으며, 그녀 자신도 조금씩 변화해 왔을 것이다.
셀 수 없는 명과 암이 그녀를 스쳤을 것이고
그중 몇 가지는 그녀의 얼굴에 깊은 골을 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최선을 다해 이겨내며 살아왔다.
사진: Unsplash
할머니께서 가신 일은 나에게 참 갑작스러웠다.
처음엔 멍하고 혼란스러웠다가
거스러미가 올라온 손끝처럼 불편하기도 했다.
사실은 아직도 그 어느 날에 찾아뵐 수 있을 것처럼 실감 나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하루도 버거울 때가 많은 이 인생
어떻게 긴 세월 의연히 살아오셨는지.
나는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혼란이 무서워 덜컥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많은데
어떻게 그 굴곡을 헤쳐오셨는지.
매일 똑같이 밥을 짓고 방을 청소하고 마당을 일구셨던 할머니
노래자랑을 보며 웃고 연속극을 보며 놀라시던 할머니
세상이 변해서 요즘 사람들은 다 자기 생각이 있다며 끄덕이시던 행동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아닌 것 같으면 탁 - 뱉으라던 장난기 어린 음성
오면 반갑고 가면 서운하다며 지으시던 얼굴
할머니와 이별하는 순간이 되어서야 더 많이 궁금해할걸, 이야기해 볼걸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 무어라 정확히 깨닫기는 어렵지만 시간이 더 지나고 내가 더 경험치를 쌓아야만
이 이별의 의미를 알 것이라는 짐작이 되었다.
할머니가 가신 날은 햇살이 너무나 따사롭고, 민들레 홀씨가 무수히 날리던 아름다운 날이었다.
한 시대가 저물고, 한 세계가 닫히는 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워서 조금 슬펐다가
좋아하시던 꽃에 둘러싸여 가신 할머니께서
가족들이 덜 슬프고 덜 고생스러워라, 좋은 날 고르신 것이리라 믿기로 했다.
민들레 홀씨처럼 가볍고 후련하게 날아다니며
좋아하시던 구경 실컷 하시고
마음에 드는 곳 찾으시면 평온히 내려앉아 쉬시기를
나는 민들레 홀씨를 보면 할머니를 생각할 것이다.